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40년 뒤 나랏빚 3배, 성장률 높이고 재정지출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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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성장 유지 시 2065년 국가부채비율 156.3% 고령화로 복지지출 급증, 성장률은 0.3%까지 둔화 "재정 긴축 없이는 감당 불가" 경고

206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56.3%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올해 국가채무비율(49.1%)과 비교하면 40년간 3배로 높아진다는 의미로, 비(非)기축통화국의 재정 한계선으로 여겨지는 60%의 2.6배다.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화폐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아 나랏빚이 불어나면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가 커진다.
중립 시나리오로 봐도 韓 국가채무비율 156%
3일 기획재정부는 저성장과 저출생을 각각 분류해 총 5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우선 현재의 인구 감소와 성장률 하락 추세가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기준 시나리오가 마련됐다. 그 외에 인구와 성장이라는 두 가지 변수가 변화하는 경우에 대해 낙관과 비관 시나리오를 각각 제시했다. 기준 시나리오에 따르면 2065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56.3%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 전망이 유지되고 인구 변수는 개선되는 ‘고위중립’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국가채무비율이 144.7%로 낮아지지만 인구 변수가 악화하는 시나리오에서는 169.6%까지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인구 변수는 유지되지만 성장이 개선되는 경우에는 133.0%, 성장 변수가 악화하는 경우에는 173.4%로 각각 국가채무비율이 변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재정 악화의 뿌리는 인구 구조 변화다. 생산연령인구는 올해 3,591만 명에서 2065년 1,864만 명으로 반토막 나고, 고령화율은 같은 기간 20.3%에서 46.6%로 급등한다. 대폭 늘어난 고령층을 부양하기 위한 의무지출 비중은 13.7%에서 23.3%로 뛰어오른다. 총수입은 GDP 대비 24.2%에서 24.1%로 사실상 정체되는 반면, 총지출은 26.5%에서 34.7%로 늘어나면서 세입과 세출의 불균형이 커진다.
문제는 이 같은 전망이 ‘현상 유지’를 가정한 추계라는 데 있다. 실제로는 정부 재정지출 확대 여부가 장기 재정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 정부는 최근 중기재정계획에서 임기 내내 총지출 증가율을 연평균 5%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올해도 추가경정예산으로 적자국채 발행이 크게 늘었다. 이런 기조가 이어지면 이번 전망에서 제시된 중립적 경로보다 채무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채 발행 증가는 곧 조달비용 확대를 의미한다. 늘어난 이자 부담은 재정지출을 더욱 압박하고, 국채금리 상승은 시중금리를 끌어올려 가계와 기업의 차입 비용까지 늘린다. 이는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성장 잠재력 자체를 갉아먹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이번 전망치인 156.3%는 오히려 보수적인 수치일 수 있으며, 실제 국가채무비율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재정적자에도 728조 확장재정, 野 “재정파탄” 우려
이에 경제 전문가들은 나랏빚 증가 속도를 완화하기 위해선 선제적인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경고하지만, 정치권에서는 2026년도 예산안을 두고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728조원 규모의 2026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여당 측은 "어려운 경제와 민생을 하루속히 회복시키는 마중물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으로 재도약할 수 있게 주춧돌을 놓는 예산안"이라고 자평했다.
여당은 이어 “경기침체기에 건전재정으로 편성된 예산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세수증가로도 이어지지 못해 오히려 재정건전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며 “지금 시기에는 발상을 전환 적극재정으로 경제를 살려 세수도 늘려서 재정여력을 확충하는 재정의 선순환효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가 실기한 연구개발(R&D) 예산 감축을 반면교사 삼아 역대 최대 수준의 증가율로 R&D 예산이 편성됐고 인공지능(AI) 3강 진입을 위한 과감한 투자도 반영됐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야당 측은 “전례를 찾기 힘든 급격한 재정 확대”라고 힐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총지출 규모가 전년 대비 무려 55조원이 증가했고, 그 결과 국가채무는 142조원 늘어나 1,415조원을 넘어섰다”며 “정부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내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4.0%로, 1.2%포인트 악화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8%에 불과하고, 경기 침체로 세수 감소가 뻔한 상황에서 지출 확대를 감당할 방법은 결국 무리한 증세와 국채 발행뿐”이라고도 우려했다. 그러면서 “재정은 결코 화수분이 아니다. 세입 추계를 현실적으로 반영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며 “무분별한 확장은 결국 재정 파탄으로 이어지고, 늘어난 국가 채무는 미래 세대의 짐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요 선진국도 재정 악화 우려 확대, '재정적자-포퓰리즘 파멸적 악순환'
이 같은 우려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역시 재정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국채 가격이 동반 급락하고 있다. 먼저 영국의 경우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국채 30년물 금리가 장중 5.72%까지 올라 1998년 이후 27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속 물가 상승) 우려 때문이다. 유로존과 미국 등 여타 선진국 물가 상승률이 2%대로 떨어졌음에도, 영국은 4%에 육박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금리 인하가 어려워 국채 추가 발행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이미 영국 국가부채는 GDP를 훌쩍 넘어섰다.
프랑스 국채 30년물 금리도 2일 4.507%로 마감하며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프랑스는 긴축 재정 예산안을 놓고 내각과 야당이 끝장 대치를 벌이고 있다. 바이루 총리는 “국가 재정이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며 재정 적자 목표치를 올해 GDP 대비 5.4%에서 내년 4.6%로 줄이는 예산안을 내놨다. 야당과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총리는 정부 재신임 투표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미국에서도 장기채 금리가 연일 치솟고 있다. 2일 미국의 30년물 금리는 장중 4.999%까지 치솟으며 심리적 한계선인 5.0% 턱밑에 닿았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가 위헌이라고 판정해 관세 세수의 불확실성이 커졌는데, 대규모 감세 법안 때문에 재정 적자가 10년간 3조4,000억 달러(약 4,740조원) 더 불어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가부채 비율 세계 1위인 일본에선 정국 불확실성이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결국 야당 공약대로 소비세 감세 등이 관철되면 국채 금리는 더욱 밀려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다. 3일 일본 국채 30년물 금리는 3.28%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일본 재무성은 내년 국채 이자로만 13조435억 엔(약 122조원)을 편성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들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장기채 급등 상황에 대해 ‘재정 적자-포퓰리즘의 파멸적 악순환(deficit-populism doom loop)’이란 진단을 내놨다. 재정 적자 확대→채권 금리 급등→정부 긴축 재정 실행→국민과 정치권 반발→포퓰리스트 세력 득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선진국들이 기준금리 인하기 속에서도 국채 금리 급등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통화정책이 장기 국채 금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각국의 재정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역시 정부가 적자 국채를 100조원 이상 발행하는 예산안을 편성하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정부 주도의 3,500억 달러(약 487조7,000억원) 투자를 약속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국채 금리 급등 가능성이 커, 재정 적자-포퓰리즘의 파멸적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