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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한국 경제 성장률 큰 폭 하향 조정 트럼프 대통령 관세 압박에 불확실성 커져 韓 성장률 4분기 연속 바닥, 외환위기 때도 없던 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자동차 관세 부과 계획이 발표되고 상호관세 부과 예정일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올해와 내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기대치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경우 무역수지 악화는 물론 환율 불안까지 야기해 거시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P, 韓 성장률 2.0→1.2% 대폭 하향
2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P글로벌의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 루이스 쿠이스는 비공식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2.0%에서 1.2%로 0.8%포인트 낮춰 잡았다. 이번 전망치 하향 조정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에서 가장 큰 폭이며, 뉴질랜드와 함께 예외적인 사례로 꼽혔다. S&P 글로벌은 한국과 뉴질랜드만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하향(2.2%→1.5%) 조정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성장률 전망치를 소폭 조정하는데 그쳤다.
중국의 경우 미국 관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2024년 말 경제 성과가 예상보다 양호했고, 중국 정부의 강력한 재정 부양책과 경제 성장 목표 상향 조정 덕분에 2025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4.1%로 그대로 유지했다. 중국 정부는 올해 GDP 성장 목표를 5%로 설정하고 정부 적자 및 특별채권 발행을 늘려 경제 부양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경제도 2024년 4분기에 예상보다 견고한 성장을 기록했으며, 근원 소비자 인플레이션도 2025년 초 2.6% 수준으로 상승했다. 또한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임금 협상에서 평균 5.4%의 임금 인상을 합의하면서 소비 기반의 확대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같은 일본 경제의 양호한 경제 흐름으로 인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한국(1.2%)과 같아졌다.
아시아·태평양 다른 국가들도 외부 충격에도 국내 수요가 견조하게 유지되면서 GDP 전망 하향 조정 폭이 크지 않았다. 특히 인도는 내수 시장의 강력한 수요를 바탕으로 올해 6.5% 성장이 예상된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특정 품목 관세로 인해 GDP 성장률이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이지만,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것이 S&P 글로벌의 분석이다.
트럼프 관세發 수출 감소로 무역수지 악화 불가피
S&P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하향한 이유는 2024년 말 예상보다 부진했던 경기 흐름 때문이다. 제조업 부진과 수출 위축으로 인해 경기 회복 동력이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S&P는 이와 함께 미국의 관세 인상 정책이 자동차 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주요 품목에도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어 자동차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 충격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관세 시행 이후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수출 규모는 줄어들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은 25% 관세가 붙으면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이 2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지난해 수출 규모에 대입해 단순 계산해 보면 10조원의 수출이 사라지는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가 518억 달러(약 76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고 고용 창출 효과도 상당한 업종이다. 이 때문에 관세 부과에 따른 대미 자동차 수출 감소는 단순히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품·철강·화학·물류 등 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완성차 수출이 감소하면 협력 업체들의 생산 차질로 이어지며 제조업 가치사슬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행정명령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공격한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부과하는 자동차 관세를 계기로 한미 FTA의 특례 관세 혜택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전쟁 최악이면 내년 성장률 1.4%까지 하락할 수도
한국은행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더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은 지난달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지난해 11월 말(1.9%) 대비 0.4%포인트 내렸다. 앞서 한은은 지난 1월 블로그를 통해 올해 성장률을 1.6∼1.7% 사이로 전망한 바 있는데, 한 달 새 전망치를 또 내려 잡은 것이다. 이는 기획재정부(1.8%), 한국개발연구원(1.6%) 등 다른 정부 기관 전망치도 밑도는 수준이다. 한은은 최근까지 열린 네 번의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를 세 차례 낮춘 상태로, 그만큼 국내 경제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제시한 기본 시나리오는 중국에 현 수준의 관세를 유지하고, 다른 무역적자국에는 그보다 낮은 수준의 관세를 금년 중 부과하나, 협상 진전으로 2026년에는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비관적 시나리오다. 미국이 올해 말까지 중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적자국에 관세를 점차 높여 부과한 뒤 2026년 중에도 이를 유지하고, 이에 주요국이 미국에 고강도 보복 관세로 대응하고 미국도 재차 보복하는 경우다. 한은은 이때 한국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0.1%p와 0.4%p 낮아져 모두 1.4%로 내려앉을 수 있다고 봤다. 기업 투자 심리 냉각에 내수도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한은은 "세계 교역이 급격히 위축되고 무역 불확실성이 증폭돼 국내 수출과 투자가 크게 둔화할 것"이라며 "연중 높아진 관세 영향은 내년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군다나 한국은 트럼프발 관세 쇼크가 상륙하기도 전에 이미 경제 체력이 쇠약해진 상태다. 한은의 최근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2%에 머물 전망이다. 이는 지난 11월 전망 때보다 0.3%포인트나 낮아진 것으로, 민간소비 부진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수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올해 2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1,017억 달러(약 149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 감소했다. 여기엔 주력인 반도체 부진이 컸다. 2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하며 16개월 만에 증가세가 꺾였고, 15대 수출 주력 품목 중 11개 품목에서 수출액이 쪼그라들었다.
연간으로 봐도 저성장 흐름이 뚜렷하다. 한국의 2023년 경제성장률은 1.4%, 지난해엔 2%에 턱걸이했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성장률이 1.5%인 만큼 1%대 저성장 흐름이 4년째 이어지는 셈이다. 이는 한국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지난해 성장률은 -0.2%(2분기)→0.1%(3분기)→0.1%(4분기)였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는 세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다 바로 2%대로 반등했고,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에도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지만 이후 빠르게 회복했다. 매 분기 0%대 초반의 성장을 이어가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한국도 장기 저성장 초입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