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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영향’서 ‘성장 둔화’로, 파월 '고관세' 인식 전환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 점등, 성장-물가 동반 충격 예고 세계 경제에 드리운 관세전쟁 그림자, 미·중 만의 문제 아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高)관세 정책이 물가 인상과 성장 둔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간 파월 의장은 트럼프 관세가 경제에 ‘일시적인’ 영향만 줄 뿐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부과에 따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월가에서는 관세가 글로벌 경제를 침체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파월 의장 "관세로 물가 오르고 성장 둔화"
16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관세 인상 수준은 예상보다 훨씬 높다”며 “관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고, 여기엔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 둔화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특히 “관세는 최소한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 증가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로 인해 미국은 최대 고용·물가 안정의 양대 목표가 서로 긴장 상태에 놓이는 도전적인 시나리오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연준은 최대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기준으로 고용과 성장률이 떨어질 때는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반대로 물가 상승 압력이 발생할 경우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조정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적인 관세 정책으로 인해 그간 연준이 금리를 활용해 성장과 물가 간의 균형을 맞춰온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말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이와 관련해 “우리의 도구(기준금리 변경)는 같은 시점에 두 개(고용과 물가) 중 하나만 할 수 있다”며 “관세가 올해 내내 연준의 목표 달성에서 더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 우리는 정책 입장에 대한 어떤 조정을 고려하기 전에 더 많은 명확성을 기다리는 게 나은 상황”이라며 기준금리 인하 등을 당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또 파월 의장은 "관세로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에 직면하고 경제가 더 높은 실업률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중앙은행이 물가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금리를 어떻게 조정하든 실업률을 악화시킬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중앙은행에 어려운 시나리오를 초래할 것이다. 중앙은행이 뭘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美 기업 타격 불가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략은 강력한 압박을 통해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미국이 원하는 양보를 얻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들이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47년 3.1%에서 지난해 13.9%로 네 배 이상 확대됐다. 애플, 나이키 등 미국 대표 기업이 생산기지를 노동력이 저렴한 중국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면서 수입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 속 중국산 제품에 부과된 고율 관세로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 가구, 의류 등의 가격이 급등했고, 기업들의 운영 비용도 크게 증가했다. 특히 많은 중소기업들은 정리 해고나 사업 축소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고율 관세 영향에 따른 물가 급등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를 키우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관세 부과로 지난 2월 2.5%이던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전년 대비)이 연말 4.7%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연말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반영하는 1년 만기 인플레이션 스왑도 3년여 만에 최고치인 3.5%까지 치솟았다. JP모건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3%에서 마이너스 0.3%로 1.6%p나 낮춰 잡았다.
2027년 세계 GDP 0.6% 손실, 글로벌 경제 파급 우려
중국 역시 이번 무역 전쟁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이 시장에서의 퇴출은 중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미 내수 소비 부진과 부동산 시장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수출마저 감소하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HSBC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무역 전쟁으로 중국 경제 성장률은 최소 1.5~2% 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 큰 문제는 미중 갈등이 지속될 경우 전 세계 공급망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세계 경제 성장률이 둔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중 양국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들이 이미 수출 감소와 투자 위축의 부작용을 겪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취하고 있는 강경 일변도의 접근법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더 큰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블룸버그의 시나리오 모델에 따르면 트럼프의 관세가 유지되고 각국이 절반 규모로 보복할 경우, 오는 2030년까지 미국의 수입은 현재보다 30%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역시 미국으로의 수출이 85% 감소하며, 일본과 국내의 대미 수출량 또한 50% 이상 줄어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가 세계 질서에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트럼프 대통령 본인뿐만 아니라 참모들까지 관세를 국가 안보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여파로 미국과 중국만이 아닌 글로벌 무역 체계 전반이 충격을 겪을 수 있으며, 이러한 결과가 향후 수년간 세계 경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세계 경제 GDP는 미국의 각종 관세로 인해 2027년에 0.6% 하락할 전망이다. 전체 127조 달러(약 18경원)의 GDP 중 7,630억 달러가 증발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