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도산 위기에 내몰린 건설사들, 3년 6개월 만에 빚 16조 이상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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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팔아 버티고 있지만 한계 명확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 정부 안전 강화 기조도 건설사에 부담

국내 주요 대형 건설사들의 빚이 3년 6개월 동안 17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공사비가 급등한 데다 미분양 악화로 받을 돈인 매출채권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외부 차입금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노란봉투법에 이어 노동 안전대책까지 강화하면서 이미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업계에서는 연쇄 부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순차입금 16조원
19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현대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 SK에코플랜트, KCC건설, HL디앤아이한라, 코오롱글로벌 등 10개 건설사의 순차입금 규모는 올해 상반기 기준 1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 건설사들의 현금성자산에서 차입금을 제외한 금액이다. 2021년 말에는 현금성 자산이 8,000억원 더 많았는데, 3년 6개월 만에 순차입금이 16조8,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매출은 발생했지만 아직 공사비 등을 회수하지 못해 채권으로 남아있는 매출채권 규모도 급증했다. 2021년 말 18조4,000억원이던 매출채권 규모는 올해 상반기 33조8,000억원으로 83.5%(15조4,000억원) 늘었다.
건설사의 매출채권과 차입금이 동시에 증가한 것은 받을 돈(매출채권)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 하고 외부에서 빚(차입금)만 끌어다 쓴 영향이 크다. 미분양 누적에 따른 운전자금 부담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현실화 등이 주된 이유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집계된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약 6만3,734가구다. 이 중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6,716가구로 추산된다. 금융권에서 받은 PF 등 대출 연체율도 상승하고 있다. 브릿지론(토지 매입 단계 PF) 연체율은 2023년 말 8.3%에서 올해 3월 말 15.2%까지 올랐다. 또 토지담보대출 연체율도 같은 기간 7.2%에서 28.1%로 4배 가까이 상승했다.

매출·수익·안정성 '삼중 부진'
새 일감은 줄어들고 다 지은 아파트의 분양과 정산도 늦어지면서 건설업의 성장성·수익성·안정성 지표 역시 악화를 거듭하고 다. 한국은행의 '2025년 2분기 기업경영분석' 보고서를 보면, 성장성의 핵심 지표인 매출액 증가율은 -8.92%를 기록하며 4분기 연속 하락, 그 폭마저 매 분기 확대됐다. 건설사들의 매출 감소가 '일시적 조정'이 아닌 구조적 침체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부 수치를 보면 지난해 3분기 -3.2%에서 4분기 -5.2%로 떨어졌고, 올해 1분기 -8.7%를 거쳐 2분기 -8.9%까지 추락했다. 총자산증가율도 2분기 -0.2%로, 직전 분기 1.7% 대비 급락했다.
수익성 지표도 신통치 않다. 매출액 세전순이익률은 2.9%로 직전 분기보다 0.9포인트(p) 하락하며, 저조한 흐름을 이어갔다. 안정성 지표인 부채비율은 1분기 130.2%에서 2분기 128.5%로 소폭 개선됐지만, 부실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은 상태다. 실질적인 건전성 개선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건설사가 보유한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해 매출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총자산회전율은 2분기 0.65%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0.84%였던 것과 비교하면 0.19%p 떨어진 수치로, 자산 활용 효율성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건설경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건설투자와 관련 지표가 금융위기 때보다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구조적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한 최근 건설경기 진단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관련 주요 실물 지표가 금융위기 당시보다 크게 악화됐다. 국내 건설투자는 2021년 -0.2%, 2022년 3.5%, 2023년 -0.5%, 2024년 -3.3%로 4년 연속 고꾸라졌다.
건설사 97%, 산재 과징금 맞으면 도산
향후 전망은 더욱 좋지 않다. 정부의 안전 강화 기조가 향후 건설사의 수익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르면 사망 사고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기업은 영업이익의 최대 5%나 최소 30억원 중 큰 금액을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과징금 최소액이 30억원인 것이다. 하지만 대한건설협회 자료에 따르면 시공 능력 순위가 매겨지는 국내 종합 건설사 1만7,188곳 중 지난해 영업이익이 30억원 이하인 곳이 1만6,708곳(적자 4,953곳 포함)으로 전체의 97.2%였다.
이에 대해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기업 규모에 따라 한두 곳의 현장만 운영하는 회사도 있고 수십 곳을 동시에 관리하는 곳도 있는데 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토목 공사를 주로 하는 중견 건설사 임원은 “교량·공항·항만처럼 위험도가 높은 공사 현장들을 일반 현장과 같은 기준으로 과징금을 매기겠다고 하면 안전 관리 비용이 폭등해 기업들이 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중견 건설사 임원은 “과징금이 자칫 건설업계 전체를 줄도산 위기로 내몰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안전 규제로 인해 정부의 역점 과제인 ‘수도권 주택 135만 가구 공급’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책의 핵심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유 중인 공공 택지에 민간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는 ‘민간 참여형’ 사업이다. 그런데 최근 4년(2021~2024년) 공공기관이 발주한 현장에서 사망한 92명 가운데 LH 발주 현장이 18명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기조에 따라 LH가 발주하는 현장이 늘어나면 사망 사고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민간 참여형 사업을 해본 한 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LH 발주 공사는 기본적으로 최저가 입찰이라 공사비가 충분치 않은데 처벌에 따른 과징금 부담까지 커지면 사업 참여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