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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투자자 투입자금 회수 도움 정부도 순기능 주목, 활성화 모색 '투자→회수→재투자' 선순환 기대

최근 주요 금융지주 계열 벤처캐피탈(VC)이 잇따라 대형 세컨더리 펀드 결성에 나서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우리벤처파트너스가 산업은행 출자사업 위탁운용사(GP)를 확보하며 하나벤처스를 제외한 모든 금융지주 계열 VC가 1,000억원대 세컨더리 펀드를 운용하게 됐다. 이들은 세컨더리 펀드를 통해 중간회수 시장을 활성화하는 한편 높은 수익률을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금융계 4개 VC, 1,000억대 펀딩
11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KB인베스트먼트는 올 2월 첫 1,000억원대 대형 세컨더리펀드를 결성했다. KB인베스트먼트는 그동안 200억원 미만 소규모 세컨더리 펀드만 운용해 왔다. 지난해 12월 ‘스타트업 코리아 케이비 세컨더리펀드’를 결성한 이후 멀티클로징을 진행해 올초 1,075억원 규모로 최종 클로징했다.
KB국민은행 등 KB금융그룹 계열사가 펀드 결성 금액의 과반 이상을 출자했고 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 출자사업 세컨더리 분야에서 잇따라 위탁운용사(GP) 자격을 따내면서 펀드 규모를 키웠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벤처투자가 주관한 ‘2024 스타트업코리아펀드(스코펀) 출자사업’에서 세컨더리 분야 GP로 선정돼 225억원의 출자금을 확보했다. 이어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성장금융)이 주관한 ‘성장사다리 펀드2’ 출자사업에서도 위벤처스와 함께 세컨더리 분야 GP 자격을 따내 50억원을 추가 확보했다.
우리금융지주 산하 우리벤처파트너스 또한 첫 세컨더리 펀드 결성에 나섰다. 우리벤처파트너스는 올 2월 산업은행의 회수시장 활성화 지원펀드 출자사업 세컨더리 분야에서 TS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최종 GP로 선정됐다. 해당 출자사업에는 7곳의 운용사가 지원해 3.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GP로 선정된 2곳은 산업은행으로부터 300억원씩 출자받아 각각 1,000억원 이상의 펀드를 결성하게 된다.
신한금융그룹 계열사 신한벤처투자는 2002년 국내 VC 중 최초로 세컨더리 펀드를 결성한 세컨더리 투자 전통 강호다. 1~2년 간격으로 세컨더리 펀드 조성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하우스의 다섯 번째 세컨더리 펀드인 ‘마켓프론티어투자조합 3호’를 1,000억원 규모로 결성하는 등 세컨더리 투자를 활발하게 이어 나가는 중이다. 벤처투자회사 전자공시에 따르면 신한벤처투자가 현재 운용 중인 17개 펀드 중 4개가 세컨더리 펀드다. 세컨더리 펀드 운용 총액은 3,036억원으로 전체 운용자산(AUM) 1조7,500억원의 17%에 달한다.
세컨더리 펀드 출자사업 내놓는 LP 늘어
국내에서는 이제 막 움트는 단계지만 글로벌 세컨더리 펀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말 기준 전체 글로벌 대체 투자펀드 중 세컨더리 펀드는 약 8%를 차지했다. 펀드 모집액은 30억 달러(약 4조2,500억원) 수준으로 20년간 7배 이상 커진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는 군인공제회가 세컨더리 부문을 신설하면서 세컨더리 펀드에 대한 투자사들의 관심이 움트기 시작했다. 군인공제회는 2023년 말 국내 블라인드펀드 세컨더리 분야에 IMM인베스트먼트와 DSC인베스트먼트를 공동 선정해 각각 200억원을 출자했다. 이에 IMM인베는 지난해 1200억원 규모의 세컨더리 펀드인 IMM세컨더 리제6호를 결성했다.
산업은행 역시 세컨더리 분야 펀드출자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연말 인수·합병(M&A)과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를 위한 펀드출자사업을 공고했다. 세컨더리 부문에서는 위탁운용사(GP) 2곳에 600억원을 출자하고, 2,000억원 규모 자펀드를 조성했다.

유망 기업들 저가매수 기회
세컨더리 펀드는 기존 VC 펀드나 금융기관들이 보유한 포트폴리오를 장외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수하는 투자 전략을 구사한다.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되고 VC 펀드들이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어려움을 겪자 투자업계에서는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세컨더리 펀드에 집중하는 추세다. 벤처 투자 위축으로 스타트업 기업가치가 낮아진 가운데 구주 인수를 목적으로 하는 세컨더리 펀드도 늘고 있다.
벤처투자회사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결성된 세컨더리 펀드는 6,881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5,774억원을 넘어선 규모다. 세컨더리 펀드는 2020년 1,379억원에 그쳤지만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저금리로 유동성이 늘어나며 4,315억원으로 증가했다. 투자 활황으로 스타트업 기업가치가 치솟고 구주 가격이 비싸진 2022년에는 3,638억원으로 주춤했다가 2023년과 지난해에 걸쳐 지속 증가하고 있다.
세컨더리 펀드는 침체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VC는 보통 투자 스타트업의 IPO나 M&A 과정에서 구주를 매각하고 자금을 회수한다. 하지만 국내 증시 불황 등으로 IPO와 M&A 시장은 모두 침체된 상황이다. 벤처 투자 펀드는 만기를 연장하지 않으면 대부분 6~8년 내 엑시트를 해야 하는 만큼 세컨더리 펀드를 통한 주식 매각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 펀드는 8조3,867억원 규모다.
특히 신규 투자자에 있어 세컨더리 펀드는 경쟁력 있는 기업의 주식을 싼값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두나무가 운영하는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 다수 스타트업의 주식 가격은 최근 2년 사이 크게 내렸다. 특히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플랫폼·이커머스 기업의 기업가치 하락 현상이 두드러진다. 대형 스타트업의 주식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은 세컨더리 펀드 운용 VC에는 저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에 정부도 모태펀드 출자사업에서 결성액의 최대 20%까지 구주 매입을 주목적 투자로 인정하는 등 관련 정책을 확대 중이다. 정부의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성장금융과 산업은행 또한 세컨더리 펀드 출자를 확대했고, 펀드레이징 역량을 갖춘 VC가 펀드 결성의 기회를 잡았다. 특히 금융지주 계열 VC는 모회사의 출자 지원을 업고 최소 결성액 1,000억원 이상인 출자사업에 지원해 잇따라 승전고를 울렸다. 이들 VC는 세컨더리 펀드 운용을 통해 우량 구주를 발굴하고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