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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FI, 풋옵션 7년 분쟁 주주 간 분쟁, 지주사 전환 작업 허들 국내 법원, ICC와 달리 간접강제금 불인정

국내 법원이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의 이행강제금 효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남은 재무적투자자(FI) 간 풋옵션 분쟁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7년을 이어온 풋옵션 분쟁이 해결 국면에 들어선 만큼 신 회장 측은 부담을 덜었지만, 교보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일정이 빠듯해 협상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법원 "간접강제금 부분은 인정 안 해"
3일 IMM PE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ICC 중재판정부는 신 회장이 주주간계약에 따라 감정인을 선임하고 가치평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정했고 법원도 이를 승인한 만큼 신 회장이 가치평가 보고서를 제출하고 궁극적으로는 풋옵션을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는 IMM PE 등이 제기한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관련 ‘중재판정 승인 및 집행결정’ 사건에서 신 회장이 주주간계약에 따라 감정평가인을 선임하고 감정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ICC 판정을 승인했다. 신 회장이 감정인을 선임해야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국내에서의 강제집행을 허가한 것이다. 앞서 ICC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12월 신 회장이 FI들과의 주주 간 계약에 따라 중재 판정 이후 30일 내 감정인을 선임하고 풋옵션 주식 가치평가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판정한 바 있다.
다만 서울중앙지법은 ICC 중재판정 중 간접강제금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ICC 중재판정부는 신 회장이 교보생명 가치평가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매일 20만 달러(약 2억8,000만원) 규모의 간접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판정했는데, 재판부는 간접강제금은 한국 법원이 명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 부분은 승인하지 않았다.
신 회장에게 유리해진 풋옵션 분쟁
이번 판결로 신 회장 측은 감정평가기관을 서둘러 지정해야 할 '30일 데드라인'에서 벗어나게 됐다. 강제금 부담이 사라지면서 남은 PEF와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 셈이다. 올해 들어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싱가포르투자청(GIC)은 각각 주당 23만4,000원 수준에서 교보생명 지분을 매각하며 분쟁에서 발을 뺐다. 어피너티의 보유 지분 9.05%는 일본계 금융그룹 SBI에, GIC의 보유 지분 4.50%는 신한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매각됐다. 어펄마캐피탈도 교보생명 지분 5.33%를 주당 19만8,000원에 전량 매각했다.
현재 교보생명 주주 구성은 신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39%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코세어캐피탈(9.9%), SBI그룹 등 우호 지분을 차례로 확보하며 신 회장의 경영권도 안정화됐다. 남은 주요 지분 보유자는 IMM프라이빗에쿼티와 EQT파트너스(각각 5.23%)뿐이다. IMM PE와 EQT는 여전히 풋옵션 행사 가격으로 30만원대의 가치를 주장하며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이행강제금 결정 무효화로 법적 강제 수단이 약화되면서 신 회장 측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다만 시장에서는 신 회장이 올해 상반기 안으로 지분 매입 협상을 빠르게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IMM PE와 EQT의 조건도 일부 반영될 수 있다.

금융 지주사 전환이 우선
신 회장이 숙원사업으로 꼽아 온 지주사 전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 변화 때문이다. 풋옵션 분쟁은 지주사 전환 발목을 잡아 온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려면 교보생명은 우선 다른 FI들과도 원활하게 협상을 완료해야 한다. 현재 교보생명은 연내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롯데손해보험, 악사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 인수를 검토하며 금융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이와 관련이 깊다.
교보생명 내부에서도 오는 9월 전까지 금융위원회에 인가 신청을 완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금융 당국이 심사 과정에서 남아있는 소송이나 가압류 등의 법적 분쟁을 살펴볼 가능성이 있어, 신 회장 측은 인가 신청 전 이러한 문제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보생명 입장에선 남은 지분을 주당 30만원 수준에 매입한다고 해도 큰 부담은 아닐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어피너티와 GIC가 보유 지분을 각각 주당 23만원대에 매각했고, 어펄마캐피탈도 19만원대에 지분을 처분하면서 교보생명의 평균 매입 단가는 20만원대 초반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다. 이에 따라 IMM PE와 EQT의 지분을 비교적 높은 가격에 인수하더라도 전체적인 평균 단가는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내부적으로 IMM PE와 EQT가 요구하는 가격에 지분을 회수할 경우 LTV(대출 대비 자산가치)가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IMM PE 입장에서도 주요 기관출자자(LP)인 국민연금의 눈치를 살피며 장기 분쟁보다는 적정 가격에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할 공산이 크다. 최종 중재 가격이 PE 측 기대보다 낮게 나오더라도 추가적인 법적 대응보다 빠른 회수를 선택할 수 있다. 이에 코세어캐피탈의 방식을 차용해 부분적 자금 회수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IMM PE는 서울중앙지법이 이행강제금 강제 부분만 승인하지 않고 감정평가기관 선정과 가치평가 보고서 제출 자체는 그대로 승인했으니, 궁극적으로 풋옵션 관련 변화한 사항은 없다고 되풀이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같은 물건(주식)을 놓고 다른 가격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