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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거래소 빅2 체제 정조준
구조적 리스크 누적되며 시장 신뢰도↓
금융위 공조 체계로 이중 압박 예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을 둘러싸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본격적인 규제 강화에 나섰다. 공정위는 업비트와 빗썸이 전체 시장 점유율의 98%를 차지하는 독과점 구조를 문제 삼고 있으며, 단순 점유율을 넘어 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구조 자체의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다. 금융위 또한 거래소의 회계 투명성과 거래 질서를 문제 삼고, 실질적인 금융 플랫폼으로 간주해 강도 높은 실사를 예고한 상태다.
정보 비대칭성 등 시장 왜곡 구조 지적
1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공정위와 금융위는 최근 가상자산 거래 시장 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국내외 시장을 비교·분석해 가상자산 생태계의 경쟁 기반을 점검하고, 필요시 제도적 개편까지 검토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외부 기관에 ‘가상자산 거래 시장 분석 및 주요 규제에 대한 경쟁영향 평가’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
이는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시장의 독과점 문제에 대한 여러 우려가 갈수록 짙어지는 데 따른 조처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은 업비트와 빗썸의 ‘빅2’ 체제로 전개되고 있다. 가상자산 정보업체 코인게코에 의하면 이들 거래소의 점유율(일일 거래량 기준)은 업비트 78.7%, 빗썸 19.5%로 두 곳이 전체 시장의 98.2%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공정거래법이 제시한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셋 이하 사업자가 75% 이상 점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앞서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18일 “지난해 국정감사 때부터 지적된 가상자산 시장의 독과점 논란에 대해 공정위의 입장을 제시하고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필요성 등 여러 시각을 고려해 공정위와 금융위가 논의를 하고 국회에 보고해 달라”고 공정위 측에 서면 질의한 바 있다.
이에 지난 3월 공정위는 “가상자산거래소 시장의 여러 제반 상황을 고려해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독과점 문제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 방향을 모색하겠다”며 “금융위와 논의해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금융감독당국은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불공정거래를 집중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는 1단계 입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상자산 사업자 규제 등 포괄적인 기본법이 필요하다는 시장과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국회와 정부는 2단계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독점 이슈 넘어선 구조 문제, ‘신뢰 하락+불공정’ 심각
공정위는 매년 특정 시장을 선정해 독과점적 요소가 있는지 살피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빵·주류 등 먹거리 시장에 주안점을 뒀다. 공정위는 설탕 가격 담합 의혹과 관련해 제당 3사(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주류도매협회의 술값 담합 행위에 대해선 제재를 내렸다. 올해는 기업회계감사 분야·방위산업과 더불어 가상자산 거래 시장이 주요 점검 대상이다.
공정위가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점유율 문제를 넘어 더 큰 금융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작용했다. 가상자산 시장은 최근 몇 년 새 암호화폐 상장과 가격 급등락을 둘러싼 조작 의혹을 비롯해 다수의 해킹 피해, 자전거래 논란 등 각종 불공정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거래소 또한 ‘디지털 사기 플랫폼’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업비트, 빗썸 등 대형 거래소는 시장 신뢰를 견인할 책임이 있음에도 상장 심사 기준이나 정보 공개 방식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아울러 가격 결정 메커니즘조차 외부에서 검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특정 세력이 가격을 좌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신까지 번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독과점보다 더 심각한 ‘비공식 시장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경쟁 제한의 문제를 넘어 시장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이에 공정위 내부에서도 가상자산 거래 시장은 기존 독점 시장과 결이 다르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점유율을 낮춘다고 해결될 구조가 아닌 만큼 상장요건부터 내부통제, 거래 투명성 등 전방위적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현재 거론 중인 방안으로는 실명계좌 연동 기준을 강화, 상장심사 제삼자 위원회 설치 등 제도적 장치들이 주를 이룬다.
금융위는 회계기준 마련·상장 심사 기준 도입 논의
공정위와 함께 금융위 역시 가상자산 거래소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두 기관의 역할은 다르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유사하다. 공정위가 ‘시장 지배력과 구조 왜곡’을 문제 삼고 있다면, 금융위는 ‘거래 투명성과 공시 부실’을 핵심 리스크로 보는 식이다. 금융위는 이미 작년부터 가상자산 상장 절차와 회계기준, 투자자 보호 방안 등에 대한 검토를 이어오고 있다.
금융위는 거래소가 실질적인 ‘금융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회계 및 내부통제 체계가 사실상 공백 상태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거래소 회계기준 마련, 실명계좌 기준 강화,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 구축 등 제도 개선을 예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거래소는 심사 탈락, 은행 연계 해지 등 실질적 타격을 받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미 금융위는 거래소 시장을 사실상 금융 시장처럼 다루고 있다는 의미다.
공정위와 금융위가 정보 공유 및 공동 대응에 나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불공정 상장과 자전거래, 해킹 피해 등은 모두 공정거래법 위반인 동시에 금융 규제 위반이기도 하다. 결국 업계는 양 기관의 칼날을 동시에 피해야 하는 이중 구조에 놓이게 됐다. 거래소 운영 역량은 물론 자본 건전성, 리스크 대응 체계까지 모두 점검 대상에 오른 셈이며, 이는 오랜 시간 시장을 지배하며 ‘버티기 경영’을 해오던 대형 거래소들에는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