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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부동산 운용사들 잇따라 시장에
위험자산 노출 많은 운용사 ‘손절’
실적 하락에 해외 부동산 악영향까지

부동산 중심의 자산운용사들이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과 유동성 악화 여파로 잇따라 매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수익성 저하와 고위험 자산 편중 문제로 매각은 좀처럼 성사되지 않고, 기업가치 또는 기대치를 밑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공제회·연기금 계열 운용사도 예외가 없으며, 해외 부동산 비중이 높은 운용사의 경우엔 투자 손실 가능성이 더욱 큰 탓에 시장의 가치평가 기준도 매우 보수적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업황 악화로 ‘수익성 중심’ 전략 운용사 집중 타격
1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마스턴투자운용은 최대 3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을 추진 중이다. 자금 조달 목적은 유동성 보완이며, 현재 싱가포르계 사모펀드 운용사 CCGI가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마스턴은 최근 두산타워, 강남파이낸스플라자(GFP) 등 주요 오피스 자산 매각으로 자금 여력을 일부 확보했지만, 운용자산 가치 하락과 이에 따른 대규모 충당금 설정 부담이 여전해 운용사 본체의 자본 적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지스자산운용 또한 앞서 주요 지분을 시장에 내놓으며 이목을 끌었다. 이지스 자산운용은 지난 5월 고(故) 김대영 창업주의 배우자인 손화자 씨가 보유한 지분 12.4%에 대해 매각 작업을 공식화하고, 자문사로 모건스탠리를 선정했다. 지분 단독으로는 경영권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모건스탠리는 주요 재무적투자자(FI)들을 직접 설득하는 방식으로 매각 지분 확대에 나섰다. 몇몇 자산운용사와 사모펀드가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가격이나 구조 측면에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며 성사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1세대 부동산 운용사의 상징 같은 회사로 평가받는 마스턴투자운용과 이지스자산운용의 지분 정리를 둘러싸고 “부동산 운용 중심이라는 사업 모델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신호”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부동산 시장의 체력이 근본적으로 약화됐고, 오랜 시간 부동산 수익률에 의존해 온 회사들이 구조적 전환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투자자들 역시 부동산 편중 운용사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부동산 투자 이력, 매각가치 하락 요인으로 작용
시장에 나온 매물들이 모두 이렇다 할 원매자를 만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동산 운용사들의 위기가 단순히 가격 하락이나 경기 침체를 넘어 리스크 감수에 대한 시장의 인식 변화에 있는 만큼 투자자들은 구조적 전환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 중이다. 이는 공제회 또는 연기금 산하 운용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일례로 군인공제회 산하의 엠플러스자산운용은 두 차례의 공개입찰에도 응찰자가 없어 매각이 불발됐다. 첫 번째로 진행했던 본입찰에서는 코발트-VCM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약 500억원대로 엠플러스 지분 70%를 인수하겠단 의사를 밝혔지만, 당시 계약금의 5%인 약 20억원의 이행보증금을 납입하지 않으면서 협상이 무산됐다.
이어 진행한 2차 본입찰에는 웨일인베스트먼트, 부동산 개발 회사 씨티코어 등이 참여했다. 1차 본입찰에 참여했던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는 2차 본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웨일이 씨티코어보다 좀 더 높은 가격을 써내면서 우협에 선정됐다. 그러나 웨일 역시 투자확약서(LOC) 등 자금 증빙을 하지 못하면서 역시 협상이 무산됐다. 1차 입찰 실패를 교훈 삼아 매각 지분을 줄이고 나머지 지분에 대한 풋옵션을 거는 등 군인공제회의 노력 또한 물거품이 됐다.
2차 입찰까지 성공하지 못하면서 군인공제회 측은 엠플러스 매각을 수의계약(경쟁이나 입찰이 아닌 매각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해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돌리는 방안을 매각주관사인 삼일PwC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군인공제회 측의 매각 의지가 강해서 매각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수의계약으로 돌리는 방법을 염두에 두고 관심 있는 원매자를 알아보려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재택근무로 공실 증가, 사무실 수요 위축
이 같은 상황에서 해외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은 자산운용사들은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팬데믹 이후 뉴욕, 런던, 시드니 등 주요 글로벌 도시에서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오피스 수요가 급감했고, 상업용 건물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직결된 것이다. 여기에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펀드의 수익률 또한 악화됐고, 대체투자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아온 운용사들의 자산 건전성에도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국내 금융회사들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가운데 기한이익상실(EOD) 발생 규모는 금감원이 대체투자 현황을 집중 점검하기 시작한 2023년 6월부터 매 분기 늘고 있는 추세다. 만기도래에 따른 EOD 규모는 2023년 9월 말 2조3,100억원에서 지난해 9월말 2조6,400억원으로 불과 1년 만에 3,300억원 증가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EOD 시점을 기준으로 평가손실 반영 여부를 더욱 보수적으로 따지기 시작했고, 비상장 자산을 중심으로 기업가치 할인율도 대폭 높이는 추세다. 결국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비중이 높은 운용사들은 수익성 악화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 투자자 신뢰 약화, 그리고 시장의 전반적인 보수적 평가 기조가 맞물리며 갈수록 낮은 몸값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곧 매각 시도조차 쉽지 않은 수렁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