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 깨진 강남 아파트, 6·27 대출 규제에 서울 경매 시장 얼어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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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강남구 아파트 경매 낙찰률 0% 서초구는 1건, 송파구도 4건에 그쳐 다만 집값 하락 신호로 보긴 어려워

정부가 '6·27 대출 규제'를 통해 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묶으면서 지난달 서울 아파트 경매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특히 '불패'로 불리던 강남권의 낙찰률이 급감했다. 강남구는 단 한 건도 낙찰되지 않으면서 낙찰률 0%를 기록했고 서초구와 송파구도 각각 1건과 4건에 그쳤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경매 시장의 주요 지표가 주춤함에도 이를 집값 하락의 신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강도 높은 규제로 거래가 막혔을 뿐 수요가 여전히 살아 있어, 향후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따라 시장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서울 아파트 낙찰률 3.1%p 하락한 40.3%
4일 경·공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서울 경매 시장에 나온 아파트 221가구로 이 중 89가구가 낙찰됐다. 낙찰률은 40.3%로 전월(43.4%) 대비 3.1% 포인트 하락했다. 평균 경매 응찰자도 7.79명에서 7.76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낙찰가율은 96.2%로 전월 95.7%와 비교해 0.5% 포인트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6·27 대출 규제가 경매 시장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수도권 주택 경매 자금 조달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데다, 낙찰 후 6개월 내 전입 의무까지 부과되면서 투자 수요가 위축됐다는 평가다.
자치구별로 보면 강남구의 낙찰률이 0%를 기록했다. 8월 한 달간 강남구에서는 삼성동 힐스테이트 2단지, 청담동 청담린든그로브, 삼성동 그라나다 등이 매물로 나왔으나 모두 유찰됐다. 7월에는 23건 중 4건이 낙찰됐으나, 이달에는 한 건도 팔리지 않았다. 서초구에서는 반포동 삼호가든맨션 1건만 매물로 나와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약 73%인 4억5,100만원에 낙찰됐다. 송파구는 8건 중 4건이 낙찰됐다. 잠실르엘 등 인기 단지에서 낙찰 사례가 나왔으나, 일부 아파트에서는 감정가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에서 낙찰됐다.
반면, 성동·동작구 등 한강변 단지나 재건축 단지처럼 투자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는 곳에는 '미래 가치'를 노린 현금 부자들이 몰려 감정가를 크게 웃도는 고가 낙찰이 이어졌다. 낙찰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리모델링 추진 단지인 동작구 사당 극동아파트 전용 47㎡(131.8%)로, 지난달 13일 경매에서 8억9,900만원에 팔렸다. 성동구 금호동에 위치한 전용 85㎡ 두산아파트도 감정가의 116%인 12억7,600만원에 낙찰됐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14단지 전용 108㎡는 감정가의 114.1%인 23억 8,500만 원에 낙찰됐다.
6.27 규제 전까지는 아파트 경매 시장 활기
6.27 대출 규제 전까지만 해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 수요가 몰리며 경매 시장이 활기를 보였다. 실제로 지난 5월 강남구에서만 9건의 경매에서 낙찰이 이뤄졌는데 매각가율이 103.4%를 기록했다. 매각가율이 100%를 넘었다는 것은 감정가보다 비싸게 낙찰됐다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경매 매물의 수요자가 많아질수록 매각가율은 높아진다. 이 시기 진행된 서울 강남구 래미안포레 전용 101㎡ 경매에는 20명이 몰리며 18억2,150만원에 매각됐다. 같은 면적의 래미안포레가 최근 일반 매매에서는 17억원에 거래됐다.
송파구도 같은 달 99.8%의 높은 매각가율을 기록했다. 4월 한 달간 송파구에서 이뤄진 아파트 경매 9건의 매각가율은 108.8%였다. 이 기간 서울 평균 아파트 경매 매각가율이 87.5%였던 것과 비교하면 강남권의 투자 수요가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여의도와 목동에도 경매로 아파트를 낙찰받으려는 수요가 몰렸다.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전용 157㎡는 40억8,000만원에 낙찰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전월 같은 면적의 일반 매매가 39억~40억원 사이로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시세보다 비싸게 낙찰된 셈이다.
다만, 당시 과열된 경매 시장과 달리 일반 매매 시장은 한산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자료를 분석해보면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아파트 매매는 105건으로 전월(750건) 대비 약 86% 거래가 감소했다. 같은 기간 송파구도 751건에서 123건으로 거래가 급격하게 줄었다. 서초구는 같은 기간 620건에서 48건으로 매매가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3월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이 확대 재지정되면서 실거주 의무가 생긴 강남 3구 아파트를 중심으로 투자자들이 경매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말 탄핵정국에는 경매 시장 얼어붙어
부동산 매수 심리는 이전에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대출 규제, 정치적 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말에는 12.3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서울 아파트 경매 시장이 움츠러들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경매는 총 244건 진행됐는데, 이 중 103건만 낙찰됐다. 낙찰률은 42.2%로 전월(48.2%) 대비 6%포인트가량의 큰 낙폭을 보였다. 낙찰가율도 한 달 전 94.9%보다 3.0%포인트 떨어진 91.9%로 집계됐다. 응찰자 수 역시 6.21명으로 한 달 전과 비교해 0.4명 줄었다.
불황기에도 '불패'라 불리던 강남3구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이 시기 유찰되는 사례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중순 경매로 나온 송파구 대장주인 잠실엘스 전용 119㎡는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대치동 강남구 대치아이파크 전용 120㎡도 계엄령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경매를 진행했으나 새 주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감정가가 38억9,000만원으로 40억원대 수준인 같은 평형대 시세 대비 1억원가량 저렴했고, 마찬가지로 실거주 의무를 피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응찰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정치적 혼란에 더해 새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 등으로 인해 경매 시장의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9월 정부가 부동산 공급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강남3구 경매 침체를 곧바로 집값 하락 신호로 연결 짓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대출 규제의 영향으로 거래가 제한됐을 뿐 수요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고가 아파트가 잇따라 유찰됐음에도 인근 매매가격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향후 시장 흐름은 규제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경우, 강남권의 낙찰률은 빠르게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규제가 장기화되면 유망 단지를 중심으로 한 국지적 과열만 심화되고 일반 단지는 거래 절벽에 갇히는 양극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 낙찰률 0%는 시장이 무너졌다기보다 정부 규제로 거래 자체가 봉쇄된 결과”라며 “규제 완화 여부가 경매시장 정상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건축 단지 쏠림이 심해지면 일반 아파트와의 가격 격차가 벌어지고, 실수요자들은 더욱 밀려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