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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규제 직격탄, 실수요 중심 재편
집주인·세입자 모두 월세 선호 증가
규제 장기화에 거래 위축 심화 가능성

정부의 6·27 부동산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수도권 아파트 시장 내 수요 심리가 급속도로 위축된 모습이다. 대출 규제 시행 직전과 비교해 거래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고가 물건 시장에서는 계약 취소도 속출했다. 이와 함께 임대차 시장에서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임차인들이 대거 월세·반전세로 눈을 돌리면서 ‘전세의 월세화’에도 속도가 붙고 있. 이에 전문가 사이에선 임차인들의 주거 불안정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매매 1만4,528건→4,646건
1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28일부터 이달 10일까지 43일 동안 신고된 서울 아파트 유효 거래량은 총 4,646건으로 파악됐다. 정부의 대출 규제 직전 43일(5월 16일~6월 27일)간 신고된 서울 아파트 거래가 1만4,528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수치다. 이 기간 9억원 이하 거래 비중은 37.7%(5,473건)에서 49.5%(2,052건)로 11.8%p 확대됐다.
구체적으로 6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 비중은 대출 규제 전 14.7%에서 대출 규제 후 22.8%로 8.1%p 늘며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같은 기간 6억원 초과~9억원 이하는 23.0%에서 26.8%로 3.8%p 증가했다. 반면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 비중은 34.7%에서 대출 규제 후 28.6%로 6.1%p 축소됐으며, 15억원 초과~30억원 이하는 23.0%에서 15.6%로 7.4%p 줄었다.
고가 아파트에 대한 매수세가 급격히 식으면서 계약 취소 건수도 증가했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에 의하면 올 들어 지난달 27일까지 거래된 수도권 아파트 가운데 6·27 대출 규제 이후 계약이 취소된 건수는 총 1,153건이다. 이 가운데 10억원 초과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403건)로 집계됐다. 대출 규제 이전 전체 계약 취소 가운데 10억원 초과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26.9%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8%p 이상 급증한 셈이다.
위축된 매수 심리는 경매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의 조사에서 7월 서울 아파트 낙찰률은 43.4%로 전월(46.5%) 대비 3.1p 하락했다. 낙찰가율 역시 95.7%로 전월(98.5%)보다 2.8%p 떨어지면서 올해 2월(91.8%)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정부의 6·27 부동산 대책 이후 대출 한도 축소와 투자 수요 위축이 맞물리면서 서울 아파트 경매 지표가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내 거래 심리가 단기간 내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대출 한도 축소로 인한 자금 조달 부담이 계속되는 한, 매수세 회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 비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70%로, 매매가가 9억원일 때 최대 6억원의 대출 실행이 가능하다. 이처럼 9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규제 효과가 큰 만큼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된 거래 구조가 고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출 한도 막힌 실수요층, 월세 시장 진입
이 같은 대출 규제의 여파는 비단 매매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전세를 낀 매매가 크게 줄면서 임대차 시장의 흐름도 빠르게 변화한 모습이다. 그간 국내 임대차 시장은 빌라,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시장과 달리 전세사기 등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만큼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 또한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로 ‘갭투자(전세 끼고 매입)’가 차단되면서 아파트 시장 역시 전세의 월세화에 속도가 붙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신규 임대차 계약 5,555건 중 월세는 2,345건(42.2%)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1.5%)보다 소폭 늘었다. 또 같은 달 2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임대차 갱신계약 4,599건 중 233건(5.1%)은 전세에서 월세 또는 반전세로 전환됐다. 그 결과 월세 및 반전세 전환 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3.5%)보다 1.6%p 상승했다. 월세나 반전세를 선택해 현금 흐름을 안정화하려는 임대인과 전세대출 한도 축소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모양새다.
월세 전환 추세는 고가 주택 임대 시장에서도 두드러진다. 국토부에 의하면 7월 한 달간 체결된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 중 월세 500만원 이상인 고액 계약은 146건으로 전체 거래의 약 2%를 차지했다. 과거에는 고가 월세 시장이 일부 외국인 주재원이나 고소득층 등에 한정됐지만, 이제는 기존 전세 수요자 중에서도 대출 한도와 금리 부담을 피하려는 이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하는 흐름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임차인 주거비 부담 가중, 공급 확대 등 병행 대책 필요
여기에 정부가 추가 대출 규제를 예고하고 나서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 또한 가중하는 양상이다. 현재 정부는 전세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개인 연간 소득 대비 모든 금융 부채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의미하는 DSR은 현행 40%로 제한되고 있다. 이미 주담대나 신용대출 등으로 40%를 채운 금융 소비자는 향후 전세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은행권은 이미 본격적인 전세대출 문턱 높이기에 돌입한 상태다.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절반 수준으로 줄인 상황에서 주담대 관리만으론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신한은행은 갭투자 방지를 위해 ‘임대인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오는 10월까지 제한했고, 근저당이 있는 주택에 입주하는 세입자에 대한 대출도 한시 중단했다. 또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9월 중 주담대·전세대출 추가 접수를 중단할 계획이다.
대출 보증 비율 축소도 전세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6월 수도권과 규제지역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100%에서 90%로 줄인 데 이어, 7월에는 80%로 추가 하향했다. 이로 인해 금융사의 위험 부담이 커지고, 세입자가 받을 수 있는 전세대출 한도도 줄어들었다. 원하는 금액만큼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세입자들은 보증부 월세(반전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7월(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임대차 갱신 계약 중 전세가 반전세로 바뀐 건수는 220건으로 1년 전(159건)과 비교해 60건 넘게 늘었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시장 참여자들의 단기적 현금 흐름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주거비 부담 증가와 임차인 주거 불안정 심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전세대출 규제가 계속되면, 반전세와 월세 계약이 증가하고 지방은행이나 제2금융권 또는 사금융을 찾는 이들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짚으며 “결국 주거 비용이 오르면서 실수요자들의 고충 또한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다 근본적인 시장 불안 해소를 위해서는 대출 규제와 공급 대책을 병행해 수급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