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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뒤부터 25% 추가관세 행정명령 서명 '중국 견제' 이해 일치하는 두 나라 관계 "파탄은 없다" 낙관론 한순간에 사라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도에 총 50%의 관세 폭탄을 던졌다. 이번 조치는 무역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인도에 대한 압박인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휴전 협상 시한 종료를 앞두고 러시아를 겨냥한 평화협정 체결 압박 카드로도 해석된다.
상호관세 25%에 추가, 인도 관세 총 50%
6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가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는 데 대한 대응으로 21일 뒤부터 인도산 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행정명령으로 7일부터 25%의 상호관세를 부과받기로 한 인도는 25%의 추가 관세를 떠안으며 미국에 물건을 수출할 때 총 50%의 관세를 내게 됐다.
행정명령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 정부가 현재 러시아 연방의 석유를 직간접적으로 수입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추가 관세의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과 인도는 지난 4월 이후 5차례 나 무역 협상을 가졌으나 미국산 농산물과 유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며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인도에 부과하는 관세율이 50%가 되면서 인도는 브라질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또한 이로써 인도와 미국 사이의 위기가 단순한 무역 조건 이상의 문제가 됐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인도 경제가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인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협상에서 미국은 인도의 무역 장벽을 낮추는 데 집중했으며 러시아산 석유 수입 문제는 언급한 적이 없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우정을 쌓아왔고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도 불구하고 양국관계가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2월 백악관을 방문한 모디 총리는 미국과 손을 잡고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경제국가가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돌연 트럼프가 인도를 공격하면서 양국 경제계는 충격을 받았다.
경제 지렛대 넘어선 전략 무기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인도 관세는 단순한 무역 협상 수단이 아니라, 정치·외교 질서 재편을 강제하는 지정학 도구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이 국가 재정의 핵심 축이며, 인도는 그 주요 구매국으로, 원유 거래가 제약하면 러시아의 군비 조달과 전시 경제 유지 능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통해 러시아의 정책 전환을 유도하거나, 장기적 경제 고립으로 몰아넣는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역시 이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도가 러시아 원유 의존도를 줄일 경우, 그간 유지해 온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균형 외교가 붕괴될 가능성이 커서다. 이는 중국의 외교·에너지 전략에도 구조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특히 인도가 서방 진영 쪽으로 기울면, 중국은 러시아와의 결속 강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대외 협상력이 위축된다.

美·印 관계, 인도 핵실험에 따른 미국 제재 이후 최악
전문가들은 미국이 1998년 인도의 핵실험에 대응해 제재를 부과한 이후 지금 양국 관계가 가장 악화한 수준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소속 안보전문가인 애슐리 텔리스는 "현재 인도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으로 모디 총리가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줄여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협박에 굴복한 것처럼 보일까 봐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도 핵실험에 따른 제재 이후) 20년 넘게 노력해 얻은 (양국의 외교) 성과를 무너뜨릴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10개 신흥 경제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를 비롯한 다른 나라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미국과도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과 관계가 악화하자 인도는 중국·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모디 총리가 이달 31일 개막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7년 만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외신 보도가 최근 나왔고, 아지트 도발 인도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5일 국방·안보 분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았다.
특히 중국과는 5년 전 국경 충돌로 관계가 악화한 상태여서 모디 총리의 이번 방문이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최근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동병상련의 상황이며, 러시아 역시 3년 넘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휴전하라는 압박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는 처지다. 인도 연구재단 소속 분석가인 알렉세이 자하로프는 "러시아는 미국과 인도 사이의 분열을 이용해 러시아-인도-중국 3자 협력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국방 프로젝트를 제안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인도가 미국의 러시아 제재와 같은 구조적 요인을 분명히 고려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와 타협을 모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