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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C만으로는 한계” 인식 도달
달러 독점 구도에 위기감 짙어져
기반 신뢰 취약, 성장 동력 제한

중국 정부가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검토하면서 위안화 국제화 전략에 속도를 높였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거래의 90%가량이 달러에 연동된 만큼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위안화 국제화 전략이 위축될 것이란 위기의식이 작용한 모양새다. 위안화 결제 네트워크 확대와 금융 주권 강화 등이 기대 효과로 거론되는 가운데 이미 시장을 선점한 달러 기반 코인과의 격차, 그리고 신뢰성·규제 체계 확립은 중국이 풀어야 할 핵심 과제로 지목된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으로 네트워크 확대
20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지도부가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르면 이달 말 국무원 주재로 위안화 국제화 및 스테이블코인에 초점을 맞춘 연구 세션을 개최하고,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추진에 대한 대응과 위안화의 글로벌 사용 목표, 중국 내 규제 당국의 역할과 책임 및 위험 방지 지침 등을 담은 로드맵을 검토할 예정이란 설명이다.
그간 중국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 디지털화 전략을 고수해 왔으나, 위안화 국제화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만큼 일정 수준의 신뢰도가 담보되지만, 해외 결제와 민간 거래에서는 활용 범위가 제한적인 탓이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참여와 글로벌 거래소 상장을 통해 다양한 네트워크로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중국 정부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통해 위안화 국제화를 가속할 것으로 기대했다. 기존에 추진해 온 국가 간 결제 시스템이나 금 보유 확대 전략만으로는 달러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위안화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해외 투자·결제에서 보다 유연한 수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를 통해 위안화의 신뢰도를 강화하는 동시에 국제 자산으로서 위상을 높인다는 게 중국 금융당국의 구상이다.

달러 패권 대응 성격 짙어
지난 수년간 가상자산 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대장주로 불리는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은 지난 7월 12만 달러를 찍었으며, 시가총액(2조3,000억 달러)은 메타(1조7,000억 달러)와 테슬라(1조 달러)를 추월한 지 오래다. 이와 함께 스테이블코인 시장도 성장하며 5월 말 기준 시가총액이 2,300억 달러를 돌파하며 1년 사이 50% 넘게 성장했다. 이처럼 눈부신 성장세의 배경엔 흔들리는 달러 패권이 자리하고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지키려면 세계 곳곳으로 달러가 흘러가야 하는데, 이 같은 구조에선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불가피하다. 미 재무부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데, 중국과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등 주요 수요처가 매입을 대폭 줄이면서 국채 금리가 상승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이자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연간 재정적자는 2조 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을 구원투수로 꺼내 들었다.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세계 곳곳에서 유통될수록 미 국채 수요가 늘고, 이는 곧 달러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90%가 달러화에 연동돼 있으며, 대부분 미 국채를 담보로 한다. 대표적인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 발행사의 미 국채 보유량은 약 1,000억 달러로, 독일(880억 달러)이나 멕시코(958억 달러)보다 많다.
중국이 달러 중심의 시장 질서에 대응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디지털 자산 시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달러 연동 코인이 사실상 표준처럼 자리 잡으면, 위안화는 국제 거래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난 수년간 대규모 금을 사들이며 달러 패권에 대응하려 했던 전략도 디지털 영역에서는 힘을 잃게 된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새로운 국제 결제 네트워크에 위안화를 연동시킨다는 중국 정부의 전략은 단순한 통화 디지털화를 넘어 달러의 독점 구도를 견제하기 위한 장기적 대응인 셈이다.
후발주자 한계 명확, 기반 신뢰 중요도↑
다만 중국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청사진이 현실화하기 위해선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가장 큰 과제로는 시장 신뢰 구축이 꼽힌다. 스테이블코인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담보 자산과 규제 체계, 거래 네트워크 등 기본 구조가 탄탄해야 한다. 그러나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은 기축통화인 달러와 달리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안정적 수익 모델도 확립되지 않았다. 여기에 담보 자산 운용으로 발생하는 이자 수익도 제한적인 탓에 신뢰성과 유통량 확보가 쉽지 않은 구조다.
안정성 역시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이 ‘특정 통화를 대신하는 안전자산’이라는 오해는 금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발행 업체가 지급준비금을 100% 보유한다고 해도 정부 보증이나 예금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 때문에 담보 자산 가치가 하락하거나 발행업체가 부도에 직면하면, 보유자는 현금 환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여파에 가치 연동이 무너지면서 1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USDC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제도화 논의도 걸음마 단계다. 중국 당국은 그간 이념적 논의조차 금지할 정도로 가상자산 도입에 신중을 기울여 왔는데, 최근에야 부랴부랴 전략 전환에 나선 상태다. 이는 곧 발행업체 자격 요건과 지급준비금 관리 방식, 이용자 보호 장치 등 마련해야 할 기준이 산더미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찌감치 시장의 판세가 달러 중심으로 고착한 상황에서 이 같은 실행 속도는 후발주자의 약점을 더욱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이 얼마나 신속하고 명확하게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느냐에 따라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성패 또한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