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남성성’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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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 강하면 ‘독재’ 및 ‘긴 노동 시간’ 선호 ‘전통적 여성 영역’ 기피하고 ‘도움받기’ 꺼려 ‘변화 가능한 변수’ 인식이 ‘정책 효과성’ 제고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책입안자들이 노동시장과 건강, 민주주의 등을 생각하며 주로 떠올리는 단어는 임금, 세금, 제도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남성성’(masculinity)이다. 70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강인함이나 지배, 위험 감수 등의 전통적 가치에 끌리는 남성들은 술을 많이 마시고, 정신건강 치료를 꺼렸으며, 독재적인 지도자를 지지했고, 더 긴 시간을 일했다.

‘남성성’ 높으면 ‘독재 정권 지지율’도 높아
구체적으로 전통적 남성성 규범에 대한 수용이 1표준편차만큼 높다는 것은 독재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8%P 더 높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노동 시간이 4% 더 길며, 건강을 챙기는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해당 효과는 투표 행위와 노동 시장은 물론 학교에서도 나타났다. 작년 말 아시아의 대표적 민주 국가인 한국에서 일어난 계엄령 선포와 이후의 갈등도 남성성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정치적 균형을 빠르게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남성성이 무시해도 좋은 문화적 특성이 아니라 영향력을 가진 거시경제적 변수라는 것이다. 시장은 노동 공급 및 정치적 리스크 등의 지표를 통해 해당 요소의 영향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또 교육 시스템은 학교 활동과 친구 관계를 통해 남성성을 강화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긴 노동 시간 선호, ‘도움 청하기’는 주저
전 세계 80,00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승리(winning), 감정 조절(emotional control), 폭력(violence)의 가치를 물어본 조사가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한 결론은 남성성 규범을 통해 일반적인 성역할에 대한 관념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변수들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남성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남성들일수록 긴 노동 시간을 원하고, 전통적인 ‘남성의 영역’에 몰려 있으며, 도움 청하기를 주저한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민주주의보다 군부 통치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이러한 정체성을 무시하면 정책 효과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교육 훈련이라고 해도 여성성이 부각되거나 사회적 신분이 낮아 보인다고 인식하면 남성의 참여를 유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신건강 치료가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이용률이 낮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시장에서 행해지는 견급생 제도나 진로 안내 등의 프로그램에서는 신규 일자리의 기술적 측면이나 미래 지향성 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 학교에서는 친구들 사이의 오해와 편견이 위험한 행동을 부추기고 도움을 청하는 행동을 억누른다는 사실을 보여줘 ‘약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인식을 깨 줄 필요가 있다.

주: 남성성과의 관계(좌측), 성역할 관념과의 관계(우측)
한국, ‘케이팝’ 통해 ‘부드러운 남성성’ 수출
역사적으로도 무분별한 남성성의 확산이 위험을 부른 경우가 존재한다. 양 세계대전 사이 독일에서는 규율과 경직성, 부드러움에 대한 경멸로 대표되는 남성성이 폭력과 권위주의적 정치로 이어진 바 있다. 이로 인해 서열과 위험 감수가 지배적인 정치 문화를 형성해 경제적, 사회적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2020년대 한국의 경우는 이보다 조금 복잡하다. 노동 시간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OECD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장시간 노동국이다. 흡연율은 2008년의 절반까지 줄어들었지만 과음과 비만 등의 건강 위험도 20대에서 40대 남성을 중심으로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문제다.

주: 독일(좌측), 한국(우측)
이런 상황에서 작년에 벌어진 계엄령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자생력과 압박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한편 문화적으로 보면 한국은 K팝 아이돌을 통해 부드러운 남성성을 수출하면서 남성의 위상이 신체적인 힘에만 관련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기도 했다. 결국 남성성은 다면적이며 변화가 가능한 동시에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남성성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청소년기 교육을 통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것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감추려는 것이든, 특정 분야를 거부하는 것이든, 냉정함을 힘과 동일시하는 것이든 정체성에 대한 집착이 선택을 왜곡할 수 있음을 알게 해줄 필요가 있다.
남성성, ‘정책 변수’로 인식해야
도움을 청하는 행동이 본인의 위상을 해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 상담이나 개인 교습을 받고 진로를 바꾸는 모든 행위도 규율과 신뢰성을 높이는 행동으로 보여져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적이라고 인식되는 직업 영역에 대한 인식도 직업 수행에 요구되는 기술, 정확성, 팀워크를 강조해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한편 남성성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위험 감수와 자유를 제한하는 정치 체제를 지지하는 성향은 ‘대박 아니면 쪽박’ 식의 투자 분위기를 조성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남성성을 투자 위험 회피의 변수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해당 지표가 높은 지역에서는 안정적이고 리스크가 제한된 투자 포트폴리오에 집중하고, 낮은 상황에서는 인적자원 요소가 강한 서비스 산업까지 투자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성성을 불편의 기정사실이 아닌 정책 변수로 인식함으로써 정부와 교육 당국은 안정적인 노동시장과 효과적인 교육 현장을 만드는 것은 물론, 독재적인 지도자 앞에서 취약성을 드러내지 않는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Political Economy of Masculinity Norms: Why Identity Still Moves Markets and Classroom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