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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급등·가계대출 증가 등 금융시장 불안 심화 한은, 금리인하 신중론, 전문가들도 동결에 무게 올해 내 금리인하 전제 조건은 '집값'

오는 10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연 2.50%인 기준금리를 또다시 내릴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고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5월에 이어 연속으로 금리를 낮출 경우, 최근 수 개월간 크게 뛴 서울 집값과 가계부채를 더 자극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다.
금리인하, 집값 불안 부추길 수도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54조8,000억원으로, 한 달 새 6조7,000억원 넘게 급증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2월부터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집값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거래가 늘고, 가격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최근 대출 규제를 시행한 것도 이러한 과열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주택가격 급등이 기준금리 인하의 시기와 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금통위 논의에서도 가계부채와 외환시장 등 금융 안정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은이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은은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에서는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만큼, 추가 금리 인하 기대심리가 불안정성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특히 대출 규제 시행 직후인 만큼 당분간 정책 효과를 지켜보며 신중히 대응할 것이란 전망이다.
만약 8월 이후 부동산 시장 안정과 대출 증가세 둔화가 확인될 경우, 한 차례 정도 금리 인하 가능성이 다시 열릴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일단 현 시점에서는 한은이 금리를 더 내리기보다는 부동산과 가계부채, 대외 경제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며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창용 총재 "부동산에 대한 지나친 자금 쏠림, 금융위기 가져와"
한은도 올해 3분기 말까지 가계대출 급증세가 지속될 수 있다며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분위기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진행된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최근 수도권 주택 시장이 가격 상승세와 거래량 모두 지난해 8월 수준을 넘어서는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가계부채 리스크가 증대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6월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2018년 9월 이후 최대 수준을 나타내며, 거래량도 지난해 최고치를 상회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한은은 특히 “향후 가계대출은 이런 주택시장 과열의 영향으로 8~9월 중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월간 증가액은 올해 5월 6조원에 이어 6월 이미 7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은은 결론적으로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가 주택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추가 인하 시기 및 속도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한 경계수위가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에서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간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부동산으로만 돈이 흘러 들어 경기 부양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우려해 왔다. 또한 부동산 부문으로의 지나친 자금 쏠림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며, 가계와 기업 금융의 구조적 문제는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말 이 총재는 "최근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기조 전환이 이뤄졌다"며 "앞으로 국내외 금융 여건이 더욱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전처럼 가계와 기업이 과도한 대출을 받아 자금이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저출생 등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성장동력이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더 많은 신용이 공급되게 유도해 우리 경제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자 싸고 DSR 적용도 안 받아, '정책 대출'로 쏠릴 가능성↑
대다수 전문가도 최근 수도권 집값 급등과 가계대출 증가세가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특정 지역의 과열 문제는 오히려 정부의 미시적 규제나 공급 확대 등 별도의 정책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대출 규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고가 아파트 중심의 투기 수요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긴 어렵다고 본다. 대출 규제만으로는 이미 집값이 오른 지역의 추가 상승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 추가 수요 억제와 공급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부동산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부가 공급하는 정책 대출로 수요가 옮겨 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정책 대출은 시중은행 금리보다 1~3%포인트 낮은 데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에도 정책 대출의 한도를 최대 1억원 축소하는 방안이 담겼지만, 시장에서는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은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나 신혼부부, 신생아 가구 등에 연 1%대 후반~4%대 초반 금리로 대출을 제공한다. 연 4%가 넘는 시중은행 주택 담보 대출 금리보다 낮다 보니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정책 대출의 일종인데 이번에 한도가 유지된 보금자리론(장기·고정 금리·분할 상환)의 경우, 지난해 3~9월 공급 규모가 월 2,000억~3,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작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는 매달 1조원이 넘는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정책 대출은 특히 DSR 규제에서도 제외되는 만큼 규제 우회 수단이 될 수 있다. 다음 달 1일부터 3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으로 대출 한도가 더 줄어들면, 정책 대출 쏠림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