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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전출세, 해외주식까지 확대 2027년 1월 1일부터 시행 “자산가들 이민 시점 앞당길 수도”

자산가들의 해외 이민 고민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기대했던 상속세 개편은 사실상 장기 과제로 미뤄졌고, 정부의 증세 기조는 명확해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국외 이주 시 해외주식에까지 양도세를 부과하는 세제 개편안이 발표되면서,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선 이민을 서두르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정부 세제개편에 이민 수요 확대 분위기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두고 정치권 내 갈등이 격화됐다. 핵심 쟁점은 주식 양도소득세의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보유액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이다. 국민의힘은 “과세 대상을 넓히는 증세 조치로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반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대주주 기준 현행 50억원으로 유지하자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한 상황이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상속세 완화를 기대했던 고액 자산가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증시 활성화를 위해서 상법 개정과 더불어 상속세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번 세제개편안에 빠지면서 사실상 현 정부 내에서 현실화 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법인세 인상 등 ‘부자 감세’에 대한 부정적인 현 정부의 기조가 확인된 상황에서 이를 줄이고자 해외 이민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 회계사는 “코스피 5,000이 이번 정부 핵심 아젠다가 되면서 상속세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며 “현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에서 해당 내용이 빠지면서 앞으로도 추진 동력을 얻긴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실제 해외로 나가는 자산가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외전출세 신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외전출세를 신고하고 출국한 대주주는 총 29명으로, 국외이민 목적 자산 이동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외전출세는 출국 전 10년 중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한 거주자가 출국 시점에 보유한 주식 등을 양도한 것으로 간주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대주주가 보유한 국내 주식의 경우, 양도소득 과세표준이 3억원 이하인 경우 22%, 초과 시 27.5%의 세율이 적용된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18년 13명이었던 신고자는 매년 증가 추세다.

국외전출세 대상에 '해외주식'도 포함
이번 세제개편안이 발표되면서 새롭게 주목 받는 변화는 국외전출세 과세 대상에 ‘해외주식’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국내 상장·비상장 주식 대주주에 한해 적용됐으나, 2027년 1월 1일부터는 대주주 여부와 무관하게 해외주식을 일정 규모 이상 보유한 거주자도 국외전출세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6억원에 매수한 해외주식의 시가가 10억원인 상황에서 해외로 이민을 가는 사람은 시가와 취득가의 차액인 4억원을 양도소득으로 간주당해 8,438만원의 국외전출세를 내야 한다. 국외전출세는 보유 주식을 팔지 않더라도 판 것으로 간주해 세금을 매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한국인의 해외주식 보유 규모는 상당하다. 올해 7월 기준 국내 투자자의 테슬라 보유 금액은 210억 달러(약 28조7,000억원)며, 엔비디아가 136억 달러(약18조3,600억원)로 뒤를 잇는다. 주요 글로벌 기술주의 급등과 함께 한국 개인 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비중은 계속 확대되는 중이다.
이에 따라 전출세 납부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주식에 일정 수준 이상 투자한 자산들이 모두 포함되면서다. 지금까지는 싱가포르, 미국, 홍콩 등 외국 주식에 대한 보유 이력이 있어도 출국 시 과세에서 제외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실현 상태의 이익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관된다. 해외에 분산된 자산일수록 세금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해외 미실현이익 과세 확대
또 기존 절세 전략에 대한 차질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일부 고액자산가는 자산을 해외로 옮기기 위해 세법상 비주거자 요건을 충족한 뒤 자산이전, 상속 및 증여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절세 플랜을 짰다. 그러나 개정안 시행 이후에는 출국 시점에 보유 중인 해외 주식의 미실현 이익까지 포함해 세금을 납부해야 하다 보니 이 같은 전략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세제개편을 통해 해외주식은 대주주 여부와 관계없이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만큼 차명 계좌나 신탁을 통한 우회, 법인 명의 분산 전략 등의 회피 여지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으로 회피가 어려운 세목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그간 고액자산가들이 선호해 온 신탁계좌, 법인 보유, 외국계 PB 통합관리계좌 등의 운용 전략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정안은 자산가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 비중이 높은 헤지펀드 운용사나 사모펀드(PEF)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펀드 구조 상 GP(위탁운용사)가 직접 국외주식을 보유하거나, 공동투자 구조를 통해 개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는 경우 등에서 국외전출세 부담이 누적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