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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양가 분양 참패→자금난 심화
불꺼진 단지 속출하며 통매각 증가
공사비·채무 회수 난항, PF ‘위기’

서울 고급 오피스텔 시장에서 미분양과 세금 체납 등을 이유로 공매 물량이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이다. 과거 지방에 집중됐던 현상이 강남을 포함한 서울 핵심 주거지로 확산되면서 일부 럭셔리 단지는 통매각까지 시도하는 상황이다. 높은 분양가와 가격 하락 가능성에 대한 부담이 수요 심리를 위축시킨 가운데 경매 시장 또한 냉각되며 고급 오피스텔 부지를 담보로 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회수 가능성도 낮아지는 형국이다.
부동산 광풍 타고 ‘럭셔리’ 바람
11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온라인 공매 시스템 온비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651-2 대지(1,114.6㎡)가 공매 물건으로 게시됐다. 9호선 언주역 초역세권에 위치한 해당 물건의 감정평가액은 757억9,280만원이다. 당초 하이엔드 오피스텔 ‘강남 피엔폴루스 크리아체’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세금 체납 문제로 건물도 올리지 못한 채 공매 시장으로 떠밀리게 됐다. 공매대행의뢰기관은 기흥세무서다.
강남 피엔폴루스 크리아체는 한 때 하이엔드 주택의 대명사로 불렸던 ‘청담 피엔폴루스’의 후속작으로 지하 6층~지상 18층, 1개 동에 도시형생활주택 29가구와 오피스텔 24실,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설계됐다. 전용면적 88~316㎡의 대형 평형 중심이었던 전작과 달리 39~59㎡로 1~2인 가구를 겨냥한 게 특징이다. 하지만 49㎡ 매물 기준 28억4,700만원에 달하는 높은 분양가 탓에 시장의 외면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공매행을 피하지 못했다.
롯데건설이 시공한 양재역 하이엔드 오피스텔 ‘서초 르니드’도 공매 시장에 등장했다. 올해 1월 준공·입주가 진행됐지만 오피스텔 총 156호실 중 3~19층의 100호실이 공매로 쏟아졌다. 이들 물건은 지난 6월 23일부터 지난 7월 31일까지 총 8회에 걸쳐 입찰을 진행했는데, 대다수의 호실이 유찰되며 주인을 찾지 못했다. 16개실의 근린생활시설 또한 모두 분양에 실패했다.
하이엔드를 표방한 이들 오피스텔의 공통점은 2020년대 초반 부동산 광풍이 불 당시 분양했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는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를 연이어 내놨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어난 유동성은 하이엔드 오피스텔로 몰렸다. 전매 제한, 15억원 초과 대출 규제 등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이어 불어닥친 미국발(發)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분양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 공매 시장에 나앉게 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를 문제로 지적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WM영업전략부 부동산연구원은 “오피스텔 시행사 입장에서는 사업성을 확보해야 하는 탓에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이 과정에서 인근 대단지 아파트와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고, 임대수익률까지 낮아지면서 수요가 위축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고금리 장기화와 공사비 상승 등 금융부담과 수요 둔화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미분양·자금난 등으로 공매 사례가 다수 발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시장 안정성 회복 요원
시장에서는 지방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시작된 통매각 현상이 최근에는 서울 강남권 하이엔드 주택 시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경기 불확실성과 분양가 급등, 소비심리 위축이 맞물리면서 ‘통매각’이라는 극단적인 유동화 전략이 지방을 넘어 수도권 핵심 주거지로도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표적인 사례는 강남구 도곡동에 들어선 ‘오데뜨오드 도곡’이다. 소형 럭셔리 주거 상품을 표방한 해당 물건은 높은 분양가와 도시형생활주택에 대한 수요 한계에 가로막혀 흥행에 실패했고, 결국 지난해 전체 84가구와 부대시설 24실이 공매에 부쳐졌다. 그러나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총 9차례 진행된 공매에서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1,830억원이던 최저입찰가격은 1,073억원까지 떨어졌으며, 현재는 수의계약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아예 착공조차 하지 못한 채 공매 시장에 나온 개발 용지도 속속 눈에 띈다. 서울 청담동 ‘포도 바이 펜디 까사’ 개발 용지는 초고가 분양가로 주목받았지만, 미분양과 자금난으로 공매에 넘어갔고, 종로구 효제동에 고급 오피스텔과 근린시설을 짓는 ‘효제아트PFV’ 프로젝트 역시 공매 물건으로 나오며 시장에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이와 같은 서울 고급 주거지의 공매 확산은 단순한 지역적 현상을 넘어 고가 주거시장 전반의 의 구조적 변화를 시사한다. 과거 지방 부동산 시장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수급 불균형이 이제 서울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 데다, 자금 조달 경색과 시장 침체가 이 같은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는 탓이다. 이는 다시 고급 주거시장의 안정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흔들고, 결국엔 금융권과 시행사에 또 하나의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권·건설업계 자금 경색 심화 우려
꾸준한 수요를 보여 온 서울 아파트 경매 시장도 빠르게 식으면서 비관적 전망에 힘을 보탰다. 경·공매 데이터 분석 업체 지지옥션에 의하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95.7%로 전달(98.5%)보다 2.8%p 하락하며 올해 2월(91.8%) 이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균 응찰자 수 역시 7.8명으로 전월(9.2명)보다 1.4명이 감소해 올해 1월(7.0명)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경매에 나온 아파트들이 대부분 기대 이하의 가격에 낙찰되거나 아예 낙찰되지 않는 사례마저 이어지면서 금융권과 투자자 사이에선 담보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 또한 끊이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고급 주거지를 담보로 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경우, 부동산 시장 위축과 경매시장 냉각이 겹치면서 예상 회수 금액을 달성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이는 다시 공사비 정산 지연 및 금융기관 부실 우려로 이어진다.
PF 회수가 어려워지면 당장 건설·시행사들의 자금 경색이 심화된다. 고급 주거 시설은 초기 투자금액이 크고, 분양가 회수 속도에 따라 수익성 또한 크게 좌우된다. 분양 실패 및 경매시장에서의 낙찰가 하락이 신규 자금 유입을 막아 사업 진행을 늦추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고급 오피스텔 부지처럼 수요층이 제한적이고 분양가가 높은 사업장은 회생 가능성이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과 같은 거래 절벽에서는 PF 시장의 안정화 또한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시장 전반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