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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기습적으로 日과의 장관급 회담 참석 알려 관세 등 통상 문제와 함께 '군사 지원' 의제로 언급 향후 협상서 포괄적 군사 비용 부담 요구할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일 장관급 회담에 돌연 참석을 선언한 가운데 두 나라가 첫 관세 협상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당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참석 의사를 밝히며 군사 지원과 무역 공정성을 언급했고, 통상 문제로 의제를 제한하려던 일본 협상단은 미국 정상의 '깜짝 등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에 주일미군의 주둔 비용 외에도 포괄적인 군사 지원 비용의 부담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트럼프, 日 관세 협상단과 50분간 면담 진행
17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백악관을 찾은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 등 일본 관세 협상단은 50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뒤 75분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났다. 특히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회담의 최대 이슈였다. 장관급 회담에 상대국 대통령이 협상 당사자로 참석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당초 협상 대상국인 일본과의 첫 회담에는 베선트 재무장관, 그리어 대표가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협상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일본이 관세와 군사 지원, 무역 공정성을 협상하기 위해 미국으로 오고 있다"며 "나는 재무부·상무부 장관과 함께 회담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부랴부랴 X에 "내 특사와 만나줘 감사하다"고 적었다.
일본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첫 미·일 협상에서 방위비 문제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현재 미국을 방문한 협상단에는 외무성과 방위성의 지원 체제는 갖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제재생상을 대표로 보내며 관세와 대미 투자 등 통상 분야의 문제로 의제를 제한하려 했던 일본이 트럼프 행정부의 작전에 당했다는 평가다.
日,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 15억 달러' 부담
회담 이전까지 두 나라 모두 주요 의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참석 소식을 알리면서 '군사 지원' 문제를 꺼내 들어 관세, 무역 불균형 문제와 함께 주일 미군 방위비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핵심 의제로 올리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실제로 아사히신문은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일미군 방위비 등 미국과 일본의 안보 현황이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표출했다"고 전했다.
현재 주일미군의 방위비 분담 구조는 '소요형' 방식으로 미군 주둔에 필요한 항목별 비용을 산출해 부담하는 형태다. 이에 따라 일본은 미군기지 유지·관리, 일본인 근로자 인건비, 시설 건설비, 훈련비 등 다양한 세목별로 분담금을 책정해 매년 미국에 지급하고 있다. 2021년 일본은 2022년부터 5년간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77억2,000만 달러(약 11조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연평균 분담금은 약 15억4,500만 달러(약 2조2,000억원)이다.
하지만 일본이 예상하는 방위비 분담금과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군사 지원 비용은 서로 다른 개념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순히 분담금을 넘어, 미국이 일본을 군사적으로 방어하는 데 투입되는 모든 비용, 즉 미군의 핵우산 제공, 정보 자산 운용 등에 들어가는 재원을 모두 군사 지원 비용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인식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이 방위비를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8%에서 3%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7년 방위비협정 종료에 따른 협상 예정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오는 2027년 종료되는 미·일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새로 협상해야 한다. SMA 재협상에서는 주일미군 주둔비 총액 규모뿐 아니라 분담 방식, 산출 근거 등도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일본 내에서는 미·일 간 관세 협상과 맞물려 방위비 증액 압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쓰고 있지만, 일본은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다"며 "미·일 안보조약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12일 취임한 조지 글라스 주일미국대사도 일본이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지명자 신분으로 참석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에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부담하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일본은 연간 14억 달러(약 2조원)의 주일미군 주둔 비용을 부담했는데, 최근 미·중 갈등으로 인해 그 비용이 훨씬 더 비싸졌다"며 "주일미군 주거 비용, 무기와 지휘통제 체계 업그레이드 비용이 매우 비쌀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글라스 지명자는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해 무역적자를 줄이고 방위비를 늘리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가 그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일 동맹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일본에 선봉을 맡아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일본이 미국에 주문한 500억 달러 상당의 군사 장비가 밀려 있는 만큼, 이 장비를 신속히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협상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 "일본 무역대표단과 만나서 큰 영광"이라며 "큰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회담 후 양측이 되도록 조기에 합의해 정상 간에 발표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당초 예고했던 방위비 협상이 이뤄진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본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방위비 분담 확대와 관련한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내부에서는 이시바 총리가 나서 이른 시일에 미국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담판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