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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용 쇼크, 노동 참여율 붕괴 위기 ‘쉬었음’ 주된 이유 “원하는 일자리 없어서” 실업급여 제도의 역설, 일할 유인 상실

일할 능력이 있지만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마저도 취업은 줄고, 실업은 늘고 있다. 깊어지는 내수 부진과 고물가 장기화,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등 나라 안팎의 경제 여건이 악화하며 고용 시장이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구직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보다 높아 취업 의지를 꺾고 있는 실업급여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경제·비경제활동인구 모두 청년 고용 현실 ‘암울’
24일 통계청의 '빅데이터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온라인 채용 모집 인원 수는 4주 이동 평균 기준으로 2020년 1월 대비 57.9% 감소했다. 이는 5년 전보다 절반 이상 급감한 것으로 통계청이 해당 지표를 제공하기 시작한 2020년 이후 역대 최악에 가까운 수치다. 온라인 채용 모집 인원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빠르게 감소해 2020년 5월 초 대유행 직전보다 25%가량 줄었고 이후 거리두기 규제와 마스크 착용 의무 조정 등에 따라 증감을 반복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채용 모집 인원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 10월에는 2020년 1월 대비 약 40% 감소했다. 이후 연말~연초에도 감소세를 이어가 2월 초에는 4주 이동 평균 69.7% 줄어 역대 최고 감소율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행히 3월부터 본격적인 채용 시즌이 시작되며 감소율은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코로나 시기를 뛰어넘는 채용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업종별로는 사업 지원 서비스업에서 채용 감소가 가장 두드러졌다. 지난달 29일 기준 해당 업종 채용 모집 인원은 2020년 1월 대비 89.4%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서비스(-49.8%), 식료품 및 의류(-35.3%), 오락 스포츠 및 문화(-32.5%)도 채용 모집 인원이 크게 줄면서 고용 한파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채용 수요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던 제조업에서도 모집 인원이 2020년 1월 대비 20.3% 줄어 구직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통계청이 9일 발표한 '2025년 3월 고용동향'에서도 청년 구직 한파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청년층 취업자 수는 356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20만6,000명 감소했다. 앞서 2월에는 -23만5,000명을 기록하면서 2021년 1월(-31만4,000명) 이후 약 4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이보다 감소폭이 완화됐지만, 여전히 20만 명대 마이너스를 유지했다.
한은 총재 “韓 경제,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는 중”
전문가들은 내수 시장 침체를 취업 한파의 주요인으로 보고 있다. 업황 악화로 인해 청년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 연차총회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경제의 핵심 키워드를 ‘불확실성’으로 꼽았다. 무역 긴장이 심화하고 있고, 경제 성장의 하방 위험이 커졌으며, 금융 시장 측면의 변동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지난 1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금리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후에 방향을 결정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는 느낌”이라며 “이럴 때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눈이 (어두움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경기 급랭에 대한 경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KDI는 올 들어 내리 넉 달째 ‘경기 하방 압력 확대’라는 표현으로 경기 둔화 진단을 내렸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여파로 빚어지고 있는 주식 환율 등 금융시장의 혼란을 보면 국내 경기 침체는 이제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실업급여 반복수급, 청년층 구직의욕 꺾어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실업급여 제도도 쉬는 청년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은 1조510억원으로 두 달 연속 1조원을 넘어섰다. 전년 동기 대비 8.4% 증가한 수치로, 월 기준으로는 코로나19 충격파가 덮쳤던 2021년 이후 최대치다. 실업급여 수급자도 69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반면 같은 시기 전체 고용보험 상시가입자(취업자)는 1,543만5,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역시 통계를 작성한 1998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실업급여는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진 근로자를 보호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사회 안전망이다. 그러나 본래 취지와 달리 남용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서울관악고용센터 소속 김시형 주무관에 따르면 해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월급을 받으며 일하면서도 실업급여를 받는 부정수급도 증가하고 있다. 현지에서 취업 후 취업 신고하지 않고 실업급여를 받아도 고용노동부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직장을 구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를 반복적으로 수령하는 실업급여 중독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실업급여는 원칙적으로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전제로 지급되지만, 이를 형식적으로만 수행하고 실질적으로 일할 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일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다 보니, 실업급여가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는 ‘무한 복지’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김 주무관은 “실업급여는 취업할 때까지 실질적인 ‘생계 안전’을 위해 지급되는 돈인데 현행 제도는 청년층의 구직 의향을 없애고 있다”며 “이런 게 대표적인 세금 낭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