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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총재 금리 인상 의지 표명
연말~내년 초 1.0% 예상 시나리오
국채 시장 신뢰도 저하는 변수로

일본은행 총재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으며 30년 만의 긴축 사이클에 대한 기대가 일본 금융시장을 뒤덮는 모습이다. 그간 디플레이션 고착과 저성장에 묶여 있던 일본은 물가 반등과 환율 변화에 힘입어 금리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장기국채 수요 위축과 미국발 관세 충격이라는 복합 변수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과의 신뢰 조율이 관건이 될 이번 사이클로 일본 금융당국의 정책적 역량 또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정책 정상화 여건 확보’ 기대 커져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은행이 국내외 경제학자와 중앙은행 관계자를 초청해 도쿄에서 개최한 행사에 참석해 “일본 소비자물가가 쌀 등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다시 오르는 추세”라며 “기조적 물가상승률이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이 실현된다는 것을 전제로 정책금리를 올려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내부에서는 이번 우에다 총재의 발언을 매우 상징적인 전환점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1990년대부터 이어진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은 일본 경제를 묶어두는 족쇄로 작용했고,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완화는 거의 ‘체념에 가까운 처방’으로 작동해 온 탓이다. 하지만 최근 물가가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일본도 드디어 정책 정상화에 나설 여건을 확보했다는 기대가 커지는 모습이다. 특히 금리 정상화는 해외로 빠져나간 일본 자본이 다시 유턴할 수 있는 환경과도 맞닿아 있어 자본시장과 외환시장 모두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다만 우에다 총재는 구체적인 금리 인상 시점과 폭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은 전망 기간 후반에 2%로 점차 수렴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미국의 관세 조치 등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진 만큼 신중하게 정책을 판단하고 통화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충격 우려에도 금리 인상 시그널 계속
일본은행은 지난해 3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7년 만에 금리를 올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고, 이어 작년 7월에도 금리를 올리며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 탈피를 시도했다. 올해는 1월 회의에서 연 0.5%로 금리를 상향 조정한 후 지금까지 같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이러한 점진적 인상 기조는 명확한 시나리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 내 금융시장과 정부 당국은 이미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1.0%까지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공유하고 있으며, 약 6개월 주기로 소폭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시나리오를 하나둘 현실로 옮기고 있다.
그러나 변수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이 아시아 국가 전반의 수출 전망을 뒤흔드는 가운데, 일본 역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서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자동차와 반도체, 기계 산업은 미국발 관세 영향권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일본의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본은행 입장에서는 금리 인상이라는 정책 카드를 지속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실물 경제 지표의 뒷받침이 필요한 셈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물가 목표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한 배경이 눈에 띈다. ‘성장률이 크게 꺾이지만 않는다면,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의지를 시장에 분명히 전달하려는 의도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 내에서는 “현실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야심 찬 정책 기획”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책 시계가 중단 없는 정상화에 고정돼 있다”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기 부양보다는 ‘정상화’에 무게를 둔 일본은행의 정책 기조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향후 글로벌 통상 환경 또한 우호적으로 전개돼야 한다는 의미다.

장기채 시장 이상 신호, 금리 인상 여건 ‘흔들’
또 다른 변수는 장기국채 시장의 부진이다. 최근 20년물 국채 입찰률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사실상 ‘유찰’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이는 장기 금리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극명히 드러내는 것은 물론, 중앙은행이 조정하려는 금리 정책과 시장이 체감하는 금리의 간극이 점차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처럼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는 장기물 금리도 동반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수요가 줄면서 금리가 지나치게 급등하는 것은 일본의 재정 안정성이나 시장의 신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에는 일본 내 주요 보험사·연금펀드 등 대표적인 장기채권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서면서 장기물 수요 자체가 감소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이는 수급 문제를 넘어 일본 자금시장 내 위험 선호 성향이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려도 장기채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장기금리가 의도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거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다시 자금조달 비용 증가와 공공채무 부담 심화, 민간투자 위축 등 연쇄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일본은행이 금리를 조정할 때 시장과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에다 총재가 “예단은 금물”이라는 신중론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표면적인 경제 지표를 기다리는 것을 넘어 시장이 체화할 수 있는 속도로만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일본 내 경제학계에서 중앙은행의 신중한 대응을 “심리적 전환점 조율”로 정의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