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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본 노골적 ‘한국 기업사냥’, 시장 잠식·기술 유출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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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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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기업 특허 및 판매망 확보가 목적
미국 생산시설 갖춘 업체 주요 타깃
기술 중심 中 경제 구조조정과 일치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중국 자본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예고하며 수출에 차질이 예상되자, 이를 우회할 생산기지로 한국 기업을 점찍은 모양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점점 더 거세게 일고 있어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또한 짙어지는 양상이다.

발길 뜸한 M&A 시장, 중국 자본은 꾸준히 탐색전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개된 CJ제일제당 그린바이오 사업 매각전에 중국 매화그룹과 광신그룹이 유력 인수 후보로 부상했다. 애초 국내 독립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인수할 것이란 시각도 있었지만, MBK는 홈플러스 기업회생(법정관리) 개시와 관련한 책임론에 휩싸이면서 사실상 모든 투자가 중단된 상태다.

중국 업체들은 CJ제일제당이 미국 아이오와주에 구축한 그린바이오 생산설비를 탐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 세계 그린바이오 업체 중 미국 현지 설비를 갖춘 곳은 CJ제일제당이 유일하다. 미국 외에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바이오 생산시설을 두고 있어 지역별 수요 변화에 맞춰 공급망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HS효성첨단소재 타이어 스틸코드 매각전도 주요 격전지다. 업계에 의하면 최근 진행된 HS효성 타이어 스틸 예비입찰에는 10곳 이상의 글로벌 PEF와 철강사 등이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특히 중국 대형 철강사의 경우 가장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내수 건설경기 부진과 미국의 관세 폭탄이라는 이중고를 벗어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에스테틱 기기 제조 업체 클래시스 입찰에서는 대부분 인수 후보가 발을 뺀 가운데 중국계 PEF 힐하우스캐피털이 꾸준한 인수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클래시스가 보유한 특허와 해외 판매망 등을 겨냥한 행보다. 이 외에도 신세계그룹은 G마켓에 대한 대규모 손상차손 반영을 피하고자 알리바바그룹과 전자상거래 합작법인 출범을 결정했고,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중국 진출을 위해 안타스포츠와 손을 맞잡았다.

중국 자본의 한국 기업 인수 및 투자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례로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징둥팡(BOE)을 꼽을 수 있다. BOE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들의 하청 업체에 불과했지만, 2002년 한국 현대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자회사 하이디스를 인수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BOE는 하이디스로부터 습득한 기술을 이용해 2003년 6월 LCD 생산을 시작했고, 마침내 2017년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전 세계 대형 LCD 패널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핵심 기술을 빼앗긴 하이디스는 정확히 4년 반에 부도처리 됐으며, 2008년에는 대만 영풍그룹(E-ink)에 팔렸다.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제조업에서 손을 뗀 하이디스는 특허 장사만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중국 거대 자본의 적극적인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 성장을 위한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 자본 활용은 필수지만, 기술 유출과 임직원 반발 등 각종 부작용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한국 기업 인수 시도 배경을 잘 파악해 좀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도록 하고, 만약 매각하더라도 일부 지분은 남겨 기존 기업과의 고리를 유지하는 방안 등이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술 탈취 후엔 기존 인력 내보내기

중국의 노골적인 반도체 굴기도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짙게 만드는 요소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2014년 1,387억 위안(약 26조7,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육성 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이후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2019년에는 2,042억 위안(39조3,000억원) 규모로 펀드 규모를 키웠다. 이렇게 조성된 거대 자금이 한국 투자와 기업 인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특히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일대에서 R&D(연구개발)를 전개 중인 중국계 기업은 지난해 기준 최소 5곳 이상으로 파악됐다. 중국 시안(XIAN)시를 지칭하는 영문 사명을 기재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A사, 홍콩 본점의 해외 영업소로 등기한 B사 등이다. 이들 기업은 등기부등본에 한국 내 제품 판매와 마케팅을 영위한다고 기재했지만, 실제로는 아날로그 회로 엔지니어 등 설계 인력을 대거 충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선 이 같은 사례들이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계 업체들 대부분이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는 만큼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경향도 짙으며, 이 과정에서 영업비밀 침해나 기술 유출 등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직 과정에서 엔지니어가 과거 몸담은 기업의 기술 자료를 반출하는 경우도 빈번해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IT업계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는 중국 최대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업체인 왕쑤커지(차이나넷센터)에 인수된 우리 기업 씨디네트웍스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씨디네트웍스는 2000년 5월 한국 회사로 출발해 2011년 일본 이동통신사 KDDI에 인수됐다. 이후 2017년에는 왕쑤커지로 적을 옮겼다.

씨디네트웍스 노조는 KDDI가 소유했을 때만 해도 투자와 운영이 독립적으로 이뤄져 기술 유출 우려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는 본격적인 ‘물갈이’가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왕쑤커지는 씨디네트웍스의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이전하고, 전 세계에 포진한 직원들을 감원한 이후 그 자리를 중국인으로 채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씨디네트웍스 한국 직원은 왕쑤커지 인수 전인 2016년 248명에서 2023년 기준 55명으로 크게 줄었다.

기술 선진국과 협력 강화

산업계에서는 중국 자본이 한국 기업과 동행하려는 움직임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갈수록 그 강도를 높이는 만큼 첨단산업에서 우수한 기술력과 인프라를 자랑하는 한국을 공급망으로 활용할 것이란 추측이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중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421건으로 투자액은 29억9,000만 달러(약 4조3,800억원)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반도체와 이차전지가 80% 이상을 차지했다.

이런 공격적 투자 행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시한 경제 구조조정 방향과도 일치한다. 시 주석 체제에서 중국은 기존의 굴뚝산업을 정리하고 금융, 첨단기술,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경제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버나드 아우 IG아시아 투자전략가는 “한국은 중국과 거리도 가깝고 기술력까지 갖춰 중국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며 “중국으로선 자금사정도 넉넉한 만큼 적극적으로 M&A에 나설 환경이 충분히 갖춰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 또한 ‘미·중 갈등과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및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자체적 원천기술 개발 노력과 함께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기술 선진국과 협력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중국으로서는 현재 자국의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자체 기술개발과 함께 국제 협력을 강화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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