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주주 반발 뚫은 SK오션플랜트 매각, 새 주인은 강덕수 전 STX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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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인수 후 4년 만에 매각
2대 주주 반대 기류로 협상 장기화
시장 전망 불투명, 수익성 논란 지속

SK에코플랜트가 자회사 오션플랜트 지분 매각을 확정하며 장기간 표류하던 거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간 창업주 일가가 2대 주주로 남아 저가 매각을 거부하면서 협상이 지연됐으나, 이해관계 조율이 진전되며 매각 성사에 한 걸음 다가선 모습이다. 우선협상대상자는 STX그룹 해체 이후 재계에서 물러났던 강덕수 전 회장이 세운 디오션자산운용으로, 강 전 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 또한 가시화됐다.
업황 변동성에 실적 부침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오션플랜트는 전날 최대주주 지분매각 관련 우선협상대상자로 디오션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상은 최대 주주인 SK에코플랜트가 보유한 지분 37.6%로, 거래 규모는 4,400억원가량이 될 전망이다. 이번 매각으로 SK오션플랜트는 2021년 SK그룹에 편입된 지 불과 4년 만에 새로운 주인을 맞게 됐다.
SK오션플랜트는 1996년 설립된 삼강엠앤티가 모태인 해상풍력·해양 전문기업이다. 해상풍력 하부 구조물을 비롯해 특수선 건조, 강관 제작, 선박 수리·개조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으나, 업황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선 한계를 안고 있었다. 실제로 2023년에는 매출 9,258억원과 영업이익 756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6,620억원, 영업이익 415억원으로 급감하며 실적 부침을 겪기도 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디오션자산운용은 지난해 설립된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사실상 경영 복귀를 선언하며 설립한 회사로 주목을 끈다. STX그룹은 2000년대 초반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급성장했으나, 2010년대 초반 글로벌 금융위기와 구조적 문제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강 전 회장은 이후 분식회계와 배임 혐의로 사법 리스크를 겪었지만, 최근 취업 제한이 해제되면서 다시 투자업계 전면에 나서게 됐다.
IB 업계에선 이번 매각이 SK그룹 사업 재편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단 평이 지배적이다. ESG·신재생 사업 강화를 위해 편입했던 SK오션플랜트가 결국 ‘계륵’으로 전락하면서 매각이 추진됐고, 마침 강 전 회장이 이끄는 디오션 측이 이를 인수하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해석이다. 결과적으로 SK그룹은 이번 매각으로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게 됐고, 디오션 측에선 강 전 회장의 경영활동 재도전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20% 지분 쥔 2대 주주 “급할 이유 없어”
시장에서는 SK오션플랜트 매각 협상이 애초 예상했던 시점보다 늦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매각 지연의 배경에는 2대 주주인 창업주 일가의 강한 반발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SK에코플랜트는 지분 37.6%를 확보하며 오션플랜트의 최대 주주가 됐지만, 송무석 전 삼강엠앤티 대표와 그의 동생인 송정석 삼강금속 회장 등 창업주 일가가 여전히 20.73%의 지분을 쥔 2대 주주로 남았다.
문제는 양측 사이에 동반매각요구권(드래그얼롱)이나 동반매각참여권(태그얼롱) 같은 보호 장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2대 주주가 매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SK 측에선 자사가 확보한 37.6%의 지분만 따로 매각해야 한다. 이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인수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SK 측이 통매각을 고집하는 동안 협상은 수개월간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애초 SK가 희망한 가격은 약 5,000억원으로, 시가총액 약 1조1,000억 원의 37% 상당 지분가치에 경영권 프리미엄 20%를 더한 수준이다. 하지만 송 전 대표 형제는 이 정도 금액으로는 지분을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미 2021년 SK에 경영권을 넘기며 상당한 현금을 확보한 상황에서 급한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에서도 2대 주주는 사실상 현금화를 끝낸 만큼 매각이 급한 쪽은 SK에코플랜트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상황이 장기화 국면을 지나면서 SK에코플랜트 내부의 압박도 더욱 커졌다. IPO를 앞두고 재무 건전성 확보가 절실한 만큼 자회사 매각을 통한 현금 유동성 확보가 시급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SK에코플랜트는 환경 계열사 리뉴원·리뉴어스 매각을 병행하며 포트폴리오 조정을 서둘렀지만, 핵심 계열사인 SK오션플랜트 매각이 표류하면 기업 가치 평가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이번 매각전을 통해 드러난 SK그룹 계열사 전반의 지배구조 한계와 협상 리스크가 향후 비슷한 거래에서도 참고 사례로 활용될 것이라는 데 관측이 일치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가 반도체·친환경 중심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새”라고 진단하며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창업주와의 갈등을 봉합한 전례를 남긴 만큼 향후 기업 재편 방식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수주 부진에 시장 불확실성 여전
SK에코플랜트 입장에서 오션플랜트는 아쉬움이 큰 자산으로 평가된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등을 포함해 4,000억원 이상이 투입됐지만 순이익은 인수 금액을 소폭 웃도는 데 그친 탓이다. 그나마 꾸준하던 순이익도 2023년 575억원에서 지난해 169억원으로 70% 이상 급감하면서 실질적인 투자 회수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결국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 과정에서 해상풍력 사업은 ‘정리 대상’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내수 매출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글로벌 수주 역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인수 주체인 강 전 회장의 행보다. 조선·해운·에너지 산업에서 한때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구사했다가 금융위기의 역풍을 맞은 그는 이번 인수를 계기로 다시 시장 복귀를 알렸다. 이에 업계에선 강 전 회장이 과거 구조조정 경험을 살려 해상풍력·조선 기반 자산을 재편하거나 새로운 시너지를 도모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강 전 회장이 다시 해양 산업에 발을 들인 것은 단순 재무적 투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만큼 중장기 해외 프로젝트 연계 등 기회가 열릴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해상풍력 업황 전반의 침체는 여전한 부담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경기 둔화, 공급망 불안, 원자재 가격 변동 등이 겹치면서 신규 수주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SK오션플랜트의 매각은 재무 안정성 확보와 투자자의 과감한 베팅이 맞물린 결과”라면서도 “사업 본질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계륵’이 될지, 아니면 재도약의 발판이 될지는 향후 시장 회복과 강 전 회장의 경영 전략에 달려 있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