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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복수 언어’, 무역 발전 견인 ‘언어 교육 및 번역 노력’의 소산 단일 언어 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복수 언어를 국가 관리상의 부담으로 여기지만 스위스는 이를 무역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인접국들과 상대방 언어로 교역할 수 있는 스위스의 역량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헌법에 규정된 다언어주의(multilingualism)에 따라 복수 언어를 교육과 정부 조직, 상업 거래에 내재화한 노력 때문이다. 스위스가 수많은 격변 속에서도 국내총생산(GDP)의 8%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원동력도 이것이다.

스위스, ‘복수 언어’로 해외 시장 확장
그러므로 이는 문화적 사치가 아니라 경제 논리에 의한 것이다. 단일 언어 사용(monolingualism)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국내 시장을 해외로 자연스럽게 확장해 무역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룻밤 사이에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할 수도 있는 세상에서 고객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보험이다.
19세기 이론가들이 국가적 단결과 단일 언어를 동일시할 때부터 스위스는 다른 길을 걸어 성공했다. 스위스의 작년 수출은 GDP의 66%로 프랑스 수출 비중의 두 배에 달한다. 언어가 통하는 주변국과의 무역 규모만 1,000억 스위스 프랑(약 168조원)으로 룩셈부르크 GDP보다 많다.
스위스의 복수 언어는 국내 시장을 단절하기보다는 스위스 기업들이 해외 파트너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돕는다. 정부 관계자는 주변국과의 무역 거래가 1/5만 사라졌어도 그간의 경기 변동을 거치며 스위스의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번역 비용 대비 ‘수출 증대 효과’ 37배
스위스 연방 정부가 번역과 통역을 위해 사용하는 예산은 4,000만 스위스 프랑(약 673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0.05%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는 수출 증대 효과는 연간 150억 스위스 프랑(약 25조원)으로 번역 비용의 37배에 달한다.

주: 통역 및 번역 비용(좌측), 총 연방 지출(우측)
또한 법적 명료성(legal clarity)이라는 추가적인 장점까지 있다. 4개 언어로 기술되는 스위스 법은 해석상의 혼동을 최소화해 소송 건수를 줄이고 규칙 제정을 용이하게 한다.
최근 미국이 사치품 관세(luxury tariffs)를 시행했을 때도 스위스 시계 제조 기업들은 언어에 신경 쓰지 않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목표 시장을 조정할 수 있었다. 언어가 준비됐다는 것은 즉시 시장에 적응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그렇게 무역 흐름이 모국어와 연계해 취리히(Zurich)와 바젤(Basel)은 독일 기업들과 거래하고, 보(Vaud)는 프랑스 연구개발 생태계의 도움을 받으며, 티치노(Ticino)는 이탈리아 북부의 산업 중심지와 매끄럽게 연결된다.

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기타, 총수출(좌측부터)
수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들은 언어가 통하는 지역 위주로 물품을 조달해 법무 비용을 줄이고 통관을 앞당긴다. 유럽연합에서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 발생 수입품에 매겨지는 관세 및 부담금)이 발효됐을 때 스위스 기업들은 재빨리 무역 상대국 언어로 배출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혼선을 피할 수 있었다.
단일 언어 정책에 대한 ‘반박 사례’
언어 능력은 명확한 경제적 보상으로 되돌아온다. 복수 언어가 필요한 직업은 보수가 6~8% 더 높다. 스위스 근로자의 38%가 그만큼을 더 버니 가처분소득이 90억 스위스 프랑(약 15조원) 늘어나 지역 수요와 세수를 늘린다.
스위스 국민은 국가 교육 기준에 따라 8세부터 제2 모국어를 배우고 11세에 영어 학습을 시작한다. 졸업 때까지 이수하는 언어 교육 시간이 1,000시간으로 유럽연합(EU) 평균의 4배에 달한다. 이 노력은 나중에 기반 시설 투자보다 나은 수익률로 돌아온다.
스위스의 사례는 상의하달식의 단일 언어 정책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케냐와 가나는 모국어를 폐지한 정책 때문에 문맹률이 오르고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는 폐해를 겪었고 인도의 힌디어 공용어화 정책은 경제적 피해까지 발생시켰다. 반대로 스위스는 지역 언어를 의사소통의 장벽이 아닌 무역의 연결고리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AI 번역이 급속히 보급됐지만 스위스 법은 모든 공식 문서에 대한 인간의 검토를 의무화하고 있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AI가 작성한 문서는 모두 제출 전에 사람이 검사한다. 생산성을 높이되 법적 책임감을 유지하려는 조치다.
그러므로 스위스의 성공은 바벨탑(Babel) 이야기에 대한 현대적 도전이다. 21세기의 무역 장벽은 뒤섞인 언어 때문이 아니라 단일화된 언어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니 단일 언어에 집착하는 국가는 내부에 국경을 쌓는 것과 같다.
원문의 저자는 타마라 구레비치(Tamara Gurevitch)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이코노미스트 외 3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One language, one nation: Language policy and economic integration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