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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2024년 기업경영분석 결과 발표 기업 성장성 및 수익성 전년比 개선됐으나 중소기업·비제조업 중심 적자 난 곳 늘어

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은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취약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소매·부동산업 등 비제조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하회하는 기업 비중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영업적자에 내몰린 좀비기업의 비중도 28%를 넘기며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기업의 전체 매출과 이익은 다소 개선됐지만 누적된 고금리와 내수 부진 여파로 중소기업의 업황 부진이 장기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좀비기업 비중 39.0→40.9%
12일 한국은행의 '2024년 기업경영분석(속보)'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 법인 기업 3만4,167곳 중 40.9%는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자보상비율은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100%에 미달하면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융조차 감당할 수 없는 처지라는 의미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 중 86%가 중소기업이었다. 대기업은 14%에 그쳤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취약한 기업이 늘어나는 양극화가 심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제조업(32.5%)보다는 비제조업(67.5%)이 많았다.
작년 외감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 안정성 지표는 대체로 개선됐다. 매출액증가율은 2023년 -2.0%에서 지난해 4.2%로 전환됐다. 제조업 매출 증가율이 5.2%로 높았다.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전자·영상·통신장비 매출 증가율이 21.6%를 기록한 것이 영향을 줬다. 비제조업도 운수·창고업(12.8%)을 중심으로 매출이 3.0%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5.4%로 1년 전 3.8%에 비해 상승했다. 제조업은 석유정제·코크스와 전기차 등 전기장비 이익률이 줄었지만 반도체 등 이익이 증가해 만회했다. 매출액증가율과 이익률은 2013년 이후 평균 수준으로 나타났다. 부채비율은 102.0%에서 101.9%로, 차입금 의존도는 28.7%에서 28.3%로 각각 감소하면서 안정성 지표도 개선됐다.

심화하는 기업 양극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 비중이 40%를 넘은 것은 지난 2013년 통계 편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8년 이후 35% 안팎의 비중이 유지되다가 지난 2023년 39.0%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비중이 또 늘어났다. 이자보상비율이 0% 미만으로 영업 적자에 내몰리 기업의 비중도 28.3%로 2023년(27%)에 비해 1.3%p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2013년(20.8%) 이후 역대 최고치다.
반면 이자보상비율이 500% 이상인 우량 기업은 2017년 43.4%에서 지난해 31.1%로 크게 감소했다. 이자보상비율 전체 평균도 2022년 348.6%에서 지난해 191.1%로 급감했다. 무차입기업 역시 2023년 10.5%에서 지난해는 9.3%로 줄었다. 정영호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대기업 중심으로 지표가 좋아졌지만, 개별적으로 보면 중소기업 영업이익 증가율이 낮아졌다”며 “도소매업과 부동산업 등 중소 비제조업 쪽 영업이익이 줄어들면서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대한민국 경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극명한 온도 차를 보였다. 대기업은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대의 제조업 생산 기록을 세웠으나, 중소기업은 내수 부진과 고환율의 이중고 속에 역대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 격차는 근로자의 소득 격차로 이어졌다. 대기업은 성과급 등 특별 급여 비중이 높아 실적 호조의 혜택이 임직원들에게 돌아갔지만, 중소기업은 임금 정체와 고용 불안 속에 놓였다. 이는 경제 성장의 혜택이 일부 계층과 대기업에만 집중되는 낙수효과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낙수효과는 대기업 중심의 지원 정책이 전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지만, 그 실효성은 의문이다.
한국 경제 딜레마, 산업·소비까지 양극화 확대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양극화와 저성장이 꼬리를 물고 서로를 심화시키는 '우로보로스의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진단한다. 지난해 하나금융연구소는 '2025년 일반산업전망' 보고서를 내고 올해 핵심 이슈로 '저성장이 불러온 불편한 손님, 양극화'를 꼽았다. 연구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과거보다 심화했는데, 성장 기회가 있는 일부 분야에 자본과 인력이 집중되면서 사회 전반에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산업 부문의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이 집중되고, 내수 중심의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성장이 더디다고 지적했다. 기업 부문은 자동화, 디지털 전환 등 신기술 도입 속도와 활용률 차이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격차가 기업 격차로 이어지는 흐름이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소득 격차, 고령화로 인한 소비 양극화는 금리 인하에 따른 내수 회복의 불씨를 희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등 자산 양극화, 부채 부담, C커머스(중국계 이커머스) 영향력 확대는 고가형과 저가형의 소비시장 양분화를 고착시킬 수 있다는 진단이다. 오유진 연구위원은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경우 전반적인 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저출산 대책 강화, 고른 성장을 위한 중소·중견기업 지원 확대, 신성장 동력 발굴 등 산업·기업 간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