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발 맞닥뜨린 정부의 금융당국 개편안, 기대 효과와 부작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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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금융당국 '4원 체제'로 개편하는 방안 확정 당국·금융사·직원들부터 야당까지 줄줄이 '반대' 더 나은 감독 환경 구축하기 위한 일시적 진통인가

이재명 정부의 금융당국 개편안을 둘러싼 잡음이 거세지고 있다. 금융당국 측부터 산하 직원들, 민간 금융권까지 조직 개편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며 시장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이들은 정부의 조직 개편안이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분쟁 해소 및 제재 절차의 번거로움을 가중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금융당국 개편안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정부 조직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로 개편하면서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 정책 기능을 통합하는 것이다. 금융위가 담당하던 국내 금융 정책(금융정보분석원 포함)은 신설되는 재경부가 이관받고, 금융위는 '금융감독위원회'로 명칭을 바꾼 뒤 감독 기능에 집중하는 식이다. 금감위는 산하에 금융감독원과 기존 금감원에서 분리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두게 되며,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새로운 금융 거버넌스는 4원 체제로 구성되는 셈이다.
금융당국 측 인사들은 해당 개편안이 금융감독 독립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민간 조직에 금융감독을 맡겨야 독립성이 담보되는데, 지금 구조는 관료 조직이 지휘하는 모양새"라며 "산업 진흥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조직이 감독까지 쥐면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전 원장은 금감원과 금소원의 공공기관 지정 방침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는 얘기는 금융을 정부 뜻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데, 이게 바로 관치금융"이라며 "체계를 잘 만들어서 금융의 자율이나 창의력은 살아나게 하고 문제 발생 시에는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뒤죽박죽이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권·당국 직원들 반기 들어
민간 금융사들 역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의 계획대로 금융당국 체제가 개편될 경우, 분쟁 발생 시 해결 절차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금융사에서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금융 상품을 파는 불완전 판매 사건이 발생할 시, 예전엔 금감원 중심의 조사를 받다가 제재 수위가 정해질 때쯤 금융위에 대응하면 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분쟁 조정과 소비자 구제는 금소원, 영업점·상품에 대한 검사와 내부 통제 점검은 금감원, 제재 심의·의결은 금감위가 맡게 된다. 이에 더해 당국이 추후 정책·법령 개선을 추진할 시에는 세종에 위치한 재경부까지 절차에 개입할 수 있다.
제재 절차도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에 더해 금소원까지 금융사들을 감독·검사할 경우, 금감위의 제재 확정이 지연되며 금융사들의 경영 리스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금감원과 금소원이 내년부터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점도 금융사들에는 골칫거리다. 공공기관이 되면 재경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이들 기관의 인사와 조직 개편, 예산 등을 심의하게 된다. 금감원·금소원에 대한 재경부의 입김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금감원을 비롯한 금융당국 직원들 역시 반대 의견을 표출하고 나섰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1층 로비에는 상·하의를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직원 700여 명이 모였다. 전날 금감원 노동조합이 정부 조직 개편안에 반대하기 위한 시위를 열겠다며 참석자를 모았는데, 금감원 전체 직원 가운데 3분의 1에 달하는 인원이 모인 것이다. 시위에 참석한 금감원 직원들은 금감원과 금소원을 분리할 시 업무 혼선과 중복이 발생할 게 불 보듯 뻔하며,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경우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입법 난항 전망, 패스트트랙 카드 꺼내 들까
입법 과정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금융당국 개편에 따른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은행법 등 후속 입법을 다룰 정무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인 윤한홍 의원인데, 국민의힘이 금융당국 개편에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야당 무시가 도를 넘고 있다"며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하루 전 금융위 해체를 논의하더니 '금융위 존치'와 '야당과의 협의'를 전제로 진행했던 청문회가 끝나기 무섭게 '금융위 해체'를 공식화했다"고 질타했다. 또한 "금융당국 조직 개편은 '금융위 설치법' 등 정무위 소관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며 "개편 당사자인 금융당국과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밀실 졸속안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야권을 설득하지 못할 경우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관련 절차를 처리할 수도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에는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며,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은 상임위 심의(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90일), 본회의 부의(60일)를 거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야당 합의 없이 내년 4월께 금감위설치법 처리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기재부 개편 시기가 내년 1월 2일쯤으로 예정돼 있는 만큼, 패스트트랙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시장 혼란이 빚어지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같은 진통이 어디까지나 체제 개편 과도기에 벌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시장 전문가는 "아마 한동안 진통을 겪기는 하겠지만, 금융당국의 각 기능이 분리되면 금융위와 금감원의 감독 기능 부분이 강화되며 금융 사고 발생 등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재경부 역시 경제 전문 인력의 배치를 통해 내부의 고질적 갈등을 해소할 '열쇠'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