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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해방의 날’ 관세 발표로 공급망과 무역 시스템 전반에 충격 발생 수입 중간재 의존 구조와 한계에 다다른 물류 인프라가 위기를 증폭 통화정책 대응에도 실물경제 회복은 어려운 상황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2025년 4월 미국이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는 이름으로 주요 교역국에 최대 1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 무역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이 조치는 단순한 무역정책 변화가 아닌, 글로벌 공급망과 거시경제 시스템 전체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결정이다.

글로벌 공급망, 관세 충격을 두 배로 키우는 구조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은 관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비교했다. 하나는 현실과 같이 수입 중간재를 사용하는 생산 구조, 다른 하나는 수입 중간재 없이 생산이 이뤄지는 가상의 모델이다.
두 시나리오 모두 관세 인상으로 생산이 줄고 무역수지가 악화됐지만, 수입 중간재를 사용하지 않은 모델에서는 충격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론적으로는 수입 의존도를 낮추면 관세로 인한 피해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주: 중간재를 사용하는 경우(실선)와 사용하지 않는 경우(점선) 각각의 생산, 소비, 물가 반응 비교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모형안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외국산 부품 없이 생산을 이어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이 문제를 대표적인 사례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회로기판처럼 핵심 전자 부품의 경우, 새 공급처를 확보하려면 미국 내 인증 절차에만 6~9개월이 소요된다. 제약 산업도 마찬가지다. 충전·포장 공정은 이미 2년 치 일정이 예약돼 있어 미국 내 새로운 생산시설로 옮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글로벌 시험·인증기관 QIMA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수입업체의 80%는 올해 안정적인 물품 조달이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했다. 즉, 공급망을 이론처럼 바꾸는 건 현실에선 선택지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가 아니라, 위기를 빠르게 전달하고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화정책으로 막을 수 없는 실물경제의 균열
CEPR는 관세로 인한 충격에 대해 연준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를 세 가지 조건에서 시뮬레이션했다. 첫 번째는 가격이 즉시 반응해 통화정책의 역할이 사라지는 유연한 시장의 경우, 두 번째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단기간에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는 경우, 마지막은 현재 연준의 대응 방식과 유사하게 가격이 일정 수준 경직돼 있으며, 인플레이션을 점진적으로 통제하려는 현실적인 조건을 반영한 기준 시나리오다.

주: 가격이 즉시 반영되는 경우(검은 점선), 인플레이션 억제하기 위한 금리 급등하는 경우(파란 점선), 일반적인 대응(회색)의 소비 및 물가 변화
물가가 즉시 반응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인플레이션은 억제되지만, 실질임금이 함께 하락하면서 소비 위축이 더 크게 나타난다. 반대로 연준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해 물가 안정을 최우선에 두는 시나리오에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에 수렴하지만, 생산과 소비는 기준 시나리오와 거의 차이가 없다. 세 가지 경로 모두, 금리 조정이 공급망 충격의 시점을 늦추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실물경제 전반의 손실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지선 앞에 선 공급망
현장에서는 이미 물류 흐름에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항의 향후 선박 출항은 35% 줄었고, 중국발 항로는 60% 가까이 감소했다. 고율 관세 도입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국 소매업체들은 1분기 중 물량을 앞당겨 들여왔고, 그 결과 3월 수입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매장과 창고는 이미 가득 찼고, 관세 인상 이후 추가 주문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이제 남은 재고가 바닥나면 발주는 급감하고, 물류·운송·소매업 전반에서 해고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관세로 주요 부품 하나라도 막히면, 물류 인프라는 순식간에 연쇄적으로 마비될 수 있다.
무역을 멈추는 벽 앞에서
145%라는 관세는 단순한 비용 인상이 아니다. 그 수준에 이르면 무역은 흐름을 잃고 멈춘다. 이론적으론 공급망이 탄탄하고 통화정책이 제때 작동하면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속도와 강도의 관세 정책 앞에선, 그런 대응이 효과를 내기 어렵다. 정밀한 정책 설계와 인프라가 함께 작동하지 않는다면, 경제는 버티는 것이 아니라 부러진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단기적인 불안정이 아니다. 공급망이 돌아가느냐 멈추느냐, 그 경계에 선 상황이다.
원문의 저자는 스테판 오레이(Stepane Auray) 국립통계정보분석대학(National School of Statistics and Information Analysis)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ariffs and retaliation: A macroeconomic analysi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