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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물가-경기 역방향으로 전개 주요 경제국 통화 정책에도 영향 독일·중국 재정 부양책도 ‘역부족’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지난 1월에 이어 다시 한 번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는 시장의 예상에 부합하는 조치로, 최근 경제 지표가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음에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행 또한 같은 날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미국의 관세 압박이 전 세계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빛바랜 ‘미국 경제 건재’ 메시지
19일(이하 현지시각) 연준은 이틀 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기준금리를 기존 4.25∼4.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미국의 경제 활동은 견고한 속도로 계속 확장하고 있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이 다소 상승하고,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연준의 인식은 같은 날 공개된 경제전망예측에도 반영됐다. 연준은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이하 중간값)를 지난해 12월 제시한 2.1%에서 1.7%로 낮춰 잡고, 인플레이션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의 연말 예상치는 2.7%로 종전 2.5%보다 0.2%p 상향 조정했다.
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연준이 공개한 점도표(Dot plot)에서 올해 금리 수준을 어떻게 예측하느냐로 쏠렸다. 연준은 올해 0.5%p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작년 말 전망과 같은 수준이지만, 19명의 입장은 미세하게 변했다. 작년 12월 최소 두 차례 금리 인하를 예상한 위원은 15명이었으나, 이번엔 11명으로 줄었다. 기준금리에 대한 견해가 다소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기 시작했다”면서도 “다만 인플레이션이 별도의 조치 없이 빠르게 사라지는 일시적 현상이라면, 이를 배제하는 게 적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경기 침체 장기화 가능성에 대한 물음에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려해야 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신중한 태토를 보였다.
일본은행 금리 인상 기조에도 영향
같은 날 일본도 기준금리를 기존 연 0.5% 수준으로 동결했다. 일본은행은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 직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각국 통화정책 움직임과 그 영향을 받은 경제 및 물가 동향 등 일본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금리 동결 이유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2일 국가별 상호 관세를 예고하는 등 관세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수출 중심 국가인 일본 입장에선 상황을 더 예의주시하겠단 설명이다.
다만 향후 경제 상황에 따라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입장은 그대로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지난 1월 신선제품 제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뛰며 34개월 연속 2% 이상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임금 상승을 수반한 2% 이상 물가 상승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봄철 임금 노사협상(춘투) 1차 설문에 따르면 일본의 기본급 인상률은 평균 3.84%로 집계됐다.
올해 상반기 남은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는 5월 초, 6월 중순 2회다. 물가 추이만 보면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지만, 미국발 관세 폭탄이 전 세계 경제를 겨냥하는 탓에 일본은행의 차기 금리 인상 시기와 속도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고노 류타로 BNP파리바증권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6월 인상”이라면서도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라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 향하게 되면, 금리 인상은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곳곳 관세 부작용에 시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역풍을 몰고 왔다는 진단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앞서 18일에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나아가 내년 전망치도 종전 1.7%에서 1.5%로 낮췄다. 피치는 해당 내용을 담은 보고서에서 “새 행정부가 시작한 글로벌 무역전쟁이 미국과 세계의 성장세를 둔화시키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 연준의 금리인하 지연을 가져올 전망”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관세가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약 1%p 상승시킬 것이라는 게 피치의 분석이다.
문제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피치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종전 2.6%에서 2.3%로 0.3%p 내렸다. 중국과 독일의 재정 부양책이 미국 관세의 부작용을 일부 상쇄하겠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지대)의 성장세는 더욱 약화할 것이란 진단이다. 또 미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높은 캐나다. 멕시코는 관세 여파로 기술적 침체(2분기 이상 GDP 감소)에 빠질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내 경제 전문가들도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 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CNBC가 펀드 매니저, 애널리스트 등 32명의 경제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의 경기 침체 확률은 36%로 두 달 전인 1월(23%) 집계치보다 13%p 뛰었다. 배리 냅 매크로이코노믹스 연구원은 “많은 투자자가 관세 등 무역 정책으로 트럼프 정부의 의제가 무너지고,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 경제적 위험에 돌입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의 자유무역 질서를 크게 어지럽히고 있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