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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조이기 나선 정부, 주담대 한도 제한 등 규제책 쏟아내 서울·지방 부동산 시장 양극화 심화 우려 악순환 끊어내려면 지방 다주택자 규제 완화해야

올해 하반기 전국 부동산 시장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인해 마포구·성동구 등 서울 일부 지역 집값이 출렁이고, 지방 지역과 수도권 지역의 집값 양극화 현상이 한층 심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지방 부동산을 부양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정부 부동산 규제에 한강 벨트 '비상'
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새 정부의 첫 대출 규제로 인해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수도권 지역 주택담보대출 최고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고, 갭투자가 사실상 막히며 주택 매매 수요가 일순간 얼어붙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등 부동산 규제로 묶여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수도권 전역이 규제 대상이 된 만큼, 소위 '한강 벨트'로 묶이는 마포구와 성동구 등이 막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하반기 집값은 강력한 부동산 대출 규제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며 “강남권과 마포, 용산, 성동구 등 한강 벨트 지역의 집값이 조정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지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소득이 높아 소득과 주담대를 합쳐 집을 샀던 사람들이 많이 유입됐던 곳이 마포, 동작, 강동 등의 지역”이라며 “이 지역의 수요와 집값이 하반기에 제일 타격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대출 규제 정책으로) 수도권 공급 부족 등의 이유로 과열 확산하고 있는 주택 시장의 방향성이 바뀔 것”이라며 “수도권 부동산 과열 조짐을 명확히 차단하려는 정부의 시그널(신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한강 벨트는 주담대 한도 규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지역이다.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시세는 14억6,000만원 선이다. 비규제지역에 담보인정비율(LTV) 70%,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규제 지역에 LTV 50%를 적용하고 자치구별 아파트 평균 시세를 반영해 추산하면, 규제 이후 서초구의 대출 감소액은 9억9,764만원에 달한다. 이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큰 규모다. 아울러 △강남구(9억2,634만원) △용산구(5억6,787만원) △성동구(5억4,783만원) △송파구(4억8,684만원) △마포구(4억3,896만원) △강동구(3억2,685만원) △동작구(3억2,150만원) 등도 3억~9억원 범위에서 대출 가능액이 감소한다.
부동산 양극화 빨라지나
일각에서는 대출 규제의 영향으로 집값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양지영 전문위원은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강력한 규제책이 나왔는데, 시장에서는 앞으로도 (규제가) 더 나올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겨 관망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초양극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특히 강남 3구의 집은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일정 부분 현금이 없으면 살 수 없었는데 앞으로는 이런 경향이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흐름은 이미 양극화가 심각했던 국내 부동산 시장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상위 20% 아파트(5분위)와 하위 20% 아파트(1분위)의 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은 11.9배로 조사됐다. 이는 2008년 12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최대치다. 같은 기간 서울 상위 20%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31억4,419만원으로 처음으로 31억원을 넘었고, 하위 20% 아파트 평균가는 4억9,085만원이었다.
우리나라의 집값 양극화 상황은 여타 주요국과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8일 ‘주택시장 양극화의 경제적 영향’ 자료를 발표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서울과 지방 간 주택 가격 차이가 주요국에 비해 더 크게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한은이 서울 등 주요 도시 주택 가격과 전국 주택 가격의 누적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서울과 전국 간 주택 가격 상승폭 격차(2013년 12월~2025년 5월)는 69.4%P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49.8%P), 일본(28.1%P), 캐나다(24.5%P) 등 주요국들이 기록한 격차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지방 부동산 가라앉은 이유는?
집값 양극화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지방 부동산 시장을 적극적으로 부양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방 시장은 미분양 물량 증가세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5년 5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전국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5월 말 기준 전국 2만7,013가구로 전월 대비 2.2% 늘었다. 이는 2013년 6월(2만7,194가구) 이후 11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이며, 이 중 82.9%가 지방에 몰려 있다.
지방 악성 미분양 매물이 누적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다주택자 규제가 꼽힌다. 현재 2주택자는 부동산 구입 시 납부하는 취득세, 부동산 보유 중 내야 하는 종합부동산세, 매매 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생애 주기 전반에서 세금을 중과 받고 있다. 이에 다주택자들은 줄줄이 지방 소재 주택을 정리하고, 서울 주요 상급지로 몰려들어 ‘똘똘한 한 채’ 매수에 열중하는 추세다. 사실상 지방 아파트에 투자 수요 등이 유입되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물론 현시점에도 지방 부동산에 대한 세금 중과 완화 조치는 가동되고 있다. 지방 저가 주택을 보유한 일부 집주인들은 취득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종부세 납부 시 1가구 1주택 특례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감세 혜택이 제공되는 주택 가격 기준이다. 취득세 혜택은 공시가 기준 2억원 이하, 종부세 혜택은 4억원 이하 지방 주택 소유자에게만 돌아간다. 실질적인 시장 부양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한참 모자란 금액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애매한 감세 혜택만으로 가라앉은 시장을 부양하는 것은 어렵다"며 "종부세 가구 합산 금액 기준 개편, 다주택자에 대한 공제 기준 한도 상향 등 보다 적극적인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