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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이후 기업의 방어적 공급망 재편 가격 상승을 넘어선 조달 지연과 투자 위축 자급이 아닌 회복력 중심의 정책 설계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5년 4월,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상품 교역이 2.7%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 성장률은 이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WTO 사무국은 이 격차의 원인으로 ‘관세 인상’과 ‘정책 혼선’을 명확히 지목했다.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은 겉으로 드러난 첫 번째 충격일 뿐이다. 더 큰 부담은 그 뒤에 이어진다. 공급업체의 리스크 프리미엄, 규제 준수에 따른 마찰,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 등이 모두 기업 활동에 보이지 않는 추가 비용을 만든다. 이들 비용은 당장 통계에 반영되지 않지만, 향후 수년에 걸쳐 누적되며 세계 무역의 구조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관세, 눈에 안 보이는 리스크
경제학 교과서는 관세가 소비자 가격을 올리고 사회적 후생을 줄인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 기업이 겪는 부담은 더 깊다. 관세 자체보다도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유발하는 '리스크 프리미엄'과 '방어적 행동'이다. 시장 접근의 불확실성, 까다로워진 인허가, 소송 리스크는 공급업체 선정부터 바꿔놓는다. 수출 통제가 강화되면 이 같은 흐름은 더 빨라진다.
대표적 사례가 화웨이다. 미국은 2020년부터 외국산 직접 제품 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을 확대해, 미국 기술이 일부라도 포함된 첨단 반도체는 제3국에서 생산됐더라도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일본은 첨단 반도체 생산국은 아니지만, 화웨이 스마트폰에 핵심 부품을 공급해왔다. 화웨이 생산이 둔화되자 일본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도 줄었고, 화웨이와 직접 관련 없는 중국 내 고객사와의 거래까지 위축됐다. 이는 규제 리스크가 공급망 전반에 퍼졌기 때문이다.
정책 불확실성은 무역과 투자에도 영향을 준다. IMF와 연준에 따르면,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은 자본 지출을 미루고 계약을 단기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에 따라 나타나는 간접 손실은 관세 자체보다 더 오래, 더 깊게 작용한다.
숫자가 말하는 조기 신호
2024년 미국의 최대 수입국은 멕시코로, 전체 수입의 15.5%를 차지하며 중국을 앞질렀다. 중국의 비중은 13.4%로 떨어졌다. 미국 댈러스 연방은행은 이를 '공급망 배관의 재조정'이라 표현했다. 이는 공급선이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이자, 기존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다. 문제는 미국의 관세 조치가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60개국 이상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에 고율 관세가 적용되고 있으며, 산업별 예외나 협상도 불확실하다. 화웨이 사례처럼 관세나 수출 통제는 특정 기업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두세 단계 떨어진 공급업체까지 매출이 줄고, 거래가 끊긴다.
더 큰 문제는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기회비용이다. 조달 계약은 짧아지고, 인증에는 시간이 더 걸리며, 재고 확보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비용은 실제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수치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주: 연도(X축), 대중국 수출 로그 차이(Y축)
보이지 않는 초과부담의 계산법
공급망 리스크는 이미 체감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6곳이 공급망 불안정성이 높아졌다고 답한다. 기존 거래처를 이탈하거나 공급선을 이중화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비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새 공급처를 확보하려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고, 물류비도 늘고, 소규모 거래로 단가도 높아진다. 업계에서는 이에 따라 조달 비용이 평균 8퍼센트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전체 수입 품목의 20%만 공급처를 바꾸거나 이중화하더라도, 수입 물가 전체에 약 1%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그 절반만 소비자 가격에 반영돼도, 연간 0.5%에 이르는 물가 상승 압력이 생긴다. 관세보다 더 무서운 건, 이처럼 조용히 쌓이는 간접 비용이다.
충격은 이렇게 번진다
무역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수출입선 변경은 규제 비용을 키우고, 기술 흐름에 대한 통제는 수요 자체를 조건부로 만든다. 여기에 불확실성이 겹치면, 기업은 투자와 입지를 조정하게 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교역 단절과 시장 분절이 세계 경제의 성장성과 금융 안정성 모두에 부담을 준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기업들은 이제 실수요보다 리스크 요인을 먼저 고려한다. 어떤 기업과 거래를 지속할지, 어느 지역에 공장을 둘지, 정치적 불확실성을 가격에 어떻게 반영할지 등 기업 전략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그 결과는 몇 달 안에 드러나지 않지만, 수년 뒤 투자 지도와 생산성 통계에 반영된다.
산업별 균열, 조달 시스템 흔들린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곳은 공급망을 바꾸기 어려운 산업이다. 반도체, 의료기기, 정밀 장비, 의약품처럼 인증이 까다롭고 납품 전환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분야들이다. 2025년 8월 초 발표된 미국의 의약품 관세 인상은 병원과 연구 기관의 조달 시스템까지 흔들고 있다. 단가 상승뿐 아니라 필요한 부품이나 시약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이 영향은 다른 분야로도 번진다. 실험 장비나 네트워크 장비처럼 다양한 산업과 기관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제품들도 관세나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과학·의료·교육 현장에서 전방위적인 조달 불안이 발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단순한 리쇼어링보다 공급망 다변화와 민첩성이 회복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규제와 예고 없는 관세 조정이 반복된다면, 그 민첩성도 작동하기 어렵다.
자급보다 중요한 것
정책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자급 체계가 아니라, 충격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시스템의 복원력이다. OECD는 회복력의 핵심 요소로 민첩성과 정책 정렬을 강조한다. 전략적 병목지점과 범용 원자재를 구분하지 않는 정책은 소비자 부담만 키운다. 병목 구간에는 중복 투자가 필요하지만, 일반 원자재에까지 무차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면 기업은 주요 공급처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의 관세 정책은 지나치게 넓고 일괄적이다. 공급망 재편이 아니라, 공급망 회피를 유도하고 있다. WTO의 성장률 하향 조정은 단순한 수요 둔화가 아니라, 정책 불확실성 그 자체가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메시지다. 예측할 수 있고 정합성 있는 규칙 설계가 복원력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반론과 그에 대한 반박
관세 정책을 둘러싼 반론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적응은 시간문제라는 주장, 대외 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 불확실성은 과장됐다는 시선 등이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본 기업 사례만 보더라도, 적응이란 단순한 공급처 대체가 아니라 위험 시장에서의 철수로 나타났다. 무관계 시장까지 위축된 것이다.
경상수지는 저축과 투자라는 구조적 균형에서 결정되며, 무역 흐름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불확실성의 효과 역시 입증돼 있다. IMF와 중앙은행들은 불확실성이 투자를 억제하고 계약을 단축시키며, 실제 비용을 유발한다고 분석해 왔다. 더구나 미국의 관세율은 시행 직전까지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중장기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관세보다 여진이 더 길다
관세가 없었다면, 세계 교역은 더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관세에 더해 리스크 프리미엄, 수출 통제의 파급 효과, 규칙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누적되고 있다. 이 여파는 짧지 않다. 인증에만 18개월이 걸리고, 설비 투자는 3년 단위로 계획되며, 공공기관의 조달 시스템은 한 번 바뀌면 10년 이상 유지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결정이 아니라 견디는 시스템이다. 정책은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예외는 명확해야 하며, 각 부문은 중복을 허용하고 충격을 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준비가 빠르면 여진은 짧아진다. 하지만 늦는다면, 손실은 복리처럼 쌓인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Long Shadow of Tariffs: Understanding the Long-Term Impacts for Informed Decision-Making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