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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위험 현실화에 기업회생 절차 신청 부채 탕감 위해 선제적 조치 결정 메리츠證 리파이낸싱 당시 부동산 담보 잡아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시작한 가운데, 홈플러스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와 주 채권자 메리츠금융그룹 간 협상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메리츠는 홈플러스에 대한 금융권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업계에서는 MBK가 메리츠에 대한 대출금리를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 주시하는 모양새다. 현재 메리츠는 금리 인하, 원리금 상환 만기 연장 등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담보인정비율(LTV)이 25%에 불과하다는 점은 메리츠에 유리한 카드로 작용할 전망이다. 어차피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만큼 채무 조정에서 협상력을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달 뒤면 현금 마른다" 회생 신청
6일 투자은행(IB) 및 법조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4일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이번 회생 신청은 대주단도 사전에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홈플러스는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으로 매달 6,000억~7,000억원씩 조달해 영업 대금을 충당해 왔다. 이런 상황에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가 나란히 홈플러스의 단기 신용등급을 A30에서 A3-로 하향조정하며, 국내 자본시장에서의 차환이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
단기 신용등급 A3-는 장기 회사채 시장에서의 신용등급 BBB-와 동일하게 평가되는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내려가면 정크본드 수준(BB+)이 된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더라도 두 달 뒤면 현금이 마를 수 있다고 판단, 갑작스레 회생을 결정하게 됐다는 게 MBK 측 설명이다.
홈플러스의 회생 결정으로 가장 난처해진 곳은 메리츠금융그룹이다. 현재 국내 금융권의 홈플러스 관련 대출·지급보증 등 위험노출액은 1조4,000억원으로, 이 중 대부분인 1조2,000억원을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이 빌려줬다. 메리츠는 지난해 5월 홈플러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차환) 당시 단독 주선사로 나섰는데, 금리가 10% 안팎에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금융그룹 전체에서 메리츠증권의 익스포저가 6,551억2,000만원으로 가장 크고, 캐피탈과 화재가 각각 2,807억7,000만원씩 부담했다.

10%대 대출 금리 조정 전망
현재 홈플러스 회생 성공의 키는 메리츠가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홈플러스는 오는 6월 3일까지 법원에 회생 계획안을 제출할 예정으로, 그 전에 관계인 집회에서 가결이 돼야 한다. 담보 채권자의 경우 4분의 3 이상, 담보가 없는 일반 회생 채권자는 3분의 2 이상 동의해야만 가결 조건을 충족한다. 담보채권(CP 포함) 총액 2조1,000억원 가운데 1조2,000억원이 1순위 담보권자 메리츠의 몫인 만큼, 메리츠가 동의하지 않으면 회생 계획안은 부결된다.
이에 업계는 MBK가 메리츠에 10%에 육박하는 인수금융 금리를 내려줄 것을 제안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포괄적 금지 명령이 내려져 차입금과 이자 상환이 유예돼, 최악의 경우 메리츠가 한 푼도 못 받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회생채권 중 공익채권으로 분류되는 근로자 임금과 상거래 채권 등만 먼저 갚으면 된다. 메리츠로부터 빌린 돈은 상환 우선순위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 IB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메리츠는 고금리 대출을 통해 어마어마한 이자를 벌어들였는데 그런 공격적인 영업이 오히려 독이 된 꼴”이라며 “원리금 지급이 유예돼 돈이 당분간 묶여있게 됐고, 이율도 대폭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리츠는 자금 회수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신탁 게약에 의해 맡겨진 재산은 기업 회생을 신청한 회사의 자산으로 간주하지 않아 회생 절차와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다. 해당 신탁 재산은 부동산·유형자산 5조원 규모로 메리츠금융그룹이 1순위 수익권을 갖고 있다. 메리츠금융그룹에 따르면 기한이익상실(EOD) 발생 즉시 담보 처분권이 생기는 구조기 때문에 자금 회수에는 영향이 없다.
한국신용평가도 메리츠 자금 회수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분석한다. 윤소정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에도 불구하고 신탁재산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고, 채무자의 회생담보권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실제 메리츠금융그룹이 담보로 확보한 감정가액 합계는 4조8,000억원 규모로, LTV는 약 25% 수준이다. 윤 연구원은 "회수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담보자산의 우수한 LTV를 감안할 때 최종적인 손실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MBK, 홈플러스 '먹튀 책임론' 부상
이런 가운데 자본시장에선 MBK가 이번 위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악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고의 경영 전문가 집단을 표방한 PEF가 랜드마크 거래에서 경영 실패를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당초 MBK는 홈플러스 M&A(인수합병)를 기업 경영권 거래가 아닌, 부동산 금융 거래로 간주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세일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차), 마스터리스(책임임대차·통임대 후 재임대) 등 부동산 금융을 총집합한 금융 거래였다. 20여 곳의 매장을 매각해 4조원을 확보했지만 이 과정에서 노조 및 지역사회와 갈등을 빚었고, 금융 논리에 매몰돼 쿠팡 등 이커머스의 급성장과 소비 침체로 인한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본질적인 변화조차 읽지 못했다.
치솟은 금융비용 부담과 대규모 유형자산 처분 및 미약한 투자, 이커머스 급성장에 맞물린 유통업 판도 변화는 결국 홈플러스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졌다. 홈플러스는 2021년부터 매년 1,000억~2,000억원대 적자를 냈다. 최근 3개 회계연도 모두 영업적자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해당 기간 부채비율은 각각 663.9%, 944.0%, 3,211.7%로 치솟았다. 이는 신용평가사들이 등급하락을 결정한 주요 원인이다.
게다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업회생절차 혜택을 이용해 부채 부담을 줄이면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MBK가 이를 재무적 리셋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기업회생절차는 일반적으로 기업이 파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되지만, MBK는 홈플러스 납품대금이나 이자를 갚지 못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금융채무 탕감과 조정을 위해 법원에 손을 내밀었다.
상황이 이렇자 시민단체와 투자자들은 김병주 MBK 회장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업인으로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사재까지 내놓는 방식으로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투자자들의 손실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과거 태광그룹의 부실로 발생한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며 '제2의 티메프 사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PEF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게 우선인 만큼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선 MBK 차원의 자구책 마련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중에 경영 실패를 자인한 꼴이어서 더 뼈아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