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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홈플러스 사태 기점으로 PEF 감독 강화 국회·당국 차원에서 규제 강화 논의도 활발 '솜방망이 처벌' 오명 씻을까

금융당국이 국내 주요 사모펀드(PEF)에 투자한 회사의 부채 관련 자료를 면밀히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PEF의 과도한 차입을 통한 인수·합병(M&A)을 제한하고, PEF 투자 활동 전반에 강력한 규제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당국, PEF 부채 자료 취합 나서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상위 30개 PEF에 기업 인수 목적으로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과 피인수회사의 부채 현황 자료를 요청했다. 정치권 전반에서 PEF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하자,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PEF 활동과 관련해 전방위 점검에 착수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그간 PEF에 대한 감독을 느슨히 한 것은 대다수 PEF 투자자가 전문성 있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기관은 투자에 수반되는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PEF와의 민사소송으로 매듭짓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투자자가 다수 참여하는 공모펀드의 부실이 곧장 사회적 논란을 낳는 것과는 상반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을 기점으로 상황이 뒤집혔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를 인수하기 위해 총 6조원을 투자했고, 이 중 2조7,000억원을 차입금으로 조달했다. 이후 홈플러스는 단기 유동성 압박을 근거로 지난 3월 4일 법원에 홈플러스 회생을 신청했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단기 채권은 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대거 판매됐고, 국민연금까지 사태에 연관돼 있다"며 "여기에 홈플러스와 관련 업체 종사자들의 피해까지 예상되는 만큼, 사회적 파장이 커 당국이 손을 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PEF 규제 수위도 높아진다
PEF를 대상으로 한 규제 강화 움직임 역시 속속 본격화하는 추세다. 금감원은 최근 PEF의 책임 경영 강화를 위해 자본시장연구원에 관련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올 상반기 내 용역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규제 내용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당국은 PEF가 기업의 경영에 개입할 경우, 그 목적과 구체적인 계획을 사전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PEF가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에 개입할 경우,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MBK-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를 계기로 PEF의 산업 자본 개입과 관련한 금산분리 규제도 당국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현행법상 PEF는 일반 금융회사와 달리 금산분리 규제를 받지 않아 산업 자본으로 분류되는 기업의 경영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다. 이를 악용하면 PEF가 기업을 단기적인 수익 창출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장기적인 기업 경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국회에서는 △투자 투명성 강화 △투자기관 구조조정 방식 규제 △노동자 보호 장치 마련 등을 포함한 PEF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다음 달 PEF가 프랜차이즈 가맹점, 버스 회사 등 민생 취약 분야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시장 신뢰 회복' 기회?
시장에서는 당국의 적극적인 PEF 규제가 그간 쌓인 '전례'를 뒤엎기 위한 노력이라는 평이 나온다. 지금까지 PEF에 대한 금융당국의 처벌 수위는 상당히 낮았다. 지난 2023년 당국 처분이 결정된 NH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의 '쪼개기 발행' 사태는 이 같은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앞서 지난 2017년 NH투자증권은 2017년 11∼12월 '라탐호스피탈리티펀드'를 기초 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을 발행했다. 해당 DLS는 발행사인 NH투자증권이 직접 판매했으며,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이 특정금전신탁 형태로 판매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NH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은 총 680명의 투자자로부터 약 2,621억원을 모집했다.
문제는 두 증권사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DLS를 분리 발행해 판매했다는 점이다. 같은 종류의 증권 발행을 둘 이상으로 분할해 각 49인 이하에게 청약을 권유, 의도적으로 공모 규제를 회피한 것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50인 이상의 투자자에게 새로 발행되는 증권을 취득하라고 청약을 권유하기 위해서는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에 금감원은 두 회사에 각각 40억1,55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기관과 실질적 행위자에 대한 수사기관 통보 조치를 취하려 했으나, 금융위는 3차 정례회의 수정의결에서 6억원대로 과징금을 대폭 하향하고 수사기관 통보 조치를 제외시켰다. 이와 관련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모펀드 쪼개기 판매는 해외에서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행위인데, 우리나라 당국의 대처는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며 "업계에서 ‘감옥 한 번 다녀오고 한탕 크게 벌자’는 생각이 뿌리뽑히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국이 홈플러스 사태를 '신뢰 회복'의 기회로 삼아 규제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