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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3.2%가 '고위험가구' 고위험가구 부채는 전체 가구의 5%에 육박 최근 집값 하락세 속에 채무 상환 부담 커져

금융부채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고, 자산 매각을 통해 부채 상환이 어려운 국내 고위험가구가 38만6,000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는 72조원을 넘어서며 전체 가구 부채의 5%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은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고위험가구의 증가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분석하면서, 특히 지방 주택의 하락세가 지방 고위험가구의 채무 상환 부담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 3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 발표
27일 한은이 발표한 '3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신용은 1,927조3,000억원으로 주택관련 대출(11조7,000억원)을 중심으로 전 분기 대비 0.7% 증가했다. 취약차주 비중은 지난해 3분기 6.6%에서 4분기 6.9%로 늘었고, 잠재 취약차주 비중도 17.5%에서 17.6%로 증가했다. 취약차주는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차주를, 잠재 취약차주는 취약차주의 특성에 근접한 차주를 의미한다.
지난해 고위험가구는 전체 금융부채 보유가구의 3.2%인 38만6,000가구로 집계됐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는 72조3,000억원으로 전체 가구가 보유한 금융부채의 4.9%를 차지했다. '고위험가구'란 금융부채를 보유한 가구 중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원리금상환액÷처분가능소득)이 40%를 넘겨 원리금 상환부담이 크고, 부채자산비율(DTA, 총부채÷총자산)도 100%를 상회해 자산매각을 통해 부채 상환이 어려운 가구를 말한다.
고위험가구 수와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 비중(각각 3.2%, 4.9%)은 금리 상승 등의 영향을 받았던 2023년(각각 3.5%, 6.2%)에 비해 하락했지만 2022년(각각 2.6%, 3.8%)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2017~2024년 장기 평균(각각 3.1%, 5.6%)과 비교하면, 가구 수 비중은 작고 금융부채 비중은 크다. 지난해 고위험가구의 DSR과 DTA 중윗값은 각각 75%, 150.2%로 집계돼 소득 및 자산 측면에서 채무상환 여력이 크게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은 '고령층 고위험가구' 비율 높아
한은은 특히 주택매매가갹 하락세가 지속되며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했다. 지방을 중심으로 가계 자산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가격이 하락해 지방 고위험가구의 채무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한은이 금리·주택가격 변동분과 주택가격 전망을 반영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지방과 수도권의 고위험가구 비중은 각 5.4%, 4.3%로 추정됐다. 하지만 올해 말에는 지방은 5.6%로 더 커지고 수도권은 4.0%로 떨어져 비중 차이가 1.6%포인트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DRS 중윗값을 비교해 보면 지방 고위험가구는 70.8%, 수도권은 78.3%로 수도권의 부채 상환 부담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DTA 중윗값도 지방이 149.7%, 수도권이 151.8%로 집계됐다. 단순 수치상으로는 지방의 상황이 더 나아 보이지만, 지방 고위험가구의 경우 60세 이상 고령층 가구주 비중이 18.5%로, 수도권(5.1%)보다 3배 이상 높아 소득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즉, 지방의 고위험가구는 안정적인 소득원이 없는 은퇴자 비율이 높아, 실제 부채 상환 능력은 수도권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최근 국내 경제의 저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방을 중심으로 집값이 하락하면서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며 "서울 등 수도권에 비해 미분양이 늘고 건설 경기가 부진한 지방의 경우 고위험가구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부실 위험이 확대되지 않도록 관련 동향과 정부 대응의 효과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수도권과 지방 집값이 너무 차별화됐다"며 "지방은 특히 고령층 고위험가구 비중이 커서 주택가격 하락에 대한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침체에 지방 금융권 건전성 악화
지방의 부동산 침체는 금융권의 재정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쳐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일반은행의 총자산순이익률은 0.6%로 전년 동기(0.57%) 대비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예대금리차(분기 평균)는 2.49%포인트에서 2.25%포인트로 줄었다. 순이자마진도 1.75%에서 1.67%로 낮아졌다.
비은행권의 건전성도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PF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에 주력하면서 비은행권의 건전성도 전반적으로 개선됐다는 평가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보면, 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0.56%에서 10.16%로, 상호금융은 6.63%에서 6.30%로 각각 하락했다. 여전사도 카드사와 캐피탈사가 모두 감독 기준을 상회하는 높은 자본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지방은행이다. 지방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64%로 시중은행(0.32%)을 크게 웃돌면서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시 높아지는 추세다. 지방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지방 건설사에 대출해 준 지방은행의 건전성도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업종별 고정이하여신비율을 살펴보면, 음식업·여가서비스 등 대부분 업종은 0.5%를 밑돌지만, 건설업은 1.26% 수준으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이 같은 흐름은 지방의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조합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저축은행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수도권에서는 2.6%포인트 상승한 반면, 지방에서는 더 큰 폭(4.7%포인트)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은은 "지방 소재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을 중심으로 자산건전성이 저하되고 있다"며 "특정 업권 또는 지역에서 발생한 부실이 업권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