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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우조선 지분 인수 이후 투자금 회수 나서 조선업 주가 상승에 한화오션도 3개월 새 3배 올라 산은의 지분 가치도 2.2조원에서 5.3조원으로 상승

산업은행이 한화오션 지분 매각에 나선다. 지난 2000년 출자전환을 통해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 전신)의 지분을 확보한 지 25년 만이다. 산은은 보유 지분 전량 매각을 위한 첫 단계로 지분 일부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고 향후 잔여 지분을 순차적으로 추가 매각할 계획이다.
시가 대비 9%가량 할인율 적용해 블록딜 추진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전날 한화오션 지분 1,300만 주(지분율 4.3%)에 대한 블록딜 수요예측에 들어갔다. 매각 희망가는 주당 8만1.265원에서 8만1,710원으로, 당일 종가(8만9,300원) 대비 8.51~9.00%의 할인율이 적용됐다. 총매각 규모는 1조564억원~1조622억원으로 추산된다. 매각 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과 USB가 맡았다. 국내 기관투자자 대상 주문은 한국투자증권이, 해외 기관은 UBS가 각각 진행한다. 결제일은 5월 2일로 예정돼 있다.
블록딜 매각 이전 기준 산은이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은 5,973만8,211주로 지분율은 19.5%다. 산은은 이번 수요예측을 바탕으로 보유 중인 한화오션 지분을 수% 단위로 쪼개서 복수의 수요처에 분산 매각할 계획이다. 한 번에 전량을 통매각할 경우 매각 규모가 지나치게 커 수요 확보가 어렵고, 매수자가 곧바로 한화오션의 2대 주주가 되는 점 등을 감안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나머지 보유 지분 역시 블록딜 방식의 매각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이 지분 매각에 나선 배경에는 K-조선업의 호황과 주가 상승으로 공적자금 회수에 적기가 도래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한화오션 주가는 지난해 11월 주당 2만7,800원에서 28일 종가 기준 8만9,300원으로 3개월 새 3.2배 올랐다. 이에 따라 산은이 보유한 지분 가치도 5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자산 건전성 강화에 대한 필요성도 지분 매각에 영향을 미쳤다.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3.9%로 국내 20개 은행 중 가장 낮다.

3년 전 매각 때, 낮은 인수가에 '헐값 매각' 논란
산은은 2000년 12월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의 지분을 인수한 이래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오랜 기간 주요 주주로서 역할을 해왔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외환위기 이후 대우조선해양이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에 돌입하자, 정부는 산은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출자전환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로 올라섰고 이어진 조선업 불황 사이클과 반복되는 경영 위기 때마다 추가 자금 지원과 구조조정에 꾸준히 관여해 왔다. 그동안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정상화에 투입한 자금만 7조1,000억원에 이른다.
지분 매각 시도도 여러 차례 이어졌고 2022년 마침내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에 인수되며 새 주인을 맞았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과 체결한 투자합의서(MOU)에 따라 2조원의 유상증자를 단행, 이를 통해 한화그룹은 49.3%의 지분과 경영권을 확보했다. 유상증자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조원, 한화시스템이 5,000억원, 한화임팩트파트너스가 4,000억원, 한화에너지 자회사 3곳이 총 1,000억원을 분담했다. 유상증자로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되면서 산은의 지분율은 55.7%에서 28.2%로 감소해 2대 주주가 됐다.
하지만 당시 인수 과정에서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졌다. 14년 전인 2008년 한화그룹이 제시한 인수가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2008년에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시도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상실한 바 있다. 그때 한화그룹이 제시한 인수가는 6조3,000억원이었다. 또한 그간 투입된 공적자금(7조1,000억원)과 비교해도 '투자금 회수'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산은은 "이번 매각 방안이 국민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유동성' 확보에 공적자금 1.2조원 투입
한화그룹의 인수 작업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한화오션의 재무상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으면서 결국 다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지난해 5월 한화오션은 산은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총 1조2,000억원의 단기자금을 차입했다. 금리는 2.5%로 시중 조달 금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한화오션은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2023년 5월, 한화그룹으로부터 받은 2조원의 유상증자 대금으로 산은과 수은에서 빌린 한도성 대출 9,200억원을 상환하며 기존 채무를 털어냈지만, 불과 1년 만에 다시 국책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게 됐다.
한화오션의 재무건전성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은 데에는 조선업 특유의 수익 구조가 작용했다. 인수 이후 한화오션은 '저가 수주 털어내기'에 나서며 체길 개선에 나섰지만, 이로 인해 재무 상태가 취약해졌다. 조선업에서는 선박 건조 계약 시 소액의 선수금만 받고 전체 대금의 60% 이상을 인도 시점에 받는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 구조에서는 잔금을 받기 전에 막대한 선행비용을 자체 현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수주가 늘어날수록 현금 유출이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로 한화오션의 2024년 1분기 기준 미청구공사는 3조3,962억원으로 직전 분기(2조4,818억원) 대비 37% 늘어난 반면, 초과청구공사는 4조3,655억원에서 4조1,010억원으로 6% 감소했다.
이 같은 부담으로 인해 한화오션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순유출을 시현했고, 이는 유동성 압박으로 이어졌다.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추가 유동성 지원을 받은 지난해 말 한화오션의 현금성 자산은 5,883억원에 불과했다. 단기 차입금 1조2,000억원을 조달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크다. 19.5%의 지분을 보유한 산은이 2대 주주로서 사실상 '소방수'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다만 향후 공적자금 추가 조달 가능성에 대해 한화오션 측은 "당분간 자금 소요나 조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