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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핵 협상 두고 갈등 격화 쟁점은 이란 우라늄 농축 능력 인정 여부 겨우 진정된 美 인플레이션, 또 불붙을까

국제 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란과 미국의 핵 협상이 암초에 부딪히며 양국 간 갈등이 격화하자, 시장에서 중동 지역의 원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한 것이다.
미국-이란 핵 협상 '공회전'
11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일 대비 배럴당 3.17달러 오른 68.1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상승폭은 4.88%에 달한다. 브렌트유 선물도 전날 대비 배럴당 2.90달러(4.34%) 오른 69.77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국제 유가가 급격하게 상승한 것은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 결렬 가능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 4월부터 이란과 핵 협상에 돌입해 5차례 회담을 진행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 모든 비필수 인력의 출국을 지시하고, 이란을 향해 "그들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등 갈등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란 측은 자국군이 중동 내 미군 기지를 타격할 능력을 갖췄다고 경고하며 맞불을 놨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아지즈 나시르자데 이란 국방장관은 11일 취재진과 만나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우리에게 분쟁이 강요된다면 상대방의 피해는 우리보다 훨씬 클 것이며, 미국은 이 지역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미국의 모든 역내 기지가 우리의 사정거리 내에 있다”며 “주저하지 않고 모든 기지를 공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잘 가다가 왜" 시장 혼란 빠져
이란과 미국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하자, 시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양국 간 논의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란과의 핵 합의에 매우 가까워지고 있다"며 "이란은 제시된 조건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고위 보좌관인 알리 샴카니도 같은 달 14일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제재를 즉각 해제하는 조건으로 핵무기 개발을 영구 포기하고 고농축 우라늄 저장고를 내놓을 수 있으며, 핵 시설에 대한 사찰도 허용할 수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이란과의 핵 합의를 구실 삼아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막아서기도 했다. 이날 그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군사 행동을 만류했다는 것이 사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며 "우리는 (이란과의 핵 협상) 해결책에 매우 근접했기 때문에, (네타냐후에게) 지금 그렇게 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이란과) 매우 좋은 논의를 하고 있다"며 "폭탄 한 방 떨어뜨리지 않고 신뢰가 아닌 검증에 기반한 매우 강력한 문서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순항하는 듯 보였던 이들의 논의가 정체된 것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 인정 여부를 두고 양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금지 조치를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보는 반면, 이란은 우라늄 농축 완전 금지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요국 물가 상승 우려
문제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핵 협상이 삐걱대며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주요국 물가 역시 자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 4~5월 국제유가는 주요 산유국의 증산 결정, 관세 전쟁 등의 영향을 받아 하락세를 보여 왔다. 인도분 WTI 가격은 지난 4월 3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배럴당 60달러 이하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5일에는 배럴당 57.13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2021년 2월 이후 최저 수준까지 미끄러지기도 했다.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며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상승세 역시 한풀 꺾였다. 특히 미국의 경우, 관세 전쟁의 근원지임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물가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2.4% 상승했다. 이는 전월 2.3%에서 소폭 오른 수치지만, 시장 전망치(2.4%)와 일치하는 수준이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1%, 전년 동기 대비로는 2.8% 상승하며 예상치(2.9%)를 밑돌았다. 이는 2021년 3월 이후 가장 최저치다.
향후 유가가 상승하며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재차 불이 붙을 경우,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연준은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인 관세 정책이 물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3회 연속으로 기준금리 동결을 택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