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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북 격차’ 갈수록 심화 유럽 전체도 ‘똑같은 문제’ 산업 생산성 및 교육 차이 줄여야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지난봄 이탈리아 통계국에서 내놓은 숫자가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전체 인구의 1/3을 넘는 남부 8개 지역의 작년 생산량이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22%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탈리아만의 얘기가 아니다. 2020년 이후 130만 명 이상의 청년이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 유럽에서, 독일을 비롯한 알프스 북쪽 국가로 일자리를 구해 떠났다.

‘남북 격차’, 인재 유출로 더욱 확대
인재 유출의 대가는 크다. 남부 이탈리아를 떠난 대졸자 1명에게 투자된 공공 예산이 240,000유로(약 3억8,40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남부 주민들의 세금이 부유한 북부 지역의 생산성에 이바지하는 셈이다.
남부와 북부의 불균형은 최근 벌어진 일이 아니라 1861년 통일 이후부터 이탈리아가 줄곧 겪은 문제다. 통일이 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업 위주의 북부와 농업 위주의 남부 간 경제적 격차는 갈수록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지역 격차는 유로존의 문제로도 확대됐다. 한때 피에몬테(Piedmont,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가 생산직 일자리와 인프라를 통해 남부 인력을 끌어갔듯, 이제는 프랑크푸르트와 암스테르담이 디지털 일자리와 연구개발 단지로 졸업생을 유혹한다.
이탈리아의 지역별 격차는 아직도 크다. 올해 롬바르디아(Lombardy,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1인당 GDP가 36,100유로(약 5,780만원)라면 칼라브리아(Calabria, 이탈리아 남서부)는 19,500유로(약 3,121만원)에 머물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2000년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격차다.
유럽으로 시야를 넓히면 독일의 인건비는 그리스의 거의 세 배에 이르고 유럽연합(EU) 지역 경쟁력 지수를 봐도 북부 이탈리아가 121인 반면 남부는 80에 그친다. 독일이 발행한 100,000장의 EU 블루 카드(EU Blue Cards, 고도로 숙련된 비EU 시민들을 위한 거주 및 취업 허가서) 중 1/4 이상이 남부 유럽 졸업생들에게 돌아갔다.
산업 기반 차이에 따른 구조적 문제
이는 우연이 아닌 구조적 문제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 북부의 산업 다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남부는 농업 위주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산업 경제로의 이행이 지체되며 생산성 격차가 한 세기를 넘게 이어져 온 것이다.

주: 남부 지역 추이(좌측), 남부 지역(실선), 통일 미가정(점선) / 중북부 지역 추이(우측), 중북부 지역(실선), 통일 미가정(점선)
근로자들의 이동성이 강화된 것이 개인에게는 기회일지 모르나 남부 지역에는 축복이 아닌 재앙으로 작용했다. 졸업생들은 자신만 떠나는 게 아니라 세금 수입도 함께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재무부에 따르면 졸업생 한 명이 떠나며 초래하는 재정 손실이 240,000유로(약 3억8,400만원)에 달한다. 이를 북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남부 청년 수에 대입하면 전체 손실은 350억 유로(약 56조원)를 넘는다. 이탈리아 학교 예산 전체에 버금가는 규모다. 사르데냐(Sardinia, 지중해에 있는 이탈리아의 섬)의 초등학생 등록률이 2015년 이후 14%나 줄었는데 이는 가족과 교육자들의 이탈도 의미한다.
교육 및 인터넷 속도 차이도 ‘심각’
지역 격차를 줄여야 할 교육이 오히려 차이를 벌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 전체의 졸업률은 향상됐지만 남부 지역 대학들이 수요가 낮은 인문학에 집중하는 반면, 북부 도시들은 인공지능(AI)이나 생명공학 등 첨단 분야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교육인구의 1/3을 넘게 차지하는 남부가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16%를 수령하는 데 그친다. EU 차원으로 봐도 네덜란드가 2021~2024년 기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합친 것보다 많은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EU 차원 연구 및 혁신 활동 지원 프로그램) 지원금을 받았다.
통일 이후 진행된 국가 교육 개혁에도 불구하고 남부 이탈리아의 문해율(literacy rates)은 당초 예상은 물론 북부 지역에도 뒤처지고 이는 정책 집행을 통한 성과를 어렵게 한다. 연구개발 인프라와 집중적인 자금 지원이 없다면 다른 지역만 배불리는 인재 수출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주: 남부 지역 추이(좌측), 남부 지역(실선), 통일 미가정(점선) / 중북부 지역 추이(우측), 중북부 지역(실선), 통일 미가정(점선)
사실 팬데믹이 변화의 계기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2021년 조사를 보면 이탈리아 디지털 분야 근로자의 20%가 해외 기업에 고용됐고 이들은 재택근무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들 중 2023년까지 남부 이탈리아에 남은 인력은 별로 없다. 롬바르디아의 인터넷 속도가 바실리카타(Basilicata, 이탈리아 남부 지역)보다 두 배 빠른데 어쩌겠는가? 물론 아브루초(Abruzzo, 이탈리아 남부)처럼 광대역망과 공동 작업 공간, 스타트업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지역의 졸업생 유지율은 높아 정책 당국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집중 투자로 지역 격차 줄여야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EU와 이탈리아는 한결같은 보조금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먼저 EU 재건 교육 펀드(recovery education fund)의 30%를 낙후 지역의 졸업생 유지율과 연동시켜야 한다. 또 인재 이동으로 수혜를 입는 국가가 정작 교육을 담당한 지역에 세수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이동성 배당금’(mobility dividend)을 신설해야 한다.
한편 EU는 에라스무스 플러스(Erasmus+, 교육, 훈련, 청소년, 스포츠를 지원하는 EU 프로그램)를 확대해 북부 지역 학자들이 남부 대학교를 방문해 지역 간 지식 교환이 확대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이탈리아 도시들은 ‘기술 채권’(skills bonds) 발행으로 연구소와 스타트업에 투자해 지역 졸업자들의 미래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이 시장을 왜곡하고 의존성을 심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미 시장은 오랜 기간 자본과 인프라를 축적한 지역에만 유리하게 왜곡돼 있다. 자료를 보면 지원금이 적정한 목표와 연동되면 남부 기업들이 혁신 면에서 북부를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감 있는 투자이지 자선이 아니다.
원문의 저자는 굴리엘모 바로네(Guglielmo Barone) 볼로냐 대학교(University Of Bologna) 교수 외 3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A cold case (over 160 years old): The effects of unification on Italy’s North-South divide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