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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틈새시장 공략, 실수요 포착
중금리·사업자 대출 연체율 상승 뚜렷
주담대 제한된 환경 적극 활용

인터넷은행 3사가 개인사업자 대출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새로운 전장을 개척하고 있다. 선발주자로 불리는 토스뱅크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가운데,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시장 장악에 분주한 모습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자산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나아가 이들 대출 대부분이 주거용 부동산을 담보로 설정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사실상 주택담보대출의 우회로라는 분석 또한 제기된다.
사업 구조 다각화에 방점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연내 개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1억원 초과 신용대출’과 ‘비대면 담보대출’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는 보증서 대출이 전체 개인 사업자 대출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상품군을 확대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개인사업자 대출 커버리지(특정 시장 및 고객층에 얼마나 많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는 12%로, 이를 45%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케이뱅크는 이미 지난해 8월 사업자 대상 비대면 담보 대출 상품인 ‘사장님 부동산담보대출’을 통해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해당 대출은 아파트 시세의 최대 85% 한도로 최대 10억원까지 지급하는 상품이다. 저렴한 금리가 특징으로, 출시 8개월 만에 잔액 2,000억원을 돌파했다. 케이뱅크가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취급한 신규 개인 사업자 담보 대출의 평균 금리는 연 3.73%로 5대 시중은행 평균 금리(연 4.37~5.04%)보다 1%p가량 낮다.
토스뱅크는 개인사업자 대출 시장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금감원에 의하면 2022년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토스뱅크가 1조3,099억원으로 가장 높았고,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각각 901억원, 951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카카오뱅크가 대출 잔액 1조8,946억원으로 1위를 꿰차면서다. 이에 토스뱅크는 개인사업자를 넘어 기업(법인) 고객을 겨냥한 대출 상품 및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상태다.
이처럼 인터넷은행들이 앞다퉈 개인 사업자 대출을 늘리는 것은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의도다. 시중은행의 경우 가계 대출이 막히면 기업 대출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인터넷은행은 개인 고객 대출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불가피한 구조인 탓이다. 다만 여전히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에 그치는 등 여력은 미진한 편이다. 2024년 실적 결산을 마친 카카오뱅크의 지난해 말 개인사업자대출 비중이 4.4%로 집계된 점을 고려하면, 여타 인터넷은행의 상황도 비슷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신용등급 하락-경기 침체 맞물리며 위험 구조 확대
개인사업자 대출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큰 대신, 연체 위험이 매우 높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은행들의 연체율은 최근 눈에 띄는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작년 말 기업대출 연체율은 1.49%로 2023년 말(0.35%)과 비교해 1년 사이 4배 넘게 뛰었다. 그간 신용도 높은 차주 위주로 대출을 운영해 온 카카오뱅크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한 토스뱅크와 케이뱅크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특히 케이뱅크는 작년 말 기업대출 연체율이 1.83%까지 급등하며 전년(1.36%) 대비 0.47%p 높아졌으며, 2022년(0.06%)보다는 무려 1.77%p 치솟았다. 가계대출 연체율이 2023년 0.97%에서 지난해 0.83%로 떨어진 것과 대비된다.
이 같은 연체율 급상승의 배경에는 장기화한 경기 침체가 자리하고 있다. 사업 운영에 난항을 겪는 개인사업자가 폭증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책 자금 등으로 연명하던 개인사업자들이 자금 여력이 떨어지자, 인터넷은행 등을 통해 추가 대출받은 뒤 부실로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은행 집계에 의하면 자영업 대출자 중 절반 이상(56.5%·176만1,000명)이 복수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금융 규제 지속, ‘틈새 전략’ 중요도↑
이 같은 건전성 관리의 어려움에도 인터넷은행들이 개인사업자 대출을 속속 확대하고 있는 흐름은 단순히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는 수준을 넘어 ‘주택담보대출의 우회로’를 본격적으로 개척하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의 부동산 금융 규제가 지속되면서 전통적인 주담대 확대가 어려워진 가운데, 개인사업자 대출이 사실상 그 대체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 구조에서 이 시장은 단기 실적과 중장기 성장성을 모두 겨냥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일각에서 인터넷은행의 사업자 대출이 실질적으로는 규제 회피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 인터넷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대부분이 주거용 부동산을 담보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형식만 달라졌을 뿐, 구조상 전형적인 주담대와 유사하다는 게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처럼 인터넷은행들은 사업자대출을 통해 취급 한도를 넓히는 동시에, 수익성과 자산건전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복합 전략을 실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제4인터넷은행 출범이 목전으로 다가온 현시점에서 선발 주자인 이들 3사의 차별화 포인트가 결국 ‘금융 규제 속 틈새를 얼마나 정교하게 공략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사업자 대출은 단순 상품이 아닌 미래 생존 전략의 큰 축이 될 것이란 진단이다.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사업자 대출은 자산 성장과 고객 확대, 신사업 다각화가 모두 연결된 상품”이라면서 “추후 인터넷은행발 주담대 대체 모델이 주류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