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거래 기업 파산·부도 등으로 4대 은행 짊어질 손해 26조 기업대출 심사 더 까다로워질 듯

경기 침체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기업 관련 신용위험이 1년 새 2배나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국면 이후 시중에 좀처럼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최악을 기록했는데, 최근 들어 은행과 거래하는 기업들의 신용위험까지 부쩍 커진 것이다. 향후 은행들이 위험 관리를 위해 대출 등을 깐깐하게 관리하면 기업 자금줄이 더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년 새 기업 관련 신용위험 증폭
3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거래상대방 신용위험(CCR)은 2023년 12조2,776억원에서 지난해 26조812억원으로 증가했다. 거래상대방 신용위험은 금융거래를 할 때 계약 상대방이 돈을 지급하지 못할 리스크를 금액으로 산출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거래상대방이 부도날 경우 은행권이 대규모 손실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신용위험을 사전에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은 대출뿐만 아니라 주식, 채권 등 금융 상품과 각종 보증기관의 보증액까지 합산해 신용위험을 산정하고 있다.
2020~2023년만 해도 4대 은행의 거래상대방 신용위험은 연간 10조~12조원 선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 위험이 본격화하면서 신용위험도 치솟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통상 분쟁 리스크가 커졌고, 국내에선 계엄 사태가 겹치며 기업 경영 불확실성이 가중된 영향이다.
특히 달러당 원화값이 추락하자 수출 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기업들이 쥐고 있는 해외 자산이나 지분 투자분에 대한 원화 환산 평가이익이 줄고, 원화값 하락분만큼 웃돈을 주고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외화부채 환산 손실 역시 불어난다. 여기에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파생상품 매입까지 늘리며 신용위험이 크게 높아졌다.

3월 기업대출 2.5조 뚝
실제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61%로 전월 대비 0.11%p 상승했다. 대기업대출은 0.05%로 전월 대비 0.02%p 올라갔고, 중소기업도 0.15%p 증가한 0.77%의 연체율을 나타냈다. 개인사업자 연체율도 0.70%로 0.10%p 뛰었다. 은행들의 보통주자본비율(CET1)도 지난해 말 기준 13.07%로 전분기 대비 0.26%p 하락한 상황이다. CET1을 일정 수준(13%)으로 관리하려면 위험가중자산(RWA)를 낮게 관리하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에 주요 은행들은 신용위험 확산을 막기 위해 관리 모드에 돌입했다. 지난달 KB국민·신한·하나·우리 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2,094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4,936억원 감소했다. 지난 1월 5조1,003억원, 2월 1조9,802억원 증가했다가 석 달 만에 감소세로 전환한 것이다.
같은 기간 기업대출 중 영세한 개인사업자 대출뿐 아니라 대기업대출도 감소세를 나타냈다. 대기업대출은 162조172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6,255억원 줄었다. 작년 12월 이후 석 달 만의 감소세다. 중소기업대출도 338조7,251억원으로 전월 대비 4,658억원 줄었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324조4,671억원으로 전월 대비 4,024억원 감소해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기업들 '일단 버티기' 돌입
돈맥경화에 내몰린 기업들은 일단 버티자는 분위기다.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올해 각 계열사 성과 평가 항목에서 재무건전성 지표를 강화했다. 이전에는 일부 관련 부서에만 적용했는데, 마케팅 같은 ‘돈 쓰는’ 부서의 평가에도 포함시켰다. 계열사들은 차입 비용 축소, 사옥 등 보유 부동산 자산 매각, 투자 규모 축소‧보류 등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과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롯데 임원은 “목표가 막연한 인수‧합병(M&A)은 하지 말고 내실을 다지라는 메시지 자체는 맞다”면서도 “‘돈 쓰지 말라’는 소리로 들려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특히 유통업계에선 올해만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 온라인 명품 플랫폼 1위 발란이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유동성 악화를 이유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애경그룹도 유동성 악화로 그룹이 흔들리자 알짜 자산인 애경산업 매각에 나섰다. 새벽배송 대행 1위인 팀프레시도 배송기사들에 대금 결제 못 해주자 결국 지난달 31일부터 일부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다.
건설업계에서는 ‘4월 위기설’이 공공연하다. 연초부터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거나 아예 빚을 갚지 못해 법정관리 직전 단계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신용 등급이나 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기업은 모두 6곳이다. 또 올해 시공능력 평가 200위 가운데 신동아건설(58위), 삼부토건(71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등 7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건설뿐 아니라 화학과 이차전지 업황 부진, 전반적인 경기 둔화로 이번에 신용등급 전망치가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되는 기업이 눈에 띄게 늘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