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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선트 재무장관 "연준, 9월 빅컷 단행해야"
"6~7월에 금리 인하했어야 하는 데 지연돼"
물가만 보다가 고용 시장 부진 놓쳐선 안 돼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놓고 고심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금리 인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파'로 평가받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조기 사임을 촉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연준을 향해 0.5%포인트의 금리인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고용 통계를 대규모 하향 조정한 것을 근거로 이미 6월이나 7월에 인하할 것이 지연됐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금리 인하 지연되며 美 경제 큰 피해"
12일(현지 시각) 베선트 장관은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이 빅컷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며 "9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포인트 금리 인하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배경으로는 고용 시장의 부진을 지목했다. 그는 "원래 제대로 된 수치가 제때 나왔다면 연준은 6월이나 7월에 금리를 인하했을 것"이라며 "데이터 품질 문제는 차후에 확실히 논의할 사안으로, 현재 우리가 진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연준이 지연된 금리 인하를 9월에 단행할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베선트 장관은 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환상적"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했다. 같은 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도 연준을 향해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제롬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를 너무 늦게 해 미국 경제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지금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연준 본부 개보수 공사와 관련해 "파월 의장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파월 의장의 조기 사임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연준이 금리 인하를 결정하는 FOMC 회의는 오는 9월 16∼17일 개최된다. 현재 연준 이사로 지명된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이 미 연방 상원의 인준을 통과해 이사로 임명될 경우,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날 베선트 장관도 마이런 자문위원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베선트 장관은 “마이런 자문위원장이 조속히 상원의 인준을 받기 바란다"며 "그는 신중하고 체계적이며 연준에 대해 많은 의견을 갖고 있어 금리 인하 등과 관련해 훌륭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비농업 일자리 증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연준의 금리 정책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건 비단 트럼프 행정부만이 아니다. 연준 내부에서는 미셀 보먼 연준 부의장은 노동시장 약화와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가 크지 않은 점을 들어 올해 남은 FOMC 회의에서 세 차례 금리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현재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보다 더 시급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연준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직격했다. 인플레이션 걱정에만 사로잡혀 정작 더 심각한 고용 부진과 주택시장 붕괴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발표한 고용통계 수정치도 논란을 키웠다. BLS가 발표한 5월과 6월 고용통계 수정치를 보면, 두 달간 고용 증가 건수가 당초 29만1,000개에서 3만3,000개로 25만8,000개나 하향 조정됐다. 이는 초기 발표 후 추가 데이터를 반영한 결과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직후를 제외하면 1979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하향 수정이다. 7월 고용 지표도 좋지 않다. 지난달 비농업 부문 일자리는 7만3,000개 늘어나는 데 그쳐 시장 예상치인 11만 개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를 기록했다.
고용 시장 둔화와 함께 현재 미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 요소로는 주택 시장 침체가 꼽힌다. 최근 모기지 금리가 7%에 근접하면서 주택 시장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주택 판매도 부진하다. 6월 신규 단독주택 판매는 전월 대비 0.6% 상승했다. 연율 기준으로는 62만7,000호로 추정된다. 이는 전월(62만3,000호) 대비 약간 오른 수치이나, 시장 기대치인 65만 호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미판매 주택 수는 51만1,000호로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모든 주택 재고를 소진하는 데는 9.8개월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7월 물가 2.78% 올라 전월 대비 오름폭 확대
이러한 상황에 최근에는 물가까지 흔들리고 있다. 12일 미 노동부는 7월 미국 CPI가 전년 동월 대비 2.78% 상승했다고 밝혔다. 전월 상승률(2.7%)보다 오름폭이 소폭 확대됐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전월과 비교하면 0.3% 오른 수치다. 이번 물가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이른바 '미국 해방일(America’s Liberation Day)'에 상호관세를 발표한 뒤 약 두 달 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시장에서는 관세 효과가 본격적으로 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7월 CPI는 9월 FOMC 회의를 앞두고 발표되는 마지막 물가 지표로, 향후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연준 내부에서도 금리 인하를 두고 찬반 대립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JP모건은 "관세 영향으로 가격이 광범위하게 오르고 호텔·항공·의료 등 서비스 부문도 상승세가 보이는 등, 앞서 파월 의장을 비롯한 통화 당국자들이 경고했던 여름철 물가 상승 가능성이 현실화됐다"며 "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 소매 판매, 실업수당 청구 등 거시 지표는 여전히 강세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한 번 경기 침체에 빠지면 정상 궤도로 회복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리는 만큼, 인플레이션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정확히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물가 상승률이 1~3% 범위 안에만 있으면 된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긴축 재정이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분을 일부 조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인의 가계 지출은 줄이면서도, 관세 정책으로 외국인이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되면 물가 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