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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트럼프 관세 정책 두고 '회의론' 펼쳐 트럼프 행정부, 제조업 부흥 위해 세제 혜택까지 확대 "제조업 살아나면 달러 약해진다" 시장 우려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를 통한 제조업 부활’ 전략이 미국 제조업 부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질적인 제조업 생산·고용 확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관세 정책 외에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관세만으로는 美 제조업 못 살린다?
25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매체 포춘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 웰스파고는 이번 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통해 45년 전 미국 제조업의 황금기를 되살리려 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의미 있는 공장 일자리 증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했다. 관세가 오히려 기업들이 생산을 확대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상호 관세 부과를 유예하고, 이달 초 중국과의 무역 휴전에 합의하는 등 한동안 극단적 관세 정책에서 힘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주 내달부터 유럽연합(EU) 수입품에 대해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며 관세 전쟁에 재차 불을 붙였고, 애플과 삼성 등에도 미국 내 생산을 하지 않을 경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했다.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 자국 제조업체가 생산과 고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웰스파고는 실제 생산·고용 확대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관세가 수년간 일관되게 유지돼야 하며, 수조 달러 규모의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조업 일자리를 1979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최소 2조9,000억 달러(약 3,970조원)의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제조업 고용 인원은 약 1,280만 명으로, 정점을 기록했던 1979년(2,000만 명) 대비 크게 줄어든 상태다.
트럼프의 '제조업 살리기' 전략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 외에도 제조업 부흥을 위한 각종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국장은 상·하원 지도부(여야 주요 지도자 6인)와의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세금 관련 법안이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데 초점을 맞추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기자들에게 "미국산 자동차를 구매할 때 받는 대출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과 제조설비 투자 비용의 즉시 감가상각, 그리고 투자 금액 100%에 대한 세액 공제를 추진하겠다"며 "여기에 공장 건물 건설에 대한 추가 세제 지원도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 날 백악관에서 "기업들이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들여올 경우, 제조 설비뿐만 아니라 건물 건설 비용까지도 전액 세금 계산 시 즉시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을 위한 세제 혜택 확대 구상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베선트 장관은 미국 제조업체에 적용되는 법인세율을 현행 21%에서 15%로 인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운동 기간에 법인세율 인하를 언급한 바 있으나, 이를 주요 공약으로 강조하지는 않았다. 앞서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약달러 흐름 지속될까
문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책이 약달러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기 위해선 달러 가치를 낮춰 수출 경쟁력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달러 강세는 우리 제조업체에 재앙”이라고 직접 약달러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지명된 스티븐 미런도 기존 연구 보고서에서 달러화 강세의 탈피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해 왔다.
달러 가치 하락세는 이미 각종 지표를 통해 뚜렷이 확인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3일 기준 99.05(기준점 100)까지 하락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에 더해 미국의 재정 적자 우려, 무디스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등 악재가 겹치면서 약달러 흐름이 가속화한 것이다.
다만 현재의 달러 약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경우,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금리 인하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의회 하원 문턱을 넘어선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역시 변수로 꼽힌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해당 법안이 상원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 연방정부 부채는 향후 10년간 2조4,000억 달러(약 3,300조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재정 적자가 확대되며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달러화 상승 압력은 한층 거세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