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메이저 플레이어’ 꿈꾸는 테더, 200억 달러 자금조달 둘러싼 시장 신뢰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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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매각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 발표
자금 활용처 및 투자 전략은 불확실성 짙어
테라-루나 사태가 남긴 교훈과 시장 불안

세계 최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 테더가 200억 달러(약 28조원) 규모의 자금조달을 추진하며 자본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테더는 지분 일부 매각만으로도 오픈AI에 견줄 만큼의 기업가치를 내세웠지만, 확보한 자금의 용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시장에선 금 같은 실물 자산 투자 확대와 비트코인 채굴 등 고위험 투자가 병행된 테터의 투자 전략을 두고 변동성 위험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테라-루나 사태에서 확인된 스테이블코인의 취약성까지 재조명되면서 테더의 자금 조달은 가상자산 시장 전반의 신뢰를 재확인하는 시험대로 작동할 전망이다.
가상자산 산업 지형 변화 촉발 가능성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테더는 자사 지분의 약 3%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해 사모투자 방식으로 최대 200억 달러에 매각하는 협상을 추진 중이다. 주관사는 글로벌 투자회사 캔터피츠제럴드며, 이번 투자 유치에서 테더의 기업가치는 5,000억 달러(약 69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수치가 현실화할 경우 테더는 전 세계 비상장사 가운데 최고 수준의 몸값을 인정받게 되며, 오픈AI나 스페이스X 등과 나란히 초대형 선도 기업 반열에 오르게 된다.
시장은 테더가 잠재력과 현금 창출력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테더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USDT의 현재 시가총액은 1,720억 달러(약 241조원)로, 2위인 서클의 USD코인(740억 달러·약 104조원)을 크게 웃돈다. 이 같은 격차는 발행 및 유통량에 그치지 않고 막대한 이익으로 이어진다. 올해 2분기 테더의 순이익은 49억 달러(약 6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파올로 아르도이노 테더 최고경영자(CEO)는 “이익률이 99%에 달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테더는 이처럼 압도적 수익 기반이 투자자들의 평가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쟁사인 서클의 시가총액이 300억 달러(약 42조원) 남짓인 것과 비교하면, 테더가 목표로 하는 5,000억 달러 기업가치는 무려 14배 이상 차이가 난다. 서클이 기업공개(IPO) 비용 등으로 순손실을 내는 동안 테더는 사실상 ‘가상자산판 중앙은행’에 가까운 체력을 비축한 셈이다. 이는 테더가 단순 암호화폐 발행사를 넘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시장에서도 이번 테더의 자금조달 추진이 가상자산 산업 전반의 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까지 가상자산 기업들은 자금 확보 수단으로 토큰 발행이나 내부 수익에 의존했지만, 이번처럼 외부 투자자 유치를 통해 수십조 원대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시도는 극히 이례적이다. 테더가 확보한 자금을 통해 새로운 사업 다각화에 나서거나 미국 규제 체계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강화할 경우, 향후 다른 기업들에도 벤치마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장 전반의 관측이다.
‘안정적 운용 vs. 위험 투자’ 괴리로 시장 불안 심화
다만 테더가 지분 매각으로 유치한 자금의 활용처가 불투명하다는 점은 주시 대상이다. 자본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지분을 팔아 조달하는 자금은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기대수익(자본비용)을 전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테더의 대표적 운용처인 미국 국채는 통상 연 4~5% 안팎의 이자만 제공한다. 이는 테더가 기대수익과 실제 수익률 사이의 간극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미 시장의 이목은 “테더가 신규 자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쏠리는 형국이다.
지금까지 테더가 외부에 보여온 확장 시나리오는 실물자산과 인프라 쪽으로 기울어 있다. 테더는 이미 금 기반 스테이블코인(XAUT)을 발행·운영 중이며, 이달 초에는 정제와 유통, 로열티 등 금 공급망 전반으로 자금 투입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에 알려진 테더의 금 보유 규모는 실물 약 50톤과 관련 자산 87억 달러(약 12조원) 수준이며, 지난 6월에는 귀금속 투자사 엘리멘탈 알투스(ELE) 지분을 8,920만 달러(약 1,250억원)에 취득하기도 했다. 아르도이노 CEO는 “금은 본질적으로 비트코인과 유사한 자산”이라고 강조하며 준비금 운용을 달러·국채 일변도에서 실물 담보로 일부 다변화하려는 의중을 드러냈다.
비트코인 채굴과 에너지 인프라도 핵심 축이다. 테더는 2023년 이후 우루과이·파라과이·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다수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설비, 변전소 신설, 기존 채굴장 지분 취득 등에 총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 이상을 배정했다. 또 올해 말까지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사가 되겠다”고 공언했으며, 자체 보유 비트코인은 10만 개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채굴 사업은 ‘대규모 비트코인 보유 기업으로서 네트워크 보안에 직접 기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가격 변동성에 노출되는 위험 자산이라는 점에서 준비금 안정성 논쟁을 부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테더의 준비금 중심축은 여전히 달러 유동성에 맞춰져 있다. 지난해 말 공시에 의하면 테더의 총 준비금 1,184억 달러(약 166조원) 중 미 국채 보유 규모는 970억 달러(약 136조원)에 이른다. 이는 독일이나 멕시코 등 주요국의 미 국채 보유량을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49억 달러(약 7조원)에 달하는 2분기 수익 대부분이 바로 여기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고금리 환경의 산물이다. 지분 매각으로 조달한 자금이 다시 국채로 순환될 경우, ‘자본비용 대비 수익률’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고, 반대로 금·채굴 등 위험 프로젝트로 이동하면 환매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
규제·거버넌스 측면의 숙제도 남는다. 테더는 미국 상장사가 아닌 탓에 ‘지니어스법’의 직접적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에 테더는 백악관 출신 인사를 전면에 세워 규제 당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등 ‘미국 규제 호환’ 경로를 제시하고 있으나, 준비금 공시가 외부감사(감정·보증) 아닌 인증 수준에 머무는 점, 위험자산 익스포저의 세부 내역이 제한적으로 공개되는 점 등은 투자자와 감독 당국이 동시에 예의주시하는 대목이다.

스테이블코인도 붕괴 전례, 신뢰 위기 재현 우려
업계에선 2022년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든 테라-루나 사태를 떠올리며 우려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테라-루나 붕괴는 스테이블코인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기초 자산이 없는 상태에서 알고리즘과 투자자 신뢰만으로 가격 연동을 유지하려 했던 구조는 단기간의 외부 충격으로 무너졌다. 대량 매도와 유동성 부족이 겹치면서 두 코인은 동반 하락했고, 결과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라 불리던 자산조차 순식간에 가치 기준을 상실했다. 시장 신뢰도 역시 바닥을 향해 추락했으며, 결국 수십조 원 규모의 자산이 하루아침에 증발했다.
가상자산 시장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새긴 테라-루나 사태는 준비금의 질과 유동성 확보가 스테이블코인의 존속을 좌우한다는 교훈 또한 남겼다. 단순한 알고리즘이나 차익거래 유인으로는 급격한 매도 압력에 대응할 수 없으며, 즉시 현금화 가능한 안전자산이 담보돼야만 가치 연동 또한 유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환매 수요가 집중될 때를 대비해 준비금의 구성과 만기도 중요한 부분이다. 담보가 부실하거나 환매 절차가 불투명하다면, 시장은 순식간에 신뢰를 거두고 대규모 인출 사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현재 테더가 추진하는 대규모 자금조달을 바라보는 시장의 평가가 회의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국채와 금 등 안전자산 비중을 확대한다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비트코인 채굴과 같은 위험자산 노출을 병행하는 전략은 스스로 안정성을 약화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름과 달리 본질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이 아니며, 준비금 구성과 정보 공개, 규제 체계 등 다양한 요소가 적절히 결합될 때만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