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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폐업자 수 100만8,282명, 2년째 증가세 자영업 비율 높은 소매업·음식업 폐업자가 45% '사업 부진' 이유로 폐업한 사업자 절반 넘어

1년 동안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소매업·음식업종 비중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닌, 한국 경제의 허리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임금은 급등했지만 생산성은 정체했고, 교육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인적자원 효율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고비용-저효율의 이중 구조가 국가 경제를 휘청이게 만드는 양상이다.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100만 명 첫 돌파
7일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법인)는 총 100만8,282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2만1,795명 늘어난 수치로,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5년 이후 처음으로 폐업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23년(98만6,487명)에 비해선 2만1,795명이 증가했다. 폐업률도 9.04%로 전년(9.02%)보다 소폭 상승하며 2020년(9.3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업종별로는 소매업 폐업자가 29만9,642명으로 전체의 29.7%를 차지하며 가장 많았다. 음식점업은 15.2%, 부동산업은 11.1%로 뒤를 이었다. 소매업과 음식점업을 합치면 전체 폐업자의 절반 가까이 된다. 폐업 사유 중에서는 ‘사업 부진’이 50만6,198명으로 전체의 50.2%를 차지했다. 해당 비중이 절반을 넘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10년 이후 처음이다. 기타’ 사유가 44만9,240명으로 뒤를 이었고, 양도·양수(4만123명), 법인 전환(4,471명), 행정처분(3,998명), 해산·합병(2,829명), 계절 사업(1,089명) 순이었다.
폐업은 이제 간이사업자 등 영세 개인 사업자에 그치지 않고 일반 사업자와 법인으로도 확산하는 양상이다. 간이사업자의 폐업률은 12.89%로 가장 높았으며, 일반 개인사업자는 8.77%, 법인사업자는 5.80%로 각각 나타났다. 생활 밀접 업종에서도 폐업 증가가 뚜렷하다. 대표적인 자영업 창업 업종인 커피음료점은 올해 1분기 기준 9만5,337개로 전년 동기 대비 743개 줄었고, 편의점도 455개 감소했다.
10년간 물가보다 4배나 오른 최저임금
이 같은 폐업 확산의 주요인으로는 10년간 물가보다 4배나 오른 최저임금이 지목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하에 급격히 인상되기 시작한 최저임금은 2017년 6,470원에서 올해 1만30원까지 뛰었다. 8년간 누적 인상률이 무려 55%에 달한다. 문제는 이런 높은 인상률이 업종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적용돼 왔다는 것이다.
민간 연구기관 파이터치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 오를 때 종업원 1~4인 소기업의 폐업률은 0.77% 증가한다. 이 결과를 활용해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1.7%을 적용하면, 자영업자를 포함한 1만1,994개의 소기업이 폐업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원을 해고하거나 근로시간을 줄인다.
실제 최근 들어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고용원을 내보내고 홀로 경영하거나 '쪼개기 알바'가 성행하고 있다. 고용의 양과 질 모두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숙박·음식점 취업자 수가 3년여 만에 최대폭인 6만7,000명이나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줄어든 일자리는 가계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자영업자 매출 감소와 폐업 증가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가계 소득 감소는 내수 부진을 더욱 부추겨 국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상품 소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액 불변지수는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0.3% 줄었다. 소매판매는 2022년 2분기 이후 3년째 감소세다.

한국 교육열 넘치지만, OECD 중 ‘가성비’는 꼴찌
더욱 뼈아픈 대목은 높은 최저임금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이라는 점이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3.3달러로 38개국 중 33위에 그쳤다. 2019년 31위, 2020년 32위, 2022년 33위로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2019년 대비 2023년 실질 노동생산성도 102.8%로 코로나19 이전을 웃돌고는 있지만 회복 속도는 더딘 편이다. 이에 반해 독일(88.0달러), 미국(87.6달러), 핀란드(80.3달러)는 우리의 2배에 가깝다.
이 같은 현실은 단순히 사업장의 교육 시스템 미비뿐 아니라, 애초에 사회가 배출한 인재의 기초역량이 세계 평균에 미달한다는 구조적 실패를 시사한다. 실제 블룸버그통신이 OECD 회원국들의 1인당 교육비 대비 근로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 비율을 분석한 결과, 한국이 6.5배로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비율이 낮을수록 교육비 지출액에 비해 근로자 생산성은 떨어진다. 국가별로는 아일랜드가 22.8배로 가장 높았고 덴마크·프랑스·미국 등은 각각 10배를 웃돌았다. 호주(9.7배), 캐나다(8.8배), 독일(8.5배), 일본(7.8배) 등도 한국보다 높은 비율을 보였다.
한국은 아일랜드보다 40% 많은 교육비(10대 기준)를 지출하지만 근로자들의 1인당 GDP는 아일랜드보다 60% 적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교육열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 가성비 꼴찌 국가라는 것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지적 능력이 감퇴하는 국가라는 분석도 더했다. 각국의 16~24세와 55~65세의 문해력·수리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그 격차가 가장 컸다. 한국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지만, 지속성과 자율성이 부족해 졸업 후 근로자가 되면 이들의 능력이 빠르게 떨어진다는 의미다.
명문대 진학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황금티켓 증후군'도 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은 대학 졸업생 중 절반이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갖는 등 노동시장 수요와 근로자 능력 불일치가 선진국 중 가장 큰 국가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또한 대부분 청소년들이 취업보다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만큼 노동시장 불균형과 근로자 생산성 하락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실제 지난해 기준 한국의 실업계 학생 비율은 18%로, OECD 평균 44%를 크게 밑돌았다.
아울러 블룸버그는 한국의 교육열은 1950년대 전쟁 폐허에서 경제적 성과를 낸 핵심 동력이 됐지만, 이제는 노동시장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젊은층의 정신건강까지 해친다는 전문가 견해도 인용했다. 지난해 한국의 10대 자살률이 10.1%로 전 세대 중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블룸버그는 진단했다. 한 전문가는 "한국은 성공이라는 덫에 걸려 있다"며 "교육이 한국을 현재 위치로 이끌었지만, 이제는 국가의 경제적 미래를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