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미국 관세가 소비세나 다름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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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관세, 인플레이션율 0.4% 추가 최대 피해자는 미국 수입업체와 소비자 저소득 가구 피해도 ‘무시 못 해’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세에 대한 정치적 논쟁은 흔히 무역 상대국에 대한 응징이나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포장되고는 한다. 하지만 미국 의회예산처 추산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관세 조치가 올해와 내년에 걸쳐 0.4%의 연간 인플레이션을 추가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 내 가구와 기업이라는 얘기다.

미국 관세 최대 피해자, 중국 아닌 ‘미국 기업과 가구’
숫자 자체만 보면 매우 작아 보이지만 이 정도면 미국 중위 소득 가구의 일주일 치 실질 임금에 해당한다. 관세 때문에 통장에 들어와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근로자들의 소득이다. 관세로 인한 직접적인 비용도 해외 수출기업이 아닌 미국 수입업체와 학교, 가구가 대부분을 부담하게 된다.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가 2018~2021년 기간의 관세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수입 물가는 거의 정확하게 관세율을 따라 오른다. 미국 정부가 관세를 인상하자마자 해당 비용이 공급망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다. 현재 도입되고 있는 신규 관세의 영향도 마찬가지다. 연방 정부의 자산 상태는 더 견고해 보이겠지만 가구와 학교의 예산은 압박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은 교묘하게 세금 부담 주체를 바꾼다. 정책 당국은 소득세 과세 구간에 대한 부담스러운 논의를 피하고 이름만 바꾼 소비세라고 할 수 있는 관세를 통해 국고를 채우고 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올해 도입된 일련의 관세 조치들이 미국 가구당 연간 1,300달러(약 181만원)의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한다. 관세의 시기와 구성에 따라 물가 역시 1.8~2.3%의 상승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역진세 성격으로 저소득 가구에 더 큰 피해
여기에 관세는 역진세적 성격이 강하다. 일반재에 해당하는 의류, 신발, 식료품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 저소득 가구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부자에 대한 과세를 원칙으로 하는 정부라면 완전히 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주: 20% 이하, 20%~40%, 40%~60%, 60%~80%, 80%~100%, 상위 1% 소득 계층(좌측부터) / 2017년 트럼프 감세 연장 조치 영향(적색), 관세 영향(하늘색), 순 영향(청색)
교육 예산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는 학교 건설 비용을 증가시키고, 전자제품 및 반도체에 대한 과세는 크롬북이나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연구실 장비 비용을 치솟게 한다. 관세가 경제 전체에 적용되기 때문에 학교 당국은 더 싼 구매처를 찾기도 어렵다. 양이나 질 중 하나를 포기하거나, 시설 업그레이드를 연기하거나, 지역 주민들에게 추가 세금을 거두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숫자는 이미 바뀌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 재고가 소진된 이후 소매 기업들은 관세를 내세워 통조림류, 하드웨어 장비, 전자제품 가격을 올렸다. 수입 물가는 수요가 냉각되는 시점인데도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압박하고 있다.
관세 절반이 미국 수입업체에 전가
결국 관세 비용을 부담하는 쪽은 정해져 있다. 지난 관세를 연구한 결과들은 한결같이 관세 인상이 거의 대부분 수입품 가격과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 결과를 입증한다. 이 틈을 타 관세와 무관한테도 제품 가격을 올리는 국내 기업들도 있다.
올해 상반기도 마찬가지다. 대략 절반의 관세가 미국 내 수입업체에 비용으로 전가됐고, 소비자들도 상당한 비용을 떠안았다. 해외 수출업자의 부담은 그렇게 크지 않다. 정치인들이 상대국을 벌준다며 발의한 정책의 부작용을 국민들이 감당하는 모습이다.

주: 미국 수입업체, 미국 소매 및 유통업체, 미국 소비자, 중국 수출업체(보기 위부터)
대규모 소비세 인상과 ‘다를 바 없어’
관세 지지자들은 중국의 생산 과잉에 대한 대응 및 연방 정부 예산 문제 해결 등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관세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광범위한 관세 조치는 전면적인 세금 인상과 다를 바 없이 가구와 학교, 대학의 구매력을 끌어내린다. 따라서 포괄적 관세는 특별한 이유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일정 기간 후 자동 소멸하는 게 맞다.
또 관세 수입의 일부는 타이틀 1(Title I, 저소득 학생 지원 프로그램), 장애인 교육법(IDEA), 펠 그랜트(Pell Grant, 저소득 학생 보조금) 등을 조정해 학교를 포함한 공익 구매자들을 위한 충당금에 사용돼야 한다. 그리고 진짜 목표가 상대국의 덤핑이나 보조금을 통한 경쟁 전략을 봉쇄하는 것이라면 관세보다는 구체적인 목표에 근거한 정책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관세 조치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일반 소비세 인상 효과로 모양이 잡혀가고 있다. 물가는 소리 없이 올라 누적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부담은 가계를 향하고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ariffs Are Taxes—And the Bill Lands at Hom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