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희망 범위 하단 공모가로 상장한 서울보증보험 공모가 낮춰 상장하는 기업들, 곳곳에서는 '상장 포기' 'IPO 삼수생' 케이뱅크, 시장 악재 헤쳐나갈 수 있을까

올해 상반기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서울보증보험이 상장 첫날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흥행 실패로 공모가가 희망 범위 하단에서 확정된 가운데, 할인 효과를 노린 일부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린 결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서울보증보험의 사례가 IPO 시장 전반의 '침체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서울보증보험, '겨우' 증시 입성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서울보증보험은 상장 첫날이었던 지난 15일 공모가 대비 23.08% 오른 3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공모가 기준 1조8,000억원에서 2조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서울보증보험의 주가 상승 동력은 '낮은 공모가'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서울보증보험은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희망 범위 하단인 2만6,000원으로 확정하면서 시장의 기대를 저버린 바 있다.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의 통합 경쟁률도 7대 1에 그쳤다. 이는 최근 IPO 시장의 평균 경쟁률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수요예측·일반청약 흥행 실패의 배경에는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리스크'가 있다. 서울보증보험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서울보증보험 상장 과정에서 전체 발행 주식의 10%(698만2,160주)를 매각했으나, 여전히 83.85%의 지분을 쥐고 있는 상태다. 차후 예보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2027년 말까지 보유 지분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예정이다.
이에 더해 내수 부진과 높은 건설 관련 보증 상품 비중(9%) 역시 서울보증보험의 실적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서울보증보험은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고 보수적인 자산 운용 전략을 채택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IPO 시장 '냉각'
서울보증보험 외에도 수많은 기업이 IPO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로 인해 곤혹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보증보험과 같이 낮은 공모가로 상장하는 기업들도 속출하는 추세다. 작년 11월 12일 상장한 노머스부터 최근까지 상장한 대다수 기업이 희망 밴드 내에서, 혹은 하단 미만에서 공모가를 확정했다. 지난해 상장에 도전한 대다수 기업의 공모가가 희망 밴드 상단을 초과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양상이다.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기업 역시 대폭 줄었다. 지난해 1월부터 3월 초까지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기업은 22개였는데, 올해 같은 기간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따낸 기업은 11개에 불과하다. 무사히 증시 입성에 성공하는 기업 수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올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 수는 18개(스팩 포함)로, 전년 동기(23개)보다 눈에 띄게 감소했다.
아예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들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1월 1일~3월 10일) 상장예비심사를 철회한 기업은 12곳에 달한다. 코스닥시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을 계획한 에코프로비엠을 비롯해 영구크린, 비젼사이언스, 레메디, 레드엔비아, 아른, 영광와이케이엠씨, 엠틱스바이오, 에이모, 메를로랩 등의 상장예비심사가 무산됐다. 올해 5월 인적분할과 재상장을 계획했던 빙그레도 돌연 계획을 철회했다.

증시 재입성 노리는 케이뱅크
IPO 시장 전반이 얼어붙은 가운데, 서울보증보험의 뒤를 이어 증시에 '재도전장'을 던진 케이뱅크에 대한 시장 우려도 자연히 커지는 모습이다. 케이뱅크는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고 IPO 추진 안건을 의결했다. 이번으로 세 번째 상장 도전이다. 2023년 2월 투자 심리 위축 등을 고려해 한 차례 상장을 연기한 케이뱅크는 지난해 8월 다시 상장예비심사를 통과, 10월 말 상장을 목표로 IPO에 재도전했다. 하지만 수요 예측 결과는 부진했고, 결국 올해 1월 또다시 IPO 철회 소식이 전해졌다.
케이뱅크가 상장을 서두르는 것은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때문이다. 케이뱅크는 2021년 6월 베인캐피털·MBK파트너스·MG새마을금고·컴투스 등으로부터 7,250억원을 투자받았다. IPO 완료일에 연 8% 이상의 내부수익률(IRR)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문제는 내년 7월까지 이 같은 조건으로 상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FI들에 대주주 BC카드의 지분을 포함해 보유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동반매도청구권)이 생긴다는 점이다. FI가 동반매도청구권 행사를 결정할 경우 BC카드는 이들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케이뱅크에 남아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IPO 과정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케이뱅크는 빨라도 내년 초에나 상장이 가능하다"며 "상장 절차를 서두르지 않으면 상장 기한을 맞추지 못해 7,250억원어치 채무 상환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설명했다.
업비트와의 실명계좌 제휴 협약이 오는 10월 끝난다는 점도 케이뱅크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출범 이후 자본 확충에 실패하며 ‘개점휴업’까지 겪었던 케이뱅크는 업비트에 의존해 외형을 확대해 왔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케이뱅크 수신 잔액(22조원) 중 업비트 예치금(3조2,00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5%에 달했다. 이는 다른 은행들의 거래소 예치금 비중이 1% 미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업비트와의 계약이 연장된다면 가상자산 시장을 등에 업고 미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지만, 계약이 종료된다면 IPO를 앞두고 거대한 '악재'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