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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 잠식한 관세 이슈
위안화·엔화 가치 단기간 급변 가능성↑
공포감 반영된 韓 증시도 지지부진

전 세계 금융시장의 이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으로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추진해 온 고율 관세 공약이 하나둘 현실화하면서 그의 행보가 시장에 미치는 여파 또한 상당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강화로 아시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수출 기업의 실적 하락이 예상되면서 국내 증시 또한 연일 바닥을 맴도는 실정이다.
한·중·일 및 아세안 통화 동반 약세 가능성 대두
18일(이하 현지시각) 세계 최대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최근 진행된 글로벌 기관 트레이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51%가 관세와 인플레이션을 올해 금융시장의 최대 변수로 꼽았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인플레이션이 주요 이슈라고 답한 응답자는 27%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치 넬루 JP모건체이스 채권·통화·원자재 전자거래 부문 총괄은 “미국 정부가 외국산 제품에 대한 ‘폭탄급’ 관세를 부과하기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면서 “이달 초부터 캐나다 달러, 멕시코 페소, 역외 위안화 등 주요 통화가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트레이더들이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위해 활발한 매매에 나서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이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을 넘어 유럽연합(EU) 등으로 표적을 확대하면서 유럽 내 반발도 극심해졌다.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60%, EU를 포함한 다른 나라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상대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2027년 독일 국내총생산(GDP)이 1.5%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분데스방크는 미국 경제 또한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17일 요아힘 나겔 분데스방크 총재는 연설에서 “(미국) 정부의 말과 달리 관세의 결과는 미국에 부정적일 것”이라며 “보호주의 정책이 미국에서도 경제활동을 눈에 띄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구매력 손실과 비용 증가는 미국 산업의 경쟁력 우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뚜렷한 긴축 통화정책이 없다면 급격히 뛰는 물가상승률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막대한 달러 자산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내 ‘큰손’으로 활약하는 기관의 의사 결정에 훨씬 더 취약한 아시아 시장 또한 긴장감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미국 투자은행 웰스파고는 중국 위안화가 향후 수개월 내 달러당 7.70위안 수준까지 절하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경기 침체와 달러 강세가 맞물리면서 위안화의 평가 절하를 부추길 것이란 설명이다.
시장조사기관 크레딧사이츠 역시 “미국 국채 대비 아시아 채권 스프레드가 확대되는 추세”라고 진단했으며, 싱가포르 투자은행 OCBC는 “위안화 영향권에 있는 한·중·일 및 아세안 통화들이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시 동반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일본 엔화는 안전자산 선호와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로 상대적 강세가 예상된다는 게 OCBC의 분석이다.

광범위한 관세 부과에 韓 반도체·자동차도 사정권
한국에서도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은 증시 하락으로 드러났다. 18일 기준 코스피는 전일 대비 0.63% 오른 2,626.81로 거래를 마쳤다. 2월 들어 4.4% 오른 수치다. 그러나 지난해 7월 11일 기록한 최고치(2,891.25)와 비교하면 여전히 9.1% 떨어져 있다. 이보다 앞선 2021년 7월 6일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3,305.21)에 견줘서는 무려 20.5% 미끄러진 수준이다. 예상보다 신속하고 광범위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부과 행보를 감안할 때,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 기업들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반영된 결과다.
이에 우리 정부는 무역금융 확대, 대체 시장 발굴 등 수출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는 18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수출전략회의를 개최하고 ‘범부처 비상수출 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가 마지막 ‘골든타임’인 만큼 △관세대응 패키지 △무역금융 패키지 △대체시장 패키지 등으로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설명이다.
먼저 수출 대책은 피해 지원에 중점을 뒀다. 피해가 발생한 기업에 무역보험 지원 한도를 최대 2배 확대하고, 피해 중소·중견기업에는 올해 상반기까지 단기수출보험료를 60% 할인한다. 또 무역분쟁 영향을 받은 중소·중견기업에 관세대응 수출 바우처를 도입하고, 미국·멕시코·캐나다의 20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해외무역관 헬프데스크에서 피해 분석 및 대응, 대체시장 발굴 등을 지원한다.
정부는 수출 대체시장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을 통칭하는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를 제시했다. 이들 지역 5곳에 수출지원기관을 신설하고, 기존에 운영돼 온 9곳은 기능을 강화한다. 아울러 글로벌사우스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무역보험 55조원을 공급하고, 기업별 단기보험 한도는 현행 3배 수준으로 확대한다.
다만 이 같은 수출 안전판도 불확실성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일본 노무라증권은 “(미국은) 관세뿐 아니라 세금, 규제, 통화 정책까지 포함해 부과 기준을 정하는 방식이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블랙박스’ 식 비관세 장벽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내 타격 대상 국가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처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들도 각종 규제와 비관세 장벽 등 위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SNS 폭탄선언 줄인 트럼프, 영향력도 ‘주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시장에 미칠 여파를 의식한 듯 공식 석상 외 발언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JP모건이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분석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경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지난 1월 주간 평균 10개의 게시물을 올렸다. 2월 첫째 주에는 20개 이상 게시물을 올렸지만, 집권 1기 초반(주당 60개)보다는 훨씬 적은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많은 게시물 중 시장을 가장 크게 움직인 주제는 관세로 확인됐다. JP모건은 “관세를 언급한 게시물 세 개 가운데 이달 초 ‘멕시코와 캐나다에 부과하겠다던 25%의 관세를 유예하겠다’는 발언이 나오자, 이들 국가 통화가 각각 2%, 1%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과 관련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어조에 따라 시장의 반응도 차이를 보였다. 그가 펜타닐 공급을 언급하며 중국에 관세 위협을 가했을 때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고, 취임 직후 중국과의 대화에 열린 태도를 보이자 위안화 가치도 안정을 찾았다.
다만 이 같은 시장 변화는 매우 제한적인 수준으로만 이뤄졌다는 게 JP모건의 지적이다. JP모건은 “126개의 SNS 게시글 가운데 단 10%만이 외환 시장을 움직였다”면서 “그의 SNS 게시글에 따라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투자했을 경우, 딱히 좋은 성과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매우 낙관적인 가정하에서도 4% 미만 수익에 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