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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도시보증공사, 떼인 전세금 폭증 전세사기 주택 경매 장기 유찰되자 경매 조건 완화해 보증금 20% 손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깡통전세나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에게 집주인 대신 돌려준 보증금(대위변제액)을 경매를 통해 회수하는 과정에서 900억원 넘는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낙찰자가 나타나지 않자 HUG가 울며 겨자 먹기로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권리를 포기하고 경매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경매까지 포함하면 손실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HUG, 경매 조건 완화
25일 HUG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2월 말까지 HUG가 대위변제액을 회수하려고 경매에 넘긴 주택 가운데 인수조건 변경부 매물은 6,616건이다. 인수조건 변경부란 경매 낙찰자에게 행사하는 보증금 반환 청구권을 포기하고 임차권 등기를 말소하는 걸 뜻한다.
인수조건 변경부 매물 중 낙찰 후 배당까지 완료된 매물은 2,132건이다. 이를 통해 HUG가 회수한 금액은 3,506억원으로, 해당 주택에서 HUG가 회수해야 하는 전체 대위변제액(4,420억원)의 80%에 그쳤다. 나머지 914억원은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부실 채권이 됐다.
HUG가 경매 조건을 바꾸는 건 대위변제액의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서다. HUG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가 전세사기나 깡통주택 피해를 당하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준 뒤 집주인에게 이를 회수한다. 집주인이 돈을 갚지 못하면 피해 주택을 경매에 넘긴다. 문제는 이런 피해 주택은 낙찰자가 HUG가 대신 돌려준 보증금을 떠안아야 하는 탓에 유찰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HUG는 보증금을 모두 돌려주지 않아도 좋다는 조건을 내걸고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HUG의 대위변제액 손실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인수조건을 바꾼 뒤 낙찰됐지만 아직 배당이 완료되지 않았거나, 여전히 경매가 진행 중인 매물이 4,454건이나 있기 때문이다. 해당 매물에서 회수해야 할 대위변제액은 총 9,911억원으로, 기존 회수율(80%)을 고려하면 약 1,982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HUG 재정난 가중, 2년 연속 영업손실 4조원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빨간불이 켜진 HUG의 재정난이 더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현재 HUG는 2023년 이후 전세사기 여파로 재무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 보증 사고액은 4조4,896억원으로 2023년보다 3.6% 증가했다. 같은 해 HUG의 대위변제액도 2023년(4조9,229억원)보다 23.8% 증가한 6조94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26억원에 불과했던 HUG의 전세보증 대위변제액은 전세사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2022년 9,241억원으로 늘었고, 현재까지도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각종 보증 부담에 HUG의 영업손실액은 2023년 3조9,962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는 4조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채비율 역시 2023년 116.9%로 2021년(26.6%)보다 크게 높아졌다. 계속되는 전세사기 여파로 인해 HUG는 보증 배수(자기자본 대비 보증금액 비율)를 계속 올려 현재 90배에 달한다.
HUG가 채권 발행 등으로 자금을 확보에 힘쓰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구제 방안으로 피해 주택 매입에 나서면서 HUG의 부담이 더욱 늘어났기 때문이다. 매입하는 다세대주택만 1만 가구 수준으로, 투입하는 자금이 2조원에 이른다. 전세사기에 연루된 주택은 대부분 노후 주택이어서 향후 매각이나 재임대 등의 부담을 HUG가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집주인, 반환보증제도 악용"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HUG가 비싸게 경매 주택을 낙찰해 국민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6일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에 “HUG가 주택 전세 반환보증을 남발하고 있고, 경매 주택 고가(高價)·셀프 낙찰이 분식회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느니 철저히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HUG의 반환보증보험에 가입된 주택의 전세금은 집값의 90% 수준으로, 일반적인 수준인 60~70%를 크게 웃돌았다. 경실련은 HUG가 사고 위험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반환보증을 남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또 일부 집주인은 HUG의 반환보증을 전세사기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축 빌라 등을 전세로 세입자에게 빌려주면서, HUG의 반환보증 제도를 이용해 전세 보증금의 80%까지 대출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세입자는 반환보증으로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임대차 계약을 맺게 된다. 경실련 측은 “사실상 HUG의 반환보증 대위변제금은 전세 사기꾼 주머니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전세값이 높게 형성된다는 게 경실련 설명이다.
경실련은 그러면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한 주택을 비싸게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주택의 경매 낙찰가율은 통상 감정가의 70% 안팎인데, HUG는 80% 수준에서 낙찰받는다는 것이다. 실제 HUG는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한 전세금을 대신 지급한 뒤 경매에 나온 주택을 직접 낙찰받기도 했다. HUG가 전세보증 사고가 발생한 주택을 직접 낙찰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경실련이 작년 5월 이후 경매로 낙찰된 주택 2,792건을 분석한 결과, 그 중 1,242건(44%)이 이런 HUG의 ‘직접 낙찰’ 사례였다. 다른 낙찰 사례보다 입찰자 수도 적었고, HUG만 경매에 참여하는 단독 입찰도 많았다. HUG 직접 낙찰 주택의 낙찰가는 감정가의 평균 83%인데, 일반 낙찰은 73%였다.
김성달 경실련 사무총장은 “HUG가 반환보증보험으로 발생한 손실을 가리기 위해 자신들이 고가에 직접 낙찰한 금액을 보증금 회수율에 포함시켜 손해율이 낮은 것처럼 꾸민다는 의혹도 있다”고 말했다. HUG가 경매로 사들인 집을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로 공급하는 ‘든든전세 사업’을 명목으로 낙찰받은 주택의 자산 가치를 높여 부실을 가린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