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유동성 빈약한데” 정부, 외환시장 24시간 운영·역외 원화결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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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채권·주식 자유롭게 거래 연내 '종합 로드맵' 발표 야간 시간대 유동성 부족 등은 장벽

정부가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 편입을 위해 외환시장 구조 개편에 나선다. 국내 외환시장을 24시간 개방하고, 해외에서도 원화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 거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경계의 시선도 적지 않다. 24시간 거래 체제 확립이 원화 국제화와 우리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위한 ‘첫발’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야간 유동성 부족과 높은 변동성, 원화의 구조적 제약 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 구축
26일 기획재정부는 '대한민국 투자 서밋' 관련 '외환시장 현황 및 개선방안'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국내 외환시장을 24시간 개장하고,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연내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한 종합 로드맵'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 국내 달러·원 현물환 시장은 정부 인가를 받은 국내 중개회사를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하며, 참가 기관도 국내 금융기관으로 제한된다. 거래 시간 역시 오전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로 한정돼 있어 미국 등 해외 투자자들의 거래에 제약이 있었다. 과거 외환위기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외국인 간 원화 거래를 사실상 금지하면서 역외 외환시장 형성을 의도적으로 막아온 측면도 있다.
이처럼 외국인의 낮은 원화 거래 접근성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의 주요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MSCI는 역외에서 자유로운 환전이 가능한 외환시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올해 6월에도 ‘관찰대상국’에도 못 올라 신흥국(EM) 지위에 머물러 있다. MSCI 측은 최근 발표한 시장 분류 결과에서 한국의 ‘시장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외환시장 개방도 △공매도 제도 안정성 △주식시장 데이터 접근성 등의 측면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기재부, 국내외국환중개사에 관련 준비 통보
이에 정부는 국내 외환시장을 24시간 운영체제로 확대해 미국 등 해외 투자자들의 거래 공백을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외환시장 개장 시간이 연장되면 역외선물환(NDF) 수요 일부가 국내 현물환 시장으로 흡수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아울러 정부는 외환시장 24시간 개장에 맞춰 충분한 거래량을 확보하기 위해 외국인의 원화 거래 기반도 정비한다.
먼저 외국 금융기관이 국내에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이를 통해 원화를 직접 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역외 원화결제 기관' 제도를 도입한다. 외국인 간 원화 거래와 보유, 조달이 자유롭게 가능하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또한 외국 금융기관들이 야간 시간에도 원화를 결제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에 24시간 운영되는 '역외 원화결제망'(가칭)을 신규로 구축한다. 현재 한국은행 결제망(Bok-Wire)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운영돼 야간 결제에 한계가 있었다.
외환시장 24시간 개장을 위해 기재부는 지난달 국내 외국환중개회사인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 등에 내년 6월까지 외환시장 24시간 거래를 위한 준비를 완료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외환시장 24시간 개방을 위한 로드맵을 가지고 외환시장 구조개선을 추진해 왔다”며 “정확한 실행 시기는 정해진 바가 전혀 없으나, 시장과 조율을 통해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MSCI 명분 삼아도 현실과는 괴리
외환시장 24시간 개방 추진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자본시장 등 생산적인 부문으로 돈이 돌게 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의지와 맞닿아 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4시간 개장 만으로는 시장의 실질적 활성화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야간 시장의 유동성 부족과 이에 따른 높은 변동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외환당국은 지난해 1월부터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지난해 7월부터는 외환시장 거래 마감 시간을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 날 새벽 2시로 연장했지만, 지난 1년간 원·달러 환율 일평균 변동폭은 11.7원이었다. 이는 오후 3시 30분까지만 외환 거래가 이뤄졌던 직전 1년(7.1원)과 비교하면 64.8% 확대된 것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도널드 트럼프 트레이드, 비상계엄 및 탄핵정국, 상호관세 리스크 등으로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점을 감안해 거래시간 연장 이후만 놓고 봐도 연장시간대를 포함한 경우의 환율 변동폭이 정규장(오전 9시~3시 30분까지) 대비 42.7%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장 시간대 특히 야간 시장에서 유동성은 급격히 줄어드는 데 비해 해외 지표와 이벤트 발표로 변동성이 커지는 데 따른 것이다. 거래 상대방이 마땅치 않으니 야간 거래를 꺼리게 되면서 유동성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도 발생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야간에 유동성이 워낙 없다 보니 자칫하다간 손실이 너무 클 수 있어서 굳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야간) 거래 자체를 하지 않는다”며 “24시간 개장을 통해 밤중에 나오는 미국 이슈 등에 대응이 가능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바로바로 대응을 하기 위해선 유동성이 따라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원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보다 원화의 구조적 한계와 달러 종속성이 더 부각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외환시장을 24시간 열면 역외 투자자 접근성은 높아질 수 있으나,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달러·엔·유로처럼 ‘주류 통화’가 아닌 만큼, 거래 저변이 약하고 금융기관들의 헤지 능력도 제약돼 결국 달러 결제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