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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억 달러 투자, 컨테이너 사업 확장 박차 SK해운 인수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안 그래도 덩치 큰데" 재매각 난항 우려

SK해운의 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HMM이 사업 강화를 위한 투자를 단행한다. 컨테이너선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를 벌크선, LPG선 등으로 다각화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업 가치가 커지면서 민영화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지분 확대에 더해 운임 하락세까지 겹치며, HMM의 대형 투자 결정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SK해운 인수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MM 컨테이너 사업부 이정엽 총괄 부사장은 전날 글로벌 조선·해운 전문지 트레이드윈즈와의 인터뷰에서 "SK해운 인수를 추진하면서 선단을 약 50% 확장하고, 컨테이너선 사업 강화를 위해 135억 달러(약 19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해 신조선 발주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SK해운 인수는 SK해운이 정기 컨테이너선 사업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유조선과 벌크선을 포함한다"며 이번 투자를 통해 컨테이너 해운 사업을 한층 강화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앞서 HMM은 지난 2월 SK해운의 사업부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SK해운 현 소유주인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한앤코)와 자문사 모건스탠리는 SK해운 사업부를 매각하기 위해 HMM과 단독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매각 대상으로는 SK해운 소유 선박과 일부 영업권이 거론되고 있다. 2014년 현대상선 시절 액화천연가스(LNG)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겸업 금지 조항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2029년까지 효력이 유지돼 SK해운의 LNG 사업부는 이번 인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2018년 SK해운 경영권을 사들인 한앤코는 2023년부터 유조선(탱커선) 사업부 분할 매각을 시도해 왔다. SK해운은 원유선 22척, LPG선 14척, 벌크선 10척 등을 운용하고 있다. SK해운 전체 몸값은 4조원대로 추정되는데 HMM은 이번 인수 가격을 2조원대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HMM이 SK해운 인수를 검토한 건 지난해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예고하면서 글로벌 경기 불황에 따른 컨테이너선 운임 하락 국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벌크선은 화주와 장기 계약을 맺는 특성상 불황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HMM 민영화 '오리무중'
다만 시장에서는 SK해운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HMM의 몸집이 더욱 커지면서 향후 매각 작업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HMM은 지난해 2월 우협으로 선정된 하림그룹과의 협상이 최종 결렬돼 매각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다. 하림과 함께 인수전에 뛰어든 동원그룹 역시 HMM보다 덩치가 작아 ‘승자의 저주’ 우려가 컸다.
그나마 현대차, 포스코, 한화 등 현금이 넉넉한 대기업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만 막상 이들 그룹이 인수전에 뛰어들기는 녹록지 않다. 해운업 특성상 국가 수출과 직결되다 보니 정부 입김이 거센 데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수조원에 달하는 몸값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HMM 시가총액은 16조원 안팎으로, 지난해 하림그룹이 제시한 가격(6조4,000억원) 대비 무려 10조원가량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SK해운 인수로 HMM의 기업가치가 더 높아지면 인수를 희망하는 원매자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
지난해 2,000선을 웃돌았던 글로벌 컨테이너 운임이 올해 들어 급락하고 있는 점도 변수다. 글로벌 해상운송 운임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해 1분기 기준 1,761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12%, 전 분기 대비 22% 하락한 규모다. SCFI가 1,700선으로 떨어진 건 12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산업 관세 도입을 예고하면서 물동량 둔화 우려가 커진 탓이 크다. 이런 가운데 HMM 실적이 다시 고꾸라질 경우 인수 메리트가 떨어져 매각이 더욱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SK해운 부채까지 떠안아야, 더 커진 재매각 부담
또 다른 변수는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지분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초 매각 협상 당시 산은과 해진공이 내놓은 HMM 지분은 57.9%였지만, 지난해 10월 영구채를 주식으로 추가 전환하면서 합산 지분율은 67.05%로 10%포인트가량 높아졌다. 다음 주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 전환사채(CB)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이들 지분은 71.68%까지 늘어난다. 늘어난 지분을 모두 인수하려면 매수자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산은은 이번 인수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2대주주인 해진공의 단독 결정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SK해운 인수로 HMM의 몸값이 오르게 되면 향후 지분 매각 작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HMM이 해운업 호황기에 SK해운을 비싸게 사들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에 따르면 지금은 해운업황의 '고점'이다. 벌크선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해 연말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탱커 운임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공급망 불안으로 벌크선 및 탱커의 가치가 상승한 상황이라 HMM이 시장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치르며 SK해운을 인수하는 배경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업계에서는 한앤코로서는 지금이 가장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는 최적의 매각 시점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SK해운을 보유한 한앤코는 지난 2018년 1조5,000억원에 SK해운을 인수한 후 이번 매각으로 상당한 차익을 기대하고 있다. HMM이 SK해운을 인수할 경우, 한앤코는 2조원 이상의 매각 차익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HMM의 SK해운 인수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피력하며 “SK해운의 부채가 5조8,073억원(2023년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운수창고업 평균의 4배에 달하는 475.4%”라며 “LNG 사업부를 제외한 탱커·LPG 사업부만 인수하더라도 2조원의 매각가에 막대한 부채를 떠안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