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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로수길 상가 공실률 39%
손해 본 유명인들, 앞다퉈 탈출 행렬
‘세로수길’ 뜨면서 임대료 조정 국면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였던 가로수길이 급격한 상권 침체로 시름하고 있다. 높은 공실률에도 꺾이지 않는 임대료, 소비 패턴의 변화 등이 맞물리며 상권은 갈수록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많은 상인과 소비자는 이른바 ‘뒷골목’으로 몰리면서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는 모습이다.
온라인 뜨고 오프라인 지고
14일 부동산 컨설팅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가로수길 상권의 공실률은 39.4%로 서울 주요 상권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처럼 높은 공실률의 배경으로는 △상권 정체성 붕괴 △지속적 임대료 상승 △인근 신흥 상권 부상 등이 꼽힌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본격화한 온라인 쇼핑 성장은 오프라인 중심의 가로수길 상권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세계적 부호도 손해만 떠안은 채 가로수길을 등졌다.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ZARA)의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는 보유 중이던 가로수길 빌딩을 최근 매각했다. 2016년 9월 대지면적 457.4㎡, 연면적 1,241.9㎡ 규모의 건물을 325억원에 매입한 그는 해당 건물을 300억원에 넘기며 25억원의 손해를 봤다.
이번 오르테가의 빌딩 매각을 두고 부동산업계에서는 가로수길 쇠퇴의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김태호 라이트부동산중개법인 대표는 “대지면적 1평(3.3㎡)당 2억원대 초반에 매각한 셈인데, 3억원이 넘는 인근 매물 호가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가격”이라며 “10년도 지나지 않아 손해를 감수하고 팔았다는 건, 그만큼 일대 상권에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중심부 자리 잡은 건물도 공실 못 피해
가로수길에 입성했다가 손해를 본 사람은 비단 오르테가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방송인 강호동을 꼽을 수 있다. 강호동은 앞서 2018년 6월 141억원에 신사동 건물을 사들였다. 건물은 대지면적 192.1㎡(58.11평)에 연면적 593.17㎡(179.43평)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로, 대지면적 3.3㎡당 매입가는 2억4,200만원 수준이다.
강호동은 해당 건물을 6년가량 보유하다가 지난해 11월 166억원에 매각했다. 단순 계산으로는 25억원에 달하는 시세 차익을 거둔 것 같지만, 취등록세와 양도소득세 등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상 본전도 못 건졌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강호동은 취득세로 6억4,800만원, 양도소득세로 10억원을 각각 냈을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서는 강남 중심 상권이 가로수길에서 주변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강호동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의 건물은 가로수길 중심부에 자리해 있지만, 매각 당시 전 층 공실이었다. 이유라 원빌딩중개법인 이사는 “가로수길은 압구정로데오나 성수동 같은 더 강한 상권이 생기면서 임대 수요를 모두 뺏겼다”면서 “강호동씨는 물론 건물주들이 전혀 대응을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높은 임대료도 가로수길 상권 침체를 앞당겼다. 온라인 쇼핑의 증가와 배달 서비스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상권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임대료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임차인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이사는 “가까운 압구정로데오만 보더라도 팬데믹 시기 ‘착한 건물주 운동’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시장의 변화에 발을 맞췄다”면서 “임대인 입장에서는 굳이 비싼 돈을 내면서 가로수길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꼬집었다.

골목 상권 활성화 이면엔 임대료 ‘껑충’
가로수길을 벗어난 소비자들의 발걸음은 뒷골목으로 향했다.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씩 대로변을 떠나 골목에 자리를 잡고, 특색있는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을 대거 흡수한 것이다. 가로수길 메인 대로에서 뒤로 들어간 ‘세로수길’, 사이사이 골목을 말하는 ‘뒤로수길’, ‘뒤뒤로수길’이 대표적이다. 세로수길과 뒤로수길은 서울 지하철 신사역 8번 출구에서 대로변을 따라 있는 가로수길 양옆에 위치한 골목길이다. 여기서 골목으로 한 번 더 들어가면 뒤뒤로수길이다.
2030세대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소비자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세로수길과 뒤로수길 일대의 음식점과 카페를 적극 공유하며 소규모 상권 활성화를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주택이 상가로 바뀌었으며 트렌디한 상점과 음식점, 와인바 등이 연이어 입점했다. 주택을 개조한 ‘뉴트로(new+레트로) 상권’이 젊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세로수길 관련 게시물은 이날 기준 7만7,000여 개에 이른다.
다만 이들 지역 역시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상권분석서비스 우리마을가게에 따르면 신사동의 지난해 1분기 임대료는 3.3㎡당 17만7,010원으로 전년 동기(15만5,460원) 대비 13.9% 늘었다. 서울시 전체 임대료와 비교해도 1만원 이상 높은 수준이다. 머지않아 메인 상권인 가로수길의 임대료가 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변 지역으로 상가 임대 수요가 분산되면서 공급 과잉에 직면한 가로수길로선 임대료 하락을 미룰 수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고가의 임대료로 메인에서 벗어난 상인들이 속속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며 “가로수길 임대료 또한 조정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내다봤다.