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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상승률, 2%대 초반서 1.9%로 하락 석유류·채소류 가격 급락, 전체 물가 상승 억제 美·유럽도 에너지 가격 하락 속 물가 상승 둔화

올해 들어 2%대 초반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다시 1%대에 진입했다. 외식비 등 개인서비스와 가공식품 가격은 여전히 오름세를 보였지만, 석유류와 채소류 가격이 급락하며 전체 물가 오름폭을 상당 부분 상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 속에 통화당국의 시선이 물가 안정에서 경기 부양으로 옮겨가면서 시장의 관심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에 쏠리고 있다.
에너지·신선식품 위주로 장바구니 물가 안정세
4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27(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하며 지난해 12월(1.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1~4월까지는 모두 2.0~2.2%의 상승률을 기록해 왔다. 물가 상승세 둔화는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 하락 영향이 컸다.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은 각각 4.7%, 2.3% 하락해 전체 물가를 0.2%포인트(p), 0.09%p 낮추는 데 기여했다. 기상 여건이 좋아 채소류 출하량이 늘어난 점과 국제 유가 하락세가 반영된 결과다.
반면 축산물 가격은 6.2% 오르며 전체 물가를 0.15%p 끌어올렸다. 품목별로는 돼지고기(8.4%), 국산쇠고기(5.3%), 달걀(3.8%) 등이 전년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서비스 물가는 2.3% 올랐다. 이 가운데 외식과 공공요금을 제외한 개인서비스는 3.1%, 외식 부문은 3.2% 올라 전체 물가를 각각 0.62%p, 0.46%p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외식 물가는 지난해 3월(3.4%) 이후 3%대의 높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가공식품 물가는 4월과 마찬가지로 4.1% 상승해, 2023년 12월(4.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근원물가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2.0% 올라 전월(2.1%)보다 소폭 둔화됐고,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2.3% 상승했다. 신선식품지수는 전년보다 5.0% 하락해 2021년 10월(-7.8%) 이후 3년 7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장바구니 물가 중에서도 신선식품 위주의 가격은 안정된 모습이다. 소비자 체감 물가를 반영하는 생활물가지수는 2.3% 상승했다. 생활물가지수는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큰 주요 생필품 144개 품목으로 구성돼 있다.
美, 관세 전쟁에도 4월 CPI 상승률 2%대로 선방
물가 상승세 둔화 흐름은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3일 미 노동부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해 2021년 2월(1.7%) 이후 4년여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다우존스 전문가 전망치(2.4%)보다 낮은 수치로 전월(2.4%) 대비 상승 폭도 둔화됐다. 가정용 식품 가격은 2% 상승했지만, 에너지 가격이 3.7% 하락하며 전반적인 소비자물가를 끌어내렸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해 시장 전망치에 부합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의 영향으로 물가 급등 우려가 제기됐지만, 기업들이 아직 관세 인상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일부 기업들이 재고를 미리 확보해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이 전가되는 시기를 다소 늦출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하락도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4월 기준 미국의 휘발유와 연료유 가격이 각각 11.8%, 9.6% 급락하는 등 에너지 부문이 전체 인플레이션 둔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로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4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하며 시장 전망치와 일치했다. 서비스 물가가 4.0% 상승했지만, 에너지 가격이 3.6% 하락하며 상승 압력을 일부 상쇄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로존의 CPI가 몇 달 안에 목표치인 2% 수준에 도달하고 내년에는 1.7%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 유럽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고 있어 올해 하반기가 되기 전에 2% 목표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은, 내수 침체에 금리 낮춰 소비·투자 살려야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면서 이제 시장의 관심은 금리 인하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연 2.50%로 0.25%p 인하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동안 네 번째 금리 인하다. 민간 소비·건설투자 등 내수 부진으로 이미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보다 뒷걸음쳤고, 미국발 관세전쟁 등의 영향으로 수출까지 불안한 상황에서 금리라도 낮춰 소비·투자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한은은 향후 금리 인하 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예고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민간소비가 점차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1분기 실적이 부진한 데다 2분기 회복세도 당초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올해 성장률 0.8%를 전망했을 때, 순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제로(0)였다”며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인 수출 경쟁력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중국과의 경쟁 격화로 약화된 가운데, 내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35만1,000원으로 전년 대비 4.5% 올랐지만, 고물가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확대로 실질소비지출은 7개 분기 만에 감소했다. 1~3월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도 1.4% 증가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인 2.1%를 밑돌았다. 이 총재는 “애초 예상보다 성장세가 크게 약화됐기 때문에 향후 인하 폭이 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5월 금통위에서 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