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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과잉 지급에 보험사 손해율·보험료 인상 악순환 보험사가 치료기간 연장의 당위성 검토해 지급보증 중지 약물운전 보험료 할증, 청년층의 부모 보험 무사고 인정

앞으로 자동차 사고 시 가벼운 부상을 입은 환자는 장기치료 보험금 수령이 까다로워진다. 치료기간을 늘리거나 과잉 진료를 받는 등의 방법으로 보험금을 과다 수령하는, 이른바 '나이롱환자'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경상환자가 8주 넘게 장기치료를 받으려면 보험사에 추가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그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보증이 중단된다. 정부는 이 같은 조치를 통해 과잉 지급되는 합의금과 치료비 등 보험금 누수를 방지함으로써 향후 보험 가입자의 자동차 보험료가 3% 남짓 인하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토부·금융위 등,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대책' 발표
26일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국민의 자동차 보험료 부담을 완화하고 사고 피해자에 대한 적정 배상을 지원하기 위한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그동안 약관 등에 명확한 근거 없이 관행으로 지급해 오던 향후치료비(합의금)를 치료 필요성이 큰 상해등급 1~11급의 '중상환자'에 한해서만 지급하도록 하는 근거를 신설했다. 2023년 기준 경상환자(상해등급 12~14듭)에게 지급된 합의금만 1조4,000억원으로 치료비(1조3,000억원)보다 많아 보험금 누수가 크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국토부에 따르면 차량 파손 없는 단순 후미 추돌이나 본체가 아닌 사이드미러 등에 발생한 접촉사고에도 수십 차례 통원치료를 받으며 수백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례가 많았다. 일례로 끼어들기로 인한 비접촉 사고에도 피해 운전자는 급정거로 인한 근육 긴장·염좌 등을 이유로 202회의 통원치료를 받아 치료비 1,340만원을 챙겨갔다. 이에 정부는 과잉 진료 및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해 경상환자가 8주를 초과하는 장기치료를 희망할 경우 보험사에 진료기록부 등을 제출하고 보험사는 장기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지급을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개별 운전자의 리스크 요인을 정밀하게 반영해 적정 보험료를 책정하도록 했다. 마약·약물 운전에 대해 다른 중대 교통법규 위반과 마찬가지로 보험료 할증 기준을 적용하고, 마약·약물·무면허 운전과 뺑소니 차량 동승자에 대해서는 보상금을 40% 감액해 지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보험료 산정 시 부모의 자동차보험으로 운전한 청년층(19~34살)의 무사고 경력을 인정하고, 배우자 차량을 이용하는 운전자도 운전자한정특약 종류와 상관없이 무사고 경력을 최대 3년 인정받는다. 현재는 부부한정특약 가입자에 한해 무사고 경력을 인정한다.

경상환자 비중 94.4%, 평균 진료비 10년 새 3배 늘어
정부는 이번 개선안을 통해 경상환자에 대한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이 줄어 개인의 자동차 보험료가 3% 정도 낮아질 것으로 추산한다. 자동차보험 사고의 경상환자 수는 2017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22년 168만7,206명을 기록했다. 전체 환자(178만7,294명)의 94.4%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경상환자의 상당수가 과잉 진료를 받으며 보험사의 손해율이 상승했고 결국 선량한 보험 가입자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초래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실제로 삼성화재 등 7개 손해보험사의 지난해 1~8월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80.9%에 이른다.
최근에는 중상환자보다 경상환자의 진료비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23년 자동차 사고 경상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85만3,000원으로 2014년(30만원)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상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1.56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에는 교통량이 감소하면서 자동차보험 처리 건수가 팬데믹 이전보다 60만 건 넘게 줄었음에도 주로 경상환자가 이용하는 한방 진료비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자동차보험 진료비의 절반 수준으로 확대됐다.
가벼운 부상에도 보험으로 최대한 오래 치료받으려는 꼼수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보험 치료기간은 초진 진단서를 기준으로 정해지지만, 추가 진단서를 발급받으면 치료기간이 연장되는 사례가 많다.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 등 4대 손보사에 따르면 통상적 경상환자의 치료기간(2주)을 2배 이상 초과한 사례는 18만5,000건으로 이 중 4만7,000여 명이 진단서를 3회 이상 발급받았다. 18회 이상 진단서를 떼어간 사람도 140명이나 됐는데, 진단서를 18번 받으면 일반적으로 치료기간이 40주로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경상환자의 치료기간 증가 추세는 관련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상환자 중 가장 등급이 높은 상해 12급은 평균 진료기간이 2021년 35.8일에서 2022년 37일로, 203년에는 37.6일까지 늘어났다. 심지어 더 등급이 낮은 13급은 2022년 49.7일에서 2023년 72일까지 늘어 더 큰 부상을 입은 12급보다 진료기간이 긴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차량 수리비가 23만원에 그친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커플이 진료기간을 부풀려 병원 치료비와 합의금으로만 1,700만원의 보험금을 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이롱환자 막으려 전체 치료 기회 제한해 부작용 우려
일각에서는 중증환자에게만 향후치료비를 지급하도록 제한한 정부의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나이롱환자들이 향후치료비를 타 내기 위해 악용한 항목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뇌진탕은 환자가 증상을 호소하기만 해도 진단서가 발급되는 일이 많아 나이롱환자들이 악용하는 대표적인 항목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해등급 11급의 중상으로 분류돼 이번 대책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에서는 규제의 풍선효과로 뇌진탕 진단과 치료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23년에도 경증환자가 4주 이상 치료 시 2주마다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약관 제도를 변경했는데 일부 환자들이 제도를 우회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뇌진탕 진단을 받아내는 일이 많아졌다. 국토부 등 관계 부처가 모여 자동차보험 개선 방안을 논의했던 지난해 12월 제5차 보험개혁회의에서도 경·중상 질환의 분류와 적용 등에 관한 문제점이 지적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뇌진탕 등 논란이 된 항목을 경상에 해당하는 상해등급 12급으로 내리거나 아예 경상환자의 범위를 상해 11급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이번 대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치료기간이 8주를 초과할 때 보험사가 진료기록부 등을 검토해 지급보증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한 조치에 대해서는 환자의 권익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통사고는 직접적인 신체 손상이 없더라도 허리나 목 등에 후유증이 남아 만성질환이 되는 사례가 굉장히 많아 선의의 피해를 보는 환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일탈하는 일부를 잡기 위해 전체 대상자의 치료 기회를 제한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의 취지는 공감하나 실제 적용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