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받고 주 4.5일 근무? 은행원도 외면한 금융노조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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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별로 100명 이내 총파업 참석 억대 연봉자들 파업에 싸늘한 시선 부족한 명분에 참여 유인 떨어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주 4.5일 근로제 도입과 임금 인상을 촉구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앞서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의 대대표교섭이 결렬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참여율에 은행 영업은 차질이 없는 상황이다. 억대 연봉과 안정적 고용을 누리는 은행원들의 파업에 명분이 부족하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는 은행권의 현실 역시 파업 열기를 희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4.5일제 도입 걸고 총파업 나선 금융노조, 참여율 ‘미미’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이 소속된 금융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했으나, 가장 규모가 큰 시중은행 직원 대부분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영업점 운영 차질이 곧 소비자 피해로 직결되는 만큼 다수 직원은 고객 응대를 우선시할 것”이라며 “일부 지점에서 1~2명 정도만 파업에 나서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오전 기준 주요 시중은행이 파악한 파업 참여 인원은 은행별로 수십명, 많아야 100명 정도였다. KB국민은행의 경우 노조 보직 등을 맡은 직원을 중심으로 파업에 참여했지만, 100명이 채 되지 않는 규모로 확인됐다. KB국민은행의 정규직은 올해 상반기 기준 1만2,868명에 이른다.
하나은행에서도 노조 간부 위주로 50명 남짓만 파업에 동참한 상태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하나은행의 전체 직원은 1만1,916명, 이 가운데 노조원은 8,600여명이다. 우리은행 역시 약 100명(전체 직원 수 1만 명), NH농협에서도 약 50명(전체 직원 수 1만6,300명)만 이날 일손을 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극소수 직원만 파업에 참여한 상태라, 모든 영업점이 정상 운영되고 업무에 차질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신한은행은 아예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 1일 진행된 금융노조원 전체 투표 당시, 신한은행지부의 투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지부는 직원들에게 "조합원의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이번 금융노조 총파업 투쟁에는 부득이 참여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억대 연봉자들의 배부른 투정” 비판
3년 만의 파업인데도 파업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4.5일제 등 금융노조가 내세운 파업 명분이 여론은 물론 금융권에서도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현재 금융노조는 은행권이 지난 2002년 주 5일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던 전례를 강조한다. 노조 측은 이번에도 주 4.5일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정부가 목표로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근로시간 단축을 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정부가 노사정협의체를 띄우면서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된 것도 노조에 힘을 실어줬다. 노조는 “사회 전반의 근로시간 단축 흐름을 은행권이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주 5일제는 2000년대 초 외환위기 충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용 유연화를 함께 논의하며 추진됐다. 사회적 합의에만 4년가량 걸렸고, 경제계 전반의 공감대 속에서 순차적으로 시행됐다. 반면 이번 주 4.5일제 논의는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업종이 독자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크다.
금융권 내부에서도 ‘배부른 투쟁’이란 비판이 거세다. 금융노조의 핵심인 은행원은 억대 연봉과 안정적 고용 구조 등으로 청년들이 선망하는 일자리 중 하나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은행의 지난해 직원 연봉은 평균 1억2,667만원으로 2021년(1억550만원) 1억원을 넘어선 뒤 매년 증가하고 있다. 같은 기간 5인 이상 사업장의 1인당 평균 연봉(5,338만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또한 은행들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4대 은행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총 8조9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9% 증가했다. 이런 이유로 금융권에서조차 “근로시간 축소와 임금 인상을 함께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 한 은행원은 “금노(금융노조) 주 4.5일제 파업 그만하면 안되냐”고 불만을 토로했고, 또 다른 은행원 역시 “정부에서도 아직 시기상조라는데”라며 “임단협이나 얼른 끝내라”고 적었다. 주 4.5일제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고임금을 받는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노조가 총대를 메는 데 대해, 왜 굳이 ‘욕받이’를 자처하느냐는 불만이 상당한 분위기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노조는 은행에서 도입이 가능하니 일단 은행에서 도입하자고 하지만, 한국 사회 최초의 선례가 되는 만큼 다른 산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며 “지급능력이 없는 곳이 많을 것이고 특히 소상공인들에게 어려움과 박탈감이 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금융 노사가 주 5일제를 도입할 때는 노사정 논의에서 여러 법제도를 논의했었다”며 “지금 이렇게 급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가속화 속 파업 열기 희석
최근 은행권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는 점도 파업 참여 동력을 약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의 올해 상반기 임직원 수는 5만3,79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만5,066명)보다 1,272명 줄어들었다. 은행 별로는 신한은행이 532명 줄어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고, 국민은행 473명, 우리은행 180명, 하나은행 87명이 그 뒤를 이었다.
은행들은 매년 2,000명 안팎의 범위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인건비 절감과 조직 슬림화를 추진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의 '은행 경영 현황 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희망퇴직자는 1,987명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2,357명, 2023년에는 2,392명에 달했다.
평균 임금이 높다 보니 희망퇴직금도 일반 기업에 비해 월등히 많다. 5대 은행의 희망퇴직자 평균 퇴직금은 지난해 기준 3억5,000만원 수준으로, 법정 퇴직금을 포함하면 5억원 이상을 손에 쥔다. 최고 연봉을 기록한 이들 중에선 퇴직금만 10억원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가장 높은 퇴직소득을 기록한 퇴직직원은 10억6,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에서 가장 높은 퇴직금을 받은 직원은 9억1,600만원, 우리은행은 9억6,00만원, 신한은행은 8억2,300만원을 기록했다.
은행권은 인력과 함께 은행 지점도 눈에 띄게 줄이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전국 은행 지점 수는 5,521곳으로 지난해 상반기 5,710곳 대비 1년 만에 200곳 가까이 줄었다. 올 상반기 4대 금융지주가 10조원에 육박하는 호실적을 거뒀음에도 은행들이 인력 및 지점을 줄이고 있는 건 디지털 전환과 이에 따른 비대면 업무의 확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모바일 뱅킹을 통한 계좌 개설·대출·환전 등 금융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대면 업무의 필요성이 크게 줄어드는 추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굳이 이런 시기에 밉보이면서 총파업에 나서야 하는지 회의적인 분위기”라며 “차라리 충분한 보상과 퇴직 조건을 확보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